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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참만 배불리 먹고 부하는 굶긴다?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기 18] 도보여행 17일(사막 9일)

등록|2008.12.22 08:25 수정|2008.12.22 09:12

키질쿰 사막작은 도시 가즐리 ⓒ 김준희


어제 현지인들이 준 소시지와 빵으로 아침 식사를 해결했다. 커피가 있다면 좋을텐데 이 작은 식당에는 커피가 없단다. 그래서 그냥 평소처럼 녹차를 마시면서 빈둥거렸다. 한국에서 매일 아침마다 마셨던 커피가 여기서는 희귀메뉴가 되버린 셈이다.

혼자서 낯선 곳을 여행하려면 익숙한 것들로부터 벗어나야만 한다. 주위환경에 따라 색을 변화시키는 카멜레온처럼, 여행지에 맞게 식성과 생활습관을 바꾸지 못하면 이 먼곳에 와서 한국을 목놓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한 젊은 남자가 내가 앉아있는 탁자로 다가온다. 그리고는 묻지도 않고 내 맞은 편 의자에 앉는다. 주위를 둘러보니 중년 남성 몇몇이 한쪽 탁자를 차지하고는 음식을 먹고 있다. 이 젊은 친구는 좀전까지 그쪽 근처에 있었던 것 같다.

올해 24살인 이 친구는 트럭을 운전한단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트럭운전일을 배우고 있는 중이다. 우즈베키스탄을 여행하다보면 한 트럭에 올라앉아 있는 두명의 남자들을 종종 볼 수있다. 그럴경우 십중팔구 한명은 나이가 많고 다른 한명은 젊다. 우리나라 식으로 표현하자면 사수와 부사수, 고참과 신참의 관계인 것이다.

큰 트럭을 몰고 몇 백km의 장거리를 운전하려면 혼자보다 두명이 더 효율적일 것이다. 졸릴 때는 교대로 운전하면 되고, 심심함도 이길 수있다. 무엇보다 예기치 못했던 차량결함이 발생하거나 타이어가 펑크날 경우에도 두명이면 보다 더 잘 대처할 수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젊은 친구도 고참과 함께 장거리 운전을 하는 도중 이 식당에 들러서 잠시 쉬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렇게 고참과 신참이 같이 식당에 들어올 경우다. 나이많은 운전사는 다른 운전사들과 어울려서 시끌벅적하게 식사하는데, 젊은 사람은 대부분 그 자리에 끼지 못하고 한쪽에 따로 떨어져 있다.

한쪽에서 혼자 식사하는 것도 아니다. 그냥 평상에 앉아있거나 비스듬히 누워서 시간을 보낸다. 시쳇말로 '찌그러져'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 트럭을 점검하다가 고참이 식사를 마치면 함께 떠난다. 고참은 자기혼자 배불리 먹으면서 신참한테는 아무 음식도 사주지 않는 걸까. 아니면 이것도 일종의 관습적인 위계질서에 해당하는 것일까.

말이 통하지 않으니 이런 의문을 풀 수가 없다. 고참은 돈이 많은데 신참은 일을 배우는 중이라 돈이 없으니까 못 사먹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 젊은 친구도 상관의 식사자리에서 내쫓긴채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내 맞은 편으로 다가온 것이다. 24살의 나이에 밥도 제대로 못먹고 장거리 트럭운전을 배우며 생활하는 젊은이, 어찌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든다.

식당에서 현지 운전사와의 짧은 만남

작은 도시 가즐리외곽의 모습 ⓒ 김준희


이 친구가 운전하는 트럭에는 수박이 가득 담겨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서도 우리는 노트에 그림을 그려가며 대화했다. 내가 여기서 몇 킬로미터를 가면 또 식당이 있냐고 묻자, 이 친구는 고참에게 그걸 다시 질문한다. 돌아온 대답은 30킬로미터라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오늘은 꽤 여유있는 일정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건데, 하루에 걷는 거리는 30km가 제일 적당하다. 그보다 짧으면 왠지 걷다 만듯한 느낌이 들고, 그보다 길어지면 지쳐서 헉헉대기가 쉽다.

식사를 마친 중년운전사는 나에게 수박을 한통 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웃으면서 거절했다. 짐이 많아서 수박을 들고다닐 엄두가 안난다. 배부른 고참과 밥 굶은 신참은 트럭을 몰고 떠났고, 나는 화장실로 뛰었다. 어제와 오늘 먹은 소시지가 탈이 났는지 배가 요동치고 있다.

재래식 화장실에 혼자 앉아있는 시간도 즐겁기만 하다. 사방이 막힌 공간에서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래식 화장실 특유의 코를 찌르는 악취가 동반되기는 하지만.

결국 화장실을 두번 들락거리고 나서야 뱃속의 상태가 진정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주변 사진을 몇장 찍고, 짐을 꾸리고 출발 준비를 했다. 갑자기 생겨나는 갈등. 이 식당은 가즐리의 외곽에 있다. 가즐리 시내에 잠깐 들어가볼까. 아니면 그냥 방향을 틀어서 부하라 쪽으로 걸어갈까.

그때 키가 크고 늘씬한 두명의 군인이 이쪽으로 다가온다. 잔뜩 굳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걸로 봐서 식당이 아니라 나한테 용무가 있는 듯하다. 특별히 잘못한 일이 없더라도, 현지 군인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면 긴장하는 법이다. 그들은 나하고 악수를 하더니 내 카메라를 가리킨다. 내가 찍어서는 안되는 장면을 카메라에 담은 건가.

