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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의 홍수, 허약한 담론

지역 사회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순기능 회복해야

등록|2008.12.23 17:48 수정|2008.12.23 21:44
연중 지역 축제가 줄잡아 천 여개를 넘게 치르는 우리나라는 분명 축제의 향연 속에 있다. 특히 가을과 봄이 오면, 전국은 갖가지 축제로 들끓는다. 반나절이면 전국 어디든 갈 수 있는 시대에, 주말마다 어떤 축제를 찾을지 고민하는 상황은, 그리 낯설지 않은 일상 풍경이 되고 있다. 어느새 축제는 좋든 싫든 확고부동한 지역 문화로 자리잡아 버린 것이다.

때문에 축제를 둘러싸고 다양한 목소리가 나오는 건 한편으론 당연하며, 장려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새 축제를 둘러싸고 불거지는 대부분의 언사들이 환희에 차 있기보다는 꽤 심드렁하다. 나름 불만스럽고 걱정스러워 불편한 심기가 섞인 탓이리라. 일면 고개를 끄덕일 만한 힘도 있다. 천편일률의 판박이, 볼거리와 체험거리의 부족, 시민의 기대치 미달 등등. 하지만 애석하게도 이러한 불만과 지적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게 아니다. 십수 년 동안 고질이 된 문제들로 해결책이 생각보다 만만치 않은 까닭이다.

지역 축제의 고질병은 준비하는 이들의 능력 부족 탓이 가장 크겠지만, 대부분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지역에서, 마땅히 개선할 만한 여지나 선택지가 별로 없는 현실도 간과할 수 없다. 그렇기에 축제를 비판하는 합당한 이유와 뚜렷한 근거가 보다 더 자세하고 구체화하지 않는다면, 이는 감정 과잉의 배설일 뿐이라는 역비판을 받을지도 모른다. 단언하건대 현장을 감안하지 않고 원론에만 기대는 주장이거나, 대안없이 비판만 중언부언하는 논란의 풍토는 축제 발전과 개선에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작정 비판보다 세심한 판단이 우선

사실 시민의 세금으로 지원하지 않는 축제라면, 죽을 쓰든 말든 많든 적든 나서서 그리 상관할 바가 아니다. 일상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부침하는 문화 현상으로 보면 그만이다. 시민들의 참여가 저조하고 전문가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면 그 축제는 점차 외면 받고 사그라질 게 분명하다. 맘에 드는 축제는 열정으로 적극 참여하면 되고, 내키지 않으면 점잖게 무시하면 된다. 정작 문제가 되어야 하는 경우는 공공 지원에 완전히 의존하는 축제들의 답보와 퇴행일 것이다.

그러니 축제를 비판할 때는, 긴 호흡을 가지고 창작혼을 투영한 민간 자율의 축제인지, 혹은 난개발식으로 급조해낸 지자체나 특정 단체의 '이벤트'인지, 이를 먼저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진정 개최 목적과 취지에 부합하는지 냉정하게 살펴야 하는 행사가 있는 반면에, 최소한 인내심을 갖고 지켜봐 주는 예의가 필요한 축제도 있다는 말이다. 이를 제대로 구분하지 못 하는, 혹은 하지 않는 논쟁은 자칫 성과주의 논리에 기대어 축제의 자생력을 막을 가능성만 높인다.

다시 강조해 달리 말하자면, 지역 문화예술 창조를 진중하게 고민하는 축제는 느긋한 마음으로 아낌없는 격려가 필요하며, 경제 활성화와 특산물 홍보가 목적인 축제는 계산기를 두드려가며 중간 점검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다만 두 유형의 축제가 혼재되어 있다면, 옥석을 가려 판단해야 하는 다소 세심한 평가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럼에도 특정 축제의 정당한 비판을 넘어, 유형과 내용의 세세한 구분도 없이 무분별한 '난립'이라며, 전체 축제를 싸잡아 먹칠하는 상황은 좀 이해하기 어렵다. 꼭 집어서 핵심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는 두루뭉술하게 비난거리만 나열하는 논쟁은, 결국 대부분 민간 주도의 축제를 희생양으로 삼는다. 정작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할 축제들은 틀에 박힌 반성으로 물타기하면 그뿐이다. 여러분이 제기한 여러 미비점을 보완하여 앞으로 더욱 매진하겠다는!

