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우와! 이 불상들 봐, 도대체 몇 개야?"

얼어붙은 길을 더듬어 올라간 도봉산 마당바위와 천축사

등록|2008.12.24 11:12 수정|2008.12.24 11:12

▲ 도봉산 천축사 통일기원 500개 청동불상 ⓒ 이승철



"오늘 도봉산 공기가 유난히 싱그럽구먼. 선인봉도 아주 해맑은 얼굴이고."
"모처럼 주말등산이어서인지 다른 등산객들이 많은 것도 좋아 보이는 걸."
"주능선은 사람들이 많아 혼잡할 것 같은데, 오늘 새벽 내린 눈이 얼어붙어서 미끄러울 것 같아, 정상과 주능선은 피하도록 하지."

지난 20일 도봉산 입구에 들어서며 일행들이 기분 좋은 표정을 짓는다. 산이 좋아 산에 오르지만 산을 오르는 길에서는 자연을 만나고 사람도 만난다. 사시사철 어느 때 올라도 산은 변함이 없지만 아무리 똑같은 산길을 따라 올라도 표정은 항상 다른 것이 또한 산이다.

그래서 같은 산을 수없이 반복해서 올라도 싫증이 나지 않는가보다.  변함없이 의연한 모습이지만 철따라 날마다 다른 표정을 보여주는 산이야말로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무한한 신비요 축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아름다운 자연을 만나는 것 못지않게 사람을 만나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변함없이 의연하지만 만날 때마다 표정이 다른 산에서 깨닫는 삶

산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오를 때마다 다른 것은 마찬가지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을 오르지만 그 사람들의 모습은 물론 생각과 행동도 모두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은 자연과 더불어 교감하는 인간들이 자연을 배우고, 스스로의 삶을 뒤돌아보고 성찰하며 인생을 연마하는 수도장의 역할도 하는가 보다.

전에 입산요금을 받던 입구로 들어서 왼편 보문능선 쪽으로 오를까 하다가 오른편으로 방향을 잡았다. 곧 광륜사가 나타난다. 조선조 말 세도정치의 한 축이었으며 흥선군과 밀약하여 고종을 등극시킨 조대비가 지원하고 기도하던 곳이다.

▲ 바위에 새겨진 절 이름만 남은 옥천사 옛터 ⓒ 이승철



▲ 구봉사 입구 문 ⓒ 이승철



광륜사 뒷길을 따라 올라가면 다락능선 길이다. 다락능선으로 오르지 않고 다시 왼편 길로 향했다.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다가 다리를 건너니 맞은 편 다리건너에 금강사가 나타난다. 이쪽 길로 나서자 등산객들이 많이 보이지 않는다. 입구에서 웅성거리던 그 많던 사람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겨울산이라 숲이 휑뎅그렁하여 시야가 훤하다. 골짜기를 돌아 올라가자 옛 절터 하나가 나타난다. 바위에 새겨진 글을 보니 옥천사(玉泉寺)다. 구슬처럼 맑은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 있던 절이었나보다. 그러나 절터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오히려 절터 뒤로 돌아가자 다른 절이 나타났다. 옥천사인가 했지만 아니다. 역시 비좁은 절터에 법당 뒤에 높이 솟아 있는 하얀 불상이 인상적인 구봉사였다. 근처에 거북처럼 생긴 봉우리가 있나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마당 한편에 걸려 있는 솥에서는 구수한 냄새가 피어오른다. 장작불을 지피며 커다란 밥주걱으로 솥 안을 젓고 있는 보살에게 벌써 점심공양을 짓느냐고 물으니 내일이 동지 아니냐며 팥죽을 끓이고 있단다.

다시 밖으로 나와 골짜기를 따라 오르다가 오른편으로 방향을 바꿨다. 마당바위 능선길로 오르기 위해서다. 생각했던 것보다 등산객들로 붐비지는 않았지만 전날 밤 내린 눈이 녹았다가 얼어버려 길이 미끄러웠다. 한 시간 만에 마당바위 바로 아래 세 갈래 길에 이르렀다.

▲ 지붕보다 높이 솟아오른 특이한 모양의 구봉사 대불상 ⓒ 이승철



▲ 동지팥죽을 끓이고 있는 가마솥 ⓒ 이승철



계속 오르면 마당바위를 지나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고 오른편 길은 천축사를 거쳐 하산하는 길이었다. 일단 마당바위까지 오르기로 했다. 마당바위엔 10여 명의 등산객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간식을 먹고 있었다.

우리들도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맞은편에 보문능선과 우이암을 너머 하얀 눈이 살짝 덮인 북한산 인수봉이 바라보이고 있었다. 그런데 간식을 꺼내자 가까운 곳에서 야옹! 하는 고양이 소리가 들린다.

