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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텔미에 귀신 잡는 해병도 흐물흐물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 군부대 공연 10회 마쳐

등록|2008.12.23 20:46 수정|2008.12.23 20:46

▲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이 국악기로 연주하는 연주에 맞춰 국민댄스 텔미를 추는 해병대원들. ⓒ 김기



동장군의 모진 칼바람도 비켜서고 마는 귀신 잡는 해병의 위용도 한순간 사라져버렸다. 무대 위에 올라선 장병들은 원더걸스의 히트곡 텔미에 맞춰 뼈가 있는듯 없는듯 흐물흐물 춤을 추었다. 그런데 열심히 춤을 추는 해병장병 뒤에는 한복을 곱게 차려 입은 여성들이 연주를 하고 있다.

이는 지난 7월 진해 해군 모부대를 시작으로 총 열 차례 군부대를 순회한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의 올해 마지막 공연지인 포항 해병대 공연의 진풍경이다. 문화예술위원회와 국방부가 공동으로 기획한 이 순회공연은 깜짝 놀랄 성과를 보였다.

처음 다스름의 군부대 공연을 따라갈 때만 해도 반신반의가 솔직한 심정이었다. 아니 소위 섹시 여가수들의 자극적인 공연에나 열광하지 한복으로 똘똘 둘러싸고 무대에 설 국악연주에는 통 반응이 없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조금 더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말 그대로 기우에 불과했다.

마치 월드컵 박수를 칠 때처럼 두 손을 앞으로 쭉 폈다가 다시 손을 모아 박수를 치는 독특한 ‘해병대 박수’와 함께 1,300석의 객석을 가득 매운 해병 장병들의 절도와 패기의 해병대 노래로 환영받은 다스름의 공연은 처음 ‘바람의 나라’ 드라마 OST로 열 때만 해도 다소 잠잠한 편이었다.

▲ 해병대를 찾은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 유은선 단장이 단원들과 악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 김기





단원 소개를 겸한 악기소개에 이어 장단 배우기에 들어서면서 고된 훈련과 매운 강추위에 굳어있던 해병대원들의 반응이 뜨거워졌다. 숱한 초등학교와 군부대 등에 단원들을 이끌며 공연해온 유은선 단장도 여느 때와 달리 조금 당황한 빛을 보일 정도로 일단 반응을 보인 해병대의 적극성은 누구도 말리지 못할 강함을 보였다.

세마치, 굿거리 등 우리 장단을 직접 채와 궁편을 들고 쳐보는 것에 장병들은 매우 흥겨워했다. 고운 한복을 입은 아리따운 여성이 거드니 금상첨화였음은 분명하다. 그렇게 국악기와 장단 익히기로 시동이 걸린 공연 분위기는 이어 현재 극단 미추의 마당놀이 주역으로 출연 중인 미녀 판소리꾼 민은경이 나와 판소리 사랑가와 제주민요 너영나영을 흥겹게 부르면서 급속도로 달궈졌다.

흥을 견디지 못한 장병 하나가 무대 위로 뛰어오르자 몇몇의 전우들의 그 뒤를 이어 무대는 물론 객석 곳곳에 덩실덩실 춤판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노래 부르는 사람의 옷깃 하나 건드리는 사람이 없는 절제를 보였다.

▲ 극단미추 마당놀이 주역 심청에 출연하고 있는 미녀 판소리꾼 민은경과 다스름 ⓒ 김기




그렇게 고조된 분위기는 국악기로 연주하는 텔미에서 마침내 폭발하였다. 다스름의 신작 음반 몇 개를 즉석에서 상품으로 걸자 일순간 무대는 장병들로 까맣게 뒤덮였다. 해병대 장병들을 누가 말릴 수 있겠는가. 사회에 능수능란한 유은선씨도 이때만은 어쩔 수 없이 통솔 장교의 도움을 받아 겨우 몇 명을 추리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이어진 즉석 댄스경연은 딱히 누가 잘 추고 못 추고는 없었다. 국민댄스라는 원더걸스의 텔미춤이야 누군들 못하겟는가. 결국 가위바위보로 순위를 가렸지만, 그 사이 사이 객석에서는 “국악기로 저런 음악이 되네?”하는 감탄을 동료와 나누는 모습들이 보였다.
공연 당일밤 다스름의 홈페이지에 득달같이 달려온 한 해병장병은 “국악이라고 해서 너무 멀게만 느껴졌었는데, 아닌 거 같네요. 드라마부터 영화 OST까지 국악으로 들으니까 정말 새롭네요. 다음에도 들어봤으면 좋겠네요(백경원)”하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군부대의 특성상 공연 객석에 앉기까지는 자발적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국악이라는 다소 무거운 이름 대신 솜사탕처럼 달콤하고, 팝콘처럼 고소한 다스름의 접근에 반응한 장병들의 환호와 열광은 스스로에 의함이었다. 

▲ 장단배우기에 무대로 오른 해병장병들. 장구를 뚤어져라 처다보는 눈길이 사못 진지하다. ⓒ 김기




사실 군 장병들을 한시간 남짓한 시간에 사로잡은 힘은 오랜 경험의 축적 위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스름은 오랜 세월 초등학교 순회를 해왔다. 그뿐 아니라 교도소까지도 마다않고 찾아가 국악은 전파하는데 누구보다 앞장서왔다. 중동국가와 유럽 그리고 남미까지 국악연주로 찾는 곳마다 찬사를 받아온 그들의 노력과 자신감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혹한에 포항까지 달려온 먼 길의 여정과 독감이 겹쳐 리허설 때만 해도 열이 펄펄 끓던 단원이 곧 쓰러질 듯 하면서도 공연이 끝날 때까지 꿋꿋히 버텨낸 여성국악인의 강단. 그것도 빼놓을  없을 것이다.

1990년에 창단한 여성국악실내악단 다스름은 곧 스무살 성년이 된다. 그러나 국공립단체와 달리 민간단체 특히 상업성이 매우 희박한 국악단체로 20년은 말처럼 쉬운 일이 결코 아니다. 그 20년을 하루처럼 견디며 끌어온 힘은 한두 마디로 끊어 말할 수 없는 지난한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런 모든 것들을 모두 담아내고서 다스름은 마침내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훔쳐내며 작음 미소를 짓고 있다. 그녀들의 20년은 또 다시 20년을 내다보며 이 땅에 또 이 땅 바깥에 국악의 작은 새순을 틔우기 위한 또 다른 도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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