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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성어'보다 좋은 우리 '상말' (50) 애지중지

[우리 말에 마음쓰기 506] '애지중지하던 것', '애지중지하지 않고' 다듬기

등록|2008.12.26 17:44 수정|2008.12.26 17:44
ㄱ. 애지중지하던 것

.. 당시 나는 그림책을 두 권 가지고 있었다.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던 것이었다 ..  <소비에 중독된 아이들>(안드레아 브라운/배인섭 옮김, 미래의창, 2002) 43쪽

“애지중지하던 것이었다”는 “애지중지하던 책이었다”로 손질합니다. ‘당시(當時)’는 ‘그때’나 ‘그무렵’으로 손봅니다.

 ┌ 애지중지(愛之重之) : 매우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는 모양
 │   - 아이를 애지중지 키우다 / 꽃을 애지중지 정성을 다하여 가꾸다 /
 │     자식을 애지중지하며 기르다 / 새로 산 옷을 애지중지하며
 │
 ├ 보물처럼 애지중지하던 것이었다
 │→ 보물처럼 아꼈던 책이었다
 │→ 보배와 같이 소담스레 여겼던 책이었다
 │→ 무척 사랑하고 아겼던 책이었다
 │→ 몹시 아끼며 간수하던 책이었다
 └ …

사랑하니 ‘애지’이고, 소중하니 ‘중지’를 가리키는구나 싶습니다. 그러니까, 사랑하고 소중하다는 뜻으로 쓰는 ‘애지중지’라는 한자말인 셈이고, 우리 말로는 ‘사랑하고 소중함’으로 적으면 그만인 셈입니다.

 ┌ 아이를 애지중지 키우다 → 아이를 금이야 옥이야 키우다
 ├ 애지중지 정성을 다하여 → 알뜰살뜰 온마음을 다하여
 ├ 자식을 애지중지 키우다 → 아이를 살뜰히 키우다 / 아이를 사랑과 믿음으로 키우다
 └ 새로 산 옷을 애지중지하며 → 새로 산 옷을 몹시 아끼며

사람마다 사랑하면서 소담스레 여기는 매무새나 모습이 달라서, 누군가는 알뜰하게 다루고, 누군가는 아끼며, 누군가는 금이야 옥이야 보듬습니다. 누군가는 크게 다루고, 누군가는 살금살금 돌보며, 누군가는 애틋하게 껴안습니다.

배앓이를 하며 낳은 아이라면 금이야 옥이야 키울 테지요. 아니면, 금처럼 옥처럼 키우거나, 금과 같이 옥과 같이 키우리라 봅니다. 꽃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사랑으로 키웁니다. 또는, 믿음으로 키우거나 온몸과 온마음을 바쳐서 키우리라 봅니다. 새로 산 옷이나 자전거라면 알뜰히 돌보거나 살뜰히 돌보고, 때때로 제 아이처럼 고이 돌보리라 봅니다.

 ┌ 그무렵 나는 그림책을 두 권 가지고 있었다. 보물과 같은 책이었다
 ├ 그즈음 나는 그림책을 두 권 가지고 있었다. 모두 보물처럼 여기던 책이었다
 ├ 그때 나는 그림책을 두 권 가지고 있었다. 보물이 따로 없이 책이 보물이었다
 └ …

문득, 오늘날 우리들은 우리 말과 글을 조금도 보배처럼 여기지 않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우리 말과 글을 보배처럼 여기면서 알뜰히 간수하고 사랑으로 돌본다면, 날마다 튼튼하고 씩씩하게 뿌리내리거나 고루 퍼지면서 세상 어느 말과 글하고 견주어도 아름답고 빛나는 말과 글로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우리가 우리 말과 글을 보배처럼 여기지 않으니, 회사이름도 알파벳으로 바꾸고 아파트이름도 영어로 지으며 영어 교사 불러오는 데에 그 많은 돈을 바치지 않겠습니까. 정작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게 할 줄 알고, 알맞게 쓸 줄 알며, 제대로 가르칠 줄 아는 교사 한 사람은 못 키우면서 말입니다.

오늘날 우리네 학교에 ‘우리 말과 글을 올바르게 하면서 가르칠 줄 아는’ 수학교사는 몇이나 될까요. ‘우리 말과 글을 빈틈없이 하면서 가르칠 줄 아는’ 물리교사는 몇이나 될까요. ‘우리 말과 글을 사랑스레 쓰면서 가르칠 줄 아는’ 국어교사는 몇이나 될까요. ‘우리 말과 글을 알뜰살뜰 쓰면서 가르칠 줄 아는’ 목사님이나 신부님이나 수녀님이나 스님은 얼마나 계실까요. 아니, 이런저런 교사를 궁금해하기 앞서, 우리 스스로는 우리 말을 얼마나 잘 쓸 줄 알며, 얼마나 아끼고 있으며, 어떻게들 쓰고 있는지 궁금하게 여겨야 할 노릇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ㄴ. 애지중지하지 않고

.. 그러한 것을 애지중지하지 않고 직접 물건 그 자체를 접하도록 해야만 한다 ..  <다도와 일본의 도>(야나기 무네요시/김순희 옮김, 소화, 1996) 80쪽

‘직접’이라는 말을 썼다면, 뒤에 ‘자체’를 덜어내 줄 때가 나은데. 이렇게 하면 겹말이 되기도 하지만 어줍잖게 서양 말투를 흉내낸 셈입니다. “직접 물건을 만나도록 해야만”이라든지 “몸소 그 물건을 받아들이도록 해야만”쯤으로 손보면 좋겠습니다.

 ┌ 그러한 것을 애지중지하지 않고
 │
 │→ 그러한 것을 고이 다루지 말고
 │→ 그러한 것을 애틋이 돌보지 말고
 │→ 그러한 것에 너무 마음쓰지 말고
 │→ 그러한 것에 지나치게 매이지 말고
 └ …

사랑스레 여긴다는 뜻을 가리키는 ‘애지중지’입니다. 여기에서는 어떤 물건을 ‘애지중지하면서’ 물건마다 다르게 간직한 느낌과 값어치를 못 보게 될 수 있으니, 물건이 아닌 물건을 다루는 마음에 권위를 줄 수 있어야 한다고, 겉모습에 매이지 말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그래서 ‘고이 다루지’나 ‘너무 마음쓰지’ 같은 말로 풀어내 봅니다.

한편, 보기글에는 “애지중지하지 않고”로 나왔으나, “애지중지하지 말고”로 고쳐야지 싶어요. 그래도 ‘애지중지’를 버리기 싫다면, 어떻게든 ‘애지중지’라는 한자말을 쓰고 싶다면, 번역말을 다듬어서 “그러한 것을 애지중지하지 말고, 몸소 그 물건을 보고 느껴야 한다”쯤으로 고쳐써 줍니다.

‘애지중지’ 같은 말을 너무 사랑한다면 어쩔 수 없는 노릇이고, 지나치게 아낀다면 하는 수 없거든요. 다만 한 가지라도, 말투 하나라도, 다른 낱말 몇 군데라도 차근차근 돌아보고 살피면서, 우리 말과 글을 알뜰살뜰 여미어 낼 수 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습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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