등산객들로부터 간식을 얻어먹는 산고양이들

산 속에서 웬 고양이 소리일까 하고 주변을 살펴보니 간식을 먹는 사람들 주변엔 고양이들이 한 마리씩 지켜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배고픈 산고양이들이 등산객들의 간식을 얻어먹으려고 찾아온 것이었다. 그런데 녀석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한 무더기의 사람들 마다 한 마리씩 옆에 다가와 사람들의 간식을 얻어먹고 있었다.

"그 녀석들 참 귀엽게 생겼군, 자! 너도 먹어라."
일행이 우리 주변에 다가온 녀석에게 떡 한 개를 던져주자 녀석은 떡을 물고 저 만큼 물러 앉아 먹는다. 다른 녀석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등산객은 과자를 던져주고, 또 다른 등산객은 통조림 고기를 던져주기도 했다.

산고양이 녀석들과 간식을 나누어 먹고 다시 아래로 내려왔다. 정상 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 위로 올라가는 길은 얼어붙어서 위험하다고 말렸기 때문이다. 천축사로 내려가는 세 갈래 길에는 20여명의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그들은 어느 모임에서 함께 온 단체등산객들 같았다.

▲ 능선길에서 바라본 도봉산 주봉 ⓒ 이승철



▲ 마당바위에서 바라본 우이암과 능선 너머 북한산 인수봉 ⓒ 이승철



시끄럽게 웃고 떠드는 그들로부터 멀어져 조금 내려오자 왼편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이 나타났다. 계단 옆 커다랗고 둥근 바위에는 움푹 파인 곳마다 작고 앙증맞은 불상들이 놓여있었다. 그런데 위로 올라서자 모두들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우와! 이 불상들 좀 봐? 도대체 이게 몇 개나 될까?"
바로 옆에 수백 개의 청동불상들이 진열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모양은 서로 달랐지만 거의 비슷한 크기의 불상들이 질서정연한 모습으로 서있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다. 대충 헤아려본 숫자는 500개였다. 바로 앞 안내판에는 통일을 기원하는 불상들이라는 설명이었다.

통일을 기원하며 세운 천축사 500개의 청동불상

수많은 불상들이 서있는 옆을 돌아서자 저 앞에 2층 기와집이 나타났다. 천축사였다. 천축사는 뒤편에 우뚝 솟아 있는 선인봉을 배경으로 아주 웅장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좁은 길가에 자리 잡은 찻집에서는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절마당으로 들어서는 담장 끝부분에는 맑은 물이 졸졸 흘러내리는 약수대롱이 얼지 않게 두꺼운 스티로폼으로 감싸여 있었다. 절집은 오히려 조용한 정적이 감돌고 있었는데 등산객 복장의 신도 두 사람이 마당에 서서 보이지도 않는 불상을 향하여 합장하는 모습이 이채롭다.

▲ 도봉산 선인봉을 배경으로 자리 잡은 천축사 ⓒ 이승철



대한불교조계종 직할 교구로 조계사에 속해 있는 천축사는 신라시대인 서기 673년에 의상대사가 수도하면서 현재의 자리에 옥천암이라는 암자를 세운 것으로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후 고려 명종 때 영국사가 들어섰고, 1398년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드렸다 하여 절을 새롭게 고쳐짓고 천축사라는 이름으로 바꾸었다.

조선 명종 때 문정왕후가 화류용상을 절에 바치고 불당 안에 부처를 모시는 불좌를 만들었다. 그 뒤에도 여러 번 다시 고쳐지었으며, 법당 안에는 석가삼존상과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삼세불화, 지장탱화, 신중탱화가 안치되어 있다.

절집을 둘러보고 나오려 하자 얼굴이 온통 털로 뒤덮인 개 한 마리가 엎드려 있다가 부스스 일어나며 꼬리를 몇 번 흔들고 다시 엎드린다. 마치 잘 살펴가라고 인사라도 차린 듯한 모습이어서 일행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먼 산 빛을 친구삼아
도봉산에 오르면
천축사 가는 길은 열려있다.

-중략-

티끌 같은 몸뚱이에 자리 잡은
바위만한 욕심덩이가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 되돌아보는 시간
천축사 가는 길은
언제나 감사한 마음으로 충만하다.

-목필균의 시 '천축사 가는 길' 중에서-

▲ 겨울 낮잠에 취한 천축사 강아지 ⓒ 이승철



절에서 나와 산 아래로 내려오는 길은 매우 조심스런 길이었다. 전날 밤에 내린 눈이 녹았다가 새벽 추위에 얼어붙어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조심조심 내려오느라 올라가는 시간보다 더 걸린 하산 길에서는 늘그막 우리들의 인생을 뒤돌아보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