나는 카메라를 꺼내서 찍은 사진들을 일일이 보여주었다. 가즐리의 거리와 하룻밤을 잔 식당의 풍경, 어제 현지인들과 어울렸던 모습까지. 문제가 될 만한 사진은 하나도 없다. 군인 중 한명이 그 사진들을 꼼꼼히 보고나더니 식당 뒤쪽을 가리키며 러시아어로 말한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런 말을 한 것 같다.

"저쪽에 있는 가스시설 사진은 찍으면 안돼, 알겠어?"

그리고는 멀어져 갔다. 그 친구들 그거 되게 딱딱하게 구네. 군인들이 사라지고나자 가즐리 시내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도 함께 사라졌다. 가즐리(Gazli)라는 도시 이름이 가스(Gaz)에서 유래한 모양이다. 도시 외곽에는 커다란 가스 파이프와 정체를 알 수없는 가스관련 시설들이 늘어서 있다.

군인들에게 사진에 대한 경고를 듣다

키질쿰 사막가즐리를 벗어나면 또 사막이 펼쳐진다 ⓒ 김준희


어쨋거나 나도 빵과 음료수를 사서 출발했다. 시간은 오전 8시. 가즐리를 벗어나자 역시 또 사막이 펼쳐진다. 가즐리에서 부하라까지는 100km. 아무래도 부하라까지 가야 사막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모양이다. 100km를 3일에 주파한다고 가정하면 내일 모레 이틀만 더 고생하면 되는 것이다.

힘들때는 즐거운 상상을 하자. 부하라에 도착하면 뭘 할까. 깨끗한 물 펑펑 쏟아지는 호텔에 들어가서 샤워하고 머리를 감자. 그리고 부하라의 명물인 꼬치구이에 차가운 맥주도 한잔 마시자. 부하라에 도착한 다음날에는 시내에 가서 이발도 하고 하루를 푹 쉬자. 그러면 피로가 풀릴 것이다.

기분좋은 생각을 하면서 걷지만 역시 지치는건 어쩔 수없다. 아침에 두번이나 설사를 했고 군인과 짧은 신경전도 벌였다. 그것이 나의 체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모양이다. 식당에 도착할때까지는 아마 그늘이나 앉을 만한 곳이 없을 것이다. 나는 도로 한쪽에 털썩 주저앉아서 빵을 먹고 음료수를 마셨다.

이놈의 얼간이 같은 사막은 도대체 언제 끝나나. 사막이 보고싶어서 우즈벡 도보여행을 계획했건만, 이제는 이 사막 좀 그만 보았으면 좋겠다. 마약같은 사막의 더위가 머릿속까지 텅 비게 만든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묵묵히 걷기만 했다.

5시경에 사막 가운데의 작은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옆에는 작은 주유소도 하나있다. 그 앞 도로의 표지판에는 가즐리까지 29km라고 적혀있다. 오늘 아침에 트럭운전사가 준 정보가 정확했던 것이다. 그리고 가즐리-부하라 구간에 식당이 없다고 말했던 운전사들의 이야기는 모두 뻥이었던 셈이다.

나는 목적지에 도착한 기쁨을 만끽하며 식당으로 들어갔다. 작은 식당이라서 그런지 중년남성 혼자서 꾸려가고 있다. 재워달라고 하니까 건물 안쪽의 평상을 가리킨다. 난 그곳에 짐을 풀고 그대로 드러 누웠다. 하루 중에서 가장 즐거운 시간을 꼽으라면, 목적지에 도착해서 지금처럼 대자로 누울 때라고 말하고 싶다.

사막의 작은 식당에서 또 하룻밤

키질쿰 사막작은 식당에서 하룻밤을 잔다 ⓒ 김준희


키질쿰 사막화장실의 모습 ⓒ 김준희


조금 자고 일어났더니 어느새 해가 지고 있다. 이 식당에는 오는 손님들도 별로 없다. 이런 곳에서 오래 생활하다보면 자기가 원하지 않더라도 '은둔형외톨이'가 될것만 같다. 옆에있는 주유소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한쪽 탁자에 앉아서 나를 부른다.

"보드카! 보드카!"

식탁에는 소시지요리와 토마토 샐러드가 놓여져 있다. 어제 먹은 소시지 때문에 오늘 설사를 한 것 같은데, 또 저 요리를 먹어야하나. 식탁 한쪽에는 차가운 맥주와 콜라도 함께 있다.

우즈베키스탄에도 맥주의 종류가 많다. '사르바스트'는 그중에서 전국구 맥주라고 할만큼 대표적이다. 그리고 지방별로 또 그 지역에서 인기있는 맥주들이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맥주의 상표는 '아지아'다. 상표별로 맛과 알코올 도수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

주유소 주인의 이름은 오따벡. 그는 연신 나에게 보드카를 권하며 말한다. 1967년 생인 그는 집과 가족이 부하라에 있단다. 이 곳에서 혼자 계속 생활하기는 어려우니까 다른 한명과 교대로 근무하고 있다.

한참 보드카를 마시던 중에 승용차가 한대 와서 멈추더니, 현지 여행사일을 하는 사람 한명이 두명의 방글라데시 사람을 동행하고 술자리에 잠시 합세했다. 사막 투어를 전문으로 하는 여행사란다. 여행자들은 사막의 전통가옥 유르따에서 먹고 자면서, 원한다면 여행사에서 사냥을 주선해주기도 한단다.

방글라데시 사람 한명은 사막의 동물들을 찾아주는 일을 하고, 다른 한명은 유르따의 전기설비를 담당하고 있단다. 유르따에서 자면서 사막에서 사냥이라. 사냥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도 한번쯤은 해보고 싶은 경험이 될 것만 같다. 이제 이틀 후면 부하라에 도착한다.

작은 식당에서소시지와 토마토 안주로 보드카를 마신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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