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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에 만난 두 사람의 산타

소록도의 할머니와 장인어른의 모습 속에 삶의 위로와 격려를 얻다

등록|2008.12.26 10:10 수정|2008.12.26 10:10
올해도 어김없이 독서실에 크리스마스 트리 장식을 하고 가는 해를 가만히 지켜봅니다


크리스마스 어떻게 보내셨는지요. 산타할아버지는 만나셨나요.
올들어 유난히 움츠려든 연말분위기인데다 굳이 의미를 두어서라기보다, 뭔가 산타할아버지라도 만나야 할 것 같은, 그 이에게 어깨라도 맡기며 위로받고 격려받고 싶은 마음인게지요. 쉬는 날, 오랜만에 우리 식구 곰 네 마리 한데 어울려 종일 싸다녔는데요. 운좋게도 두 사람의 산타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부산 문화회관 아래쪽에 있는 국도 가람 예술관이라는 작은 영화관에서 만난 이행심 할머니, 그 이는 일흔 일곱 살의 소록도에 살고 있는 한센인 수용자입니다. 네 살 때 한센인 부모를 따라 이 곳으로 들어와 혹독한 현대사 속에 배고픔과 가난, 강제노역, 가족과의 생이별을 겪으며 뭉뚱그려진 몸과 차단된 사회의 가혹한 편견과 싸우며 같은 한센인 수용자인 남편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큐영화의 제목인 ‘동백아가씨’를 애창하는 그 이의 모습 속에 산타를 보았다면 삶을 지나치게 달콤한 것으로 보고자 하는 것일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자기보다 처지가 훨씬 못한 사람을 바라보며 느끼는 동정이나 연민을 통하여 쉽게 위안을 삼고자 하는 의도는 별로 없습니다. 절망도 희망도 아닌 그저 천형(天刑)처럼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하여 살아내는 그 자연스런 따사로움 속에 ‘삶이 무엇인지,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알아채면서 용기와 격려를 얻을 수 있었음을 얘기하고 싶은게지요.

▲ <동백아가씨> 포스터 ⓒ <동백아가씨> 홈페이지에서





그렇게 울지도 못하고 조심스럽게 영화관을 나와서 광안리 바닷가 인근에 차를 세워두고 찻집을 찾았습니다. 원두커피를 직접 갈아 만드는 커피 전문점에서 종업원의 친절하고 자신감있는 안내를 받으며 맛난 커피를 주문하였습니다. (자신의 하는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일하는 이들의 모습은 언제나 유쾌하고 보기 좋지요)

커피를 앞에 두고 곰 네 마리의 한해살이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아이들이 조금씩 커가면서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어가고 거의 저녁시간을 둘이서 ‘영감, 할멈’ 해가며 등이라도 긁어줘야 할 것 같은 우리 부부의 요즘 모습 때문인지 가족 간의 화목에 대해서 몇 마디 늘어놓기도 하였습니다. 오랜만에 느껴보는 마음이 참 편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작은아이 약속 때문에 일찌감치 나와서 집으로 향했습니다. 마침 오늘이 독서실 쉬는 날이라 큰 아이가 저녁 이벤트를 궁리하는데 근처에 사는 아이들 외갓집에 놀러 가기로 하였습니다. 어른들이 이뻐하는 큰아이를 무슨 깜짝 선물인양 앞세우고 들어가서는 차려놓은 밥상에 얼른 앉아 저녁을 먹었습니다. 큰 아이는 무슨 개선장군처럼 기가 살아서 미리 할머니한테 옆구리 찔러 주문한 닭튀김까지 맛나게 먹었네요.

올 한 해를 보내면서 대장암 수술이라는 큰일을 겪은 할아버지의 기운없는 모습에도 미소가 가득합니다. (세상에 그저 존재만으로도 기쁨을 줄 수 있다는게 얼마나 큰 복인지요)  그러면서 옆으로 바라보는 장인어른의 모습 속에 산타가 보입니다. 신산하고 고단한 삶의 지평을 건너오면서 이제 종착지를 남기고 있는 늙고 쇠약한 어른의 존재에서 고맙고 다행스러운 가족으로서의 아늑한 품을 느끼는 게지요. 거기서 또 다른 삶의 용기와 격려를 얻게 되는 거구요.

새 날, 여전히 쉬이 변하는 감정의 폭에 휘둘리며 살아내거나 살아지겠지만 오늘 하루 아기 예수의 태어남이 아니더라도 세상은 살만하고 따스한 곳이라 여겨봅니다. 늦게나마 ‘메리 크리스마스’

덧붙이는 글 부산 국도예술관 문의전화 051-245-5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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