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수 노인전문 요양시설 ‘하얀연꽃’의 시설장 현빈 스님. 그는 시설생활자들은 자식들과 이웃들한테 서운했던 일, 서러움을 받았던 일 등을 털어놓을 수 있도록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안을 삼는다고 말했다. ⓒ 이돈삼
"어려울 때 돕는 것이 진짜 돕는 것이라며 새로 후원 신청을 해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매달 5000원식 후원해 온 분이 1만원으로, 1만원씩 후원해 온 분이 2만원으로 올려 후원하겠다는 분도 계시구요. 이런 분들이 있어 아직 우리네 세상은 살만한 것 같습니다. 시설 운영자와 종사자들도 힘이 나구요."
물론 복지시설을 찾는 발길이 예전 같지 않은 건 사실이다. 경기침체가 계속되면서 전체적으로 찾는 이들의 발길이 뜸하고, 위문품도 줄고 있다. 하지만 신분도 밝히지 않은 채 불우이웃을 위해 써달라며 쌀과 고구마 등 농산물을 맡겨오는 독지가들이 있어 겨울 추위를 녹이고 있다.
지난달 22일엔 한 50대 남성이 트럭을 몰고 전남 화순군 이양면사무소에 나타나 20㎏들이 쌀 18가마와 10㎏들이 고구마 10상자를 내려놓고 총총히 사라졌다. 그 남자는 ‘국가로부터 혜택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이웃에 전해 달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당시 당직 근무를 하던 면사무소 직원 안정섭(56)씨에 따르면 "날이 어두워질 무렵 나타난 이 농부가 쌀 가마와 고구마 상자를 내려놓으며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고 말하고 곧장 가려고 해 이름을 물어봤으나 '화순에 사는 농사꾼'이라고만 밝힌 채 황급히 자리를 떴다"는 것이다.
이양면사무소는 이 남성이 내려놓고 간 쌀과 고구마를 화순군여성단체협의회 회원들이 담근 김장김치와 함께 관내 혼자 사는 노인과 소년소녀가장, 사회복지시설 등에 전달했다.
'사람난로'는 완도에도 나타났다. 완도군에 따르면 40대 여성이 “"은 양이 못돼 미안하다. 겨울철 어려운 이웃들 돕는데 써 달라"”며 완도농협을 통해 쌀 10㎏들이 50포대를 보내왔다. 이 여성은 지난해에도 익명으로 10㎏들이 쌀 100포대를 기부한 바 있다. 완도군은 기부자의 뜻에 따라 차상위 계층 50가구를 선정, 쌀 1포대씩 전달했다.
▲ 전남 여수에 있는 노인전문 요양시설 ‘하얀연꽃’에서 24일 오후 시설생활자들이 한데 모여 노래자랑을 하며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 이돈삼
칼바람이 매서운 겨울이다. 우리 주변엔 겨울나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의지할 데 없어 외롭게 사는 노인, 소년소녀가장, 고아원 원아, 가난한 장애인 등…. 겨울은 형편이 어려운 이웃들이 생활하기에 버거운 계절이다. 온정의 손길이 절실한 이유다.
현빈 하얀연꽃 시설장은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일에 꼭 물품이 뒤따를 필요는 없다”며 “자식들한테, 이웃들한테 서운하고 서러움을 받았던 응어리를 털어놓을 수 있도록 말을 들어주는 것도 좋고, 방에 앉아 텔레비전을 같이 봐주는 것도 어려운 사람들의 마음을 풀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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