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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저를 좀 가만히 내버려두세요

[우리 사는 이야기] 민수네 엄마 이야기

등록|2008.12.26 14:45 수정|2008.12.26 14:45
방학을 맞아 아이들이 집안에서 나뒹굴고 있습니다. 애써 공부하라고 다그치고 싶지만 안쓰러워 그냥 둡니다. 하지만 아이들, 전혀 공부를 하려고도, 책 한 권 보려는 성의를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는 마음이 바빠집니다. 어떻게든 아이들이 알아서 제 할 일을 챙겨주면 좋으련만 그뿐입니다.

방학이면 엄마는 더욱 마음이 바빠집니다

평소 아침 챙겨 먹이고 학교 보내고 나면 무한정으로 자기 생활에 빠졌던 민수엄마, 요즘은 하루가 열흘 같습니다. 방금 아침을 먹었는데도 군입거리를 요구하는 아이들로 마음 편하게 앉아서 그 좋아하던 ‘아침마당’을 시청할 겨를도 없어졌습니다. 한참 성장기에 있는 아들 둘, 어찌나 먹성이 좋은지 일주일치 시장 봐 놓은 것을 단 이틀 만에 거들내고 말았습니다. 긴긴 방학 동안 뒤치다꺼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방학이 원숩니다.   

“얘들아, 이제 공부 좀 해아. 아니면 책이라도 읽던지. 응?”
  “엄마, 이제 방학한 지도 사흘밖에 안 지났어요. 그러지 말아요. 이번 주까지만 놀고 다음 주부터는 열심히 공부할게요. 알겠죠? 자꾸 그러면 우리엄마 마귀할멈이라고 놀릴 거예요. 엄마도 그런 말을 듣기 싫지요? 그러니 더 이상 공부하라고 다그치지 말아요.”
  “녀석들, 입이 있다고 제 할말은 다하네.”

민수엄마 못 이기는 척 넘어갑니다. 하지만 그래도 마음이 영 편치 않습니다. 엊그제 영미엄마를 만났는데, 영미는 방학 전부터 고등학교 예비반에 등록해서 기숙하며 공부한다고 들었는데, 그런 것도 모르고 빈둥빈둥 놀고 있는 큰 아들을 생각하면 걱정이 앞섭니다. 자꾸만 내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가정형편이 원망스럽습니다. 돈만 넉넉히 있다면 덩달아 못 시킬 것도 없는데, 가당찮은 남편의 벌이를 생각하면 뜬구름 잡는 생각일 뿐입니다.

“아니, 너희들. 그새 컴퓨터 게임이냐? 질리지도 안 해.”
  “엄마, 지금까지 형이 하고 나는 방금 시작했단 말이야. 난 형처럼 게임도 못해. 엄마는 형 할 때는 가만있다가 왜 내가 할 때만 그만하라고 해. 내가 무슨 동네북이야!”
  “그런 게 아니라. 내가 볼 때마다 네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있으니까 그런 거지. 생각해 봐. 너 하루 종일 컴퓨터 적게 매달려 있는 거니? 아마 내가 보기에는 중독인 것 같아.”
  “내가 컴퓨터 중독이라면 형은 컴퓨터 타락자겠네 뭐.”
  “그런지도 모르지. 평소 너흰 집에만 오면 엄마 얼굴 보기보다는 컴퓨터를 먼저 끼고 살았잖아. 아니야? 인정할 건 안정해.”
  “씨, 엄만 언제나 나만 보고 그래.

막내가 게임을 하다말고 홱 토라져 방문을 닫고 나가버리자 민수엄마는 황당해서 할말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사실 방학이 아니어도 아이들이 너무나 컴퓨터에 매달려 있어서 이만저만한 걱정거리가 아니었는데 막상 방학이 되고 보니 문제는 더 크게 불거졌습니다. 하다못해 인터넷을 서핑하며 컴퓨터 중독에 관한 치유방법을 찾아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이런 일을 그냥 내버려 두기에도 뭣하고 해서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스트레스를 푸는 데는 게임이 최고에요

동석이는 중학교 3학년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맞벌이를 하시느라 집에 늦게 들어오실 때가 많고, 특히 아버지는 지방에서 근무를 하셔서 주말에만 오십니다. 그런데, 동석이 아버지는 동석이에 대한 기대가 많으셔서 집에 오시기만 하면 일주일 동안 동석이의 생활을 체크하시고, 특히 시험 성적에 아주 예민하게 반응하십니다. 그래서 동석이는 학교 공부를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성적이 마음만큼 잘 오르지 않아 힘들 때가 많습니다. 또, 학교에서는 선생님과 잘 맞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요즘 들어서는 학교생활도 힘들어 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동석이는 이런 저런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1년 전부터 게임에 자주 시간을 보냅니다. 정신없이 게임을 하다보면 스트레스도 풀리는 것 같고, 이런 저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있어 게임하는 동안만큼은 살 것 같습니다. _<인터넷 예방 가이드북> 중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동석이의 처지가 같은 마음이 아닐까요? 물론 민수엄마가 아이들 컴퓨터 중독을 걱정하는 것처럼 많은 아이들이 심각한 것은 사실입니다. 근데 왜 아이들이 그러한 상태로 내몰렸을까요? 요즘 같으면 어른들이 힘든 만큼 아이들도 무척 힘듭니다. 그런데도 까닭 없이 공부만을 닦달하고 있어 아이들은 저도 모르게 많은 스트레스를 갖게 돕니다. 그렇다고 뾰족하게 아이들의 스트레스를 해결해 줄만한 해결방안도 없다보니 자연 아이들은 혼자만의 공간에 안주하게 되고, 결국엔 컴퓨터게임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동석이와 같은 마음