아마도 이와 같은 겉핥기식 발언들은 그 셈속이 따로 있는 거 같기도 하다. 여기엔 주로 언론 매체, 지자체와 해당 의원들, 관계 전문가 등이 논란을 부추기거나 재생산하는 경우라 할만 한데, 이들의 속마음을 헤아리기란 마치 요지경이다.

축제 발전의 최소 기본틀

우선 언론이야 당연히 감시와 비판의 역할을 하는 것이라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불편부당함이 있어야 한다. 어떤 축제는 먼지털이식으로 일거수일투족까지 비판하는 반면, 다른 축제는 관계 공무원이나 용역 평가자들의 말까지 빌려서 찬양 일색으로 치장한다. 아직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것인가! 아쉽게도, 모든 축제에 공평한 잣대를 들이대고 개별 축제의 특성에 맞는 비판을 사려 깊게 검토하려는 시도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럼 지자체와 의회의 해당 의원들은 어떤가? 한 쪽은 축제 종사자들과 문화예술계를 길들이려는 목적으로, 다른 쪽은 단체장의 횡포나 정치 의도를 비판하려는 수단으로 특정 축제를 비난하는 데 앞장선다. 예산 지원을 미끼로 행정 편의에서 나온 결정을 강요하는 모습엔 관료주의의 오만이 섞여 있다. 뚜렷한 정책이나 행정 원칙도 없이 축제의 팽창을 주도해 온 지자체와 의회야 말로 가장 먼저 자성해야 하는 단위인데 말이다. 솔직히 가능성 있는 민간 중심의 축제에 힘을 실어줄 지자체와 의회가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이른바 축제 전문가들의 처세도 딱하다. 사실 이들의 안일함이 고질병을 더욱 키웠다. 상당수의 전문가들이 축제장에 잠시 나와 구경한 걸 가지고 쉽게 일반화한다. 게다가 눈 감고 코끼리 만지기식 소감을 전문 평가로 둔갑시키는 이도 있다. 쉽게 드러나지 않지만 나름 싹 트고 있는 지역 문화의 역동성을 발견하고 의미 부여하려는 노력도 게을리 한다. 전문가라면 최소한 하루이틀 정도는 꼬박 축제 현장을 체험하면서, 날카로운 심미안으로 전문 분석을 내놓는 게 당연한 일 아니던가! 기본도 방기하면서 전문가연하는 일부 학자와 문화예술계에 강한 현기증을 느낀다.

무작정 지역 축제를 감싸려는 게 아니다. 마땅히 퇴출해야 할 축제도 분명 적지 않다. 그럼에도, 동시에 최선 혹은 차선의 대안을 고민하는 노력도 치열하게 병행해야 옳다. 무작정 축제의 범람 혹은 난립을 성토하기엔, 우리가 언제 대책 한번 제대로 마련해 보았던 적이 있던가! 허약한 축제 담론 현장마저 급조하고 쉽게 잊었던 게 아니던가!

이제 논란만 나부끼고 대안은 소리없이 사라지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결국 대안 없는 대책은 축제를 무작정 없애자는 말과 하등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최소한이라도 공정한 심층 보도, 축제 지원 체계 마련, 현장 중심의 전문 평가 등과 같은 기본틀을 바로 잡아 놓아야 한다. 요컨대 지역 사회가 얼마나 현명하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축제의 역기능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다.

생활 문화로써 지역 축제의 의미는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삶의 질을 높이려는 시민들의 다양한 문화 욕구뿐만이 아니라 지역 문화의 다양성 차원에서도 축제는 지금보다 세심한 주목을 받아야 마땅하다. 나아가 백가쟁명의 지역 축제 시대를 유도하면서, 문화예술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체험과 놀이를 재해석하거나 새로이 발굴케 해야 한다. 그렇게 수없이 시행착오를 겪으며 냉정하게 검증 받고, 선의의 경쟁 속에서 꿋꿋이 버티어낼 때만이 지역 축제의 자생력은 그만큼 커질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새전북신문>과 개인블로그에도 송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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