민수엄마의 고충도 이해합니다. 아이들이 내 마음같이 다그치지 않아도 제 할 일을 척척 챙겨서 하면 얼마나 좋은 일이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요즘 아이들의 문화를 모르고 하는 생각입니다. 아날로그세대와 디지털세대 차이를 극복해야합니다. 단순히 컴퓨터게임에 집착한다는 것만으로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인터넷 중독’은 인터넷을 과다하게 사용해서 금단과 내성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다만 이로 인한 이용자의 일상생활 장애가 유발되는 상태에 대한 우려일 것입니다.

 “누가 인터넷을 못하게 하면 짜증이 나서 못 견디겠어요. 그리고 아무 일도 제대로 되는 게 없어요.”  - 금단현상
 “하면할수록 더 하고 싶어져요.” - 내성
 “수업시간에 너무 졸리구요 성적도 덜어지고, 살도 찌고,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요. 학교도 가기 싫고….”  - 일상생활 장애

그러나 상황이 이쯤이면 보통 일이 아닙니다. 적어도 이런 아이라면 인터넷 중독이 심각한 지경입니다. 금단증상과 내성, 일상생활 장애가 겹치고 있거든요. 하지만 기성세대가 일을 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인터넷을 우리 청소년들은 일상생활의 문화로써 수용하고 있다는 데 생각이 미치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만도 합니다. 이제 우리 청소년들에게 사이버 공간은 기성세대들이 그네를 타고, 시소를 타고, 술래잡기를 하던 놀이터와 마찬가지의 흥미진진한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 녀석들아, 제발 컴퓨터 끄고 공부 좀 해라. 엄마 미치겠다.”
  “참, 엄마도 너무 그렇게 신경 쓰지 말아요. 제가 다 알아서 할게요. 나 그렇게 컴퓨터에만 매달려 살지 않아요. 걱정말라구요. 헤헤.”

민수엄마가 아무리 발을 동동 굴러도 아이들은 까딱도 하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아이들에게는 아이들의 요량과 문화가 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짚고 넘어갈 게 있네요. 청소년들의 인터넷 중독이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로 얘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렇지만, 아직도 기치판단 기준이나 통제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아이들은 너무나도 재미있는 게임을 무작정 즐기고, 수많은 정보를 검색하는 것을 조절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무런 가치판단 없이 사이버 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들을 받아들여 가상세계를 지향하거나 일탈행동으로 인하여 신체건강에 문제가 생가는 것을 미연에 방지해야합니다. 그것이 부모나 우리 사회가 마땅히 해야 할 일입니다. 또한 우리 청소년들이 인터넷을 통해 좀더 나은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부모가 먼저 인터넷 사이버 공간 자체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며, 다음으로는 아이들 스스로가 인터넷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워야겠다는 결심을 가지는 것입니다.

제발 저를 좀 가만히 내버려두세요

고등학교 2학년인 동훈이는 학교와 학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밤 11시가 넘습니다. 간단히 씻고 간식을 먹으며 동훈이는 컴퓨터를 켭니다. 슈팅게임을 신나게 하고 있노라면 하루 종일 쌓였던 피로와 스트레스가 다 풀리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엄마가 자꾸만 시간을 체크하는 눈치를 주시는 것입니다.

괜히 왔다 갔다 하시며 ‘그만 끄고 자라’, ‘일찍 자야 내일 일어나지’ 하시면서, 동훈이가 귀에 닳도록 들어왔던 말을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매일매일 하십니다. 동훈이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나도 나지만 엄마도 참 대단하신 것 같다. 그냥 놔두면 어련히 알아서 잘 할까.’ 한숨을 쉬며 동훈이는 오늘도 컴퓨터를 아쉬운 마음으로 끕니다. _<인터넷 예방 가이드북> 중에서

지금도 민수엄마 동훈이 엄마와 같이 노파심을 가진 수많은 어머니들이 아이와 컴퓨터를 떼어놓으려고 애달아하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좀 느긋하게 처신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이들, 모든 게 제 멋대로 하는 것 같지만 제 앞가림은 다하고 있습니다. 애써 크게 걱정삼지 마십시오.
덧붙이는 글 이 이야기를 쓰는데 <인터넷 예방 가이드북 : 누려라!> 전라남도교육청, 2008. 11. 소책자를 참고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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