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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뱃고동 울리며 청평사로

등록|2008.12.27 12:06 수정|2008.12.27 12:06
하늘에서 유영을 하던 눈들이 아래로 내려와 온 대지를 백색 세상으로 만든다.  사람들의 어깨와 머리카락 위로 흰눈이 살포시 내려앉는다. 발자국들이 길게 기찻길을 만들며 졸졸 뒤따른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이 있는데 누가 겨울을 춥다고만 하는가? 오히려 눈 덮인 대지가 포근하게 감싸주고, 환경에 순응할 줄 아는 사람들이 감칠맛 나는 정으로 따뜻하게 안아준다. 그래서 겨울여행은 여행의 참맛을 아는 사람만 떠날 수 있다고 했다.

겨울에 잘 어울리는 도시가 춘천이다. 상류의 북한강과 소양강이 이곳을 호반도시로 만들어 주변에 볼거리와 먹거리가 많다. 소양강 줄기를 막은 소양댐 가까이에 눈 내리는 날 연인과 함께하면 덤으로 멋진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여행지가 있다. 소양호의 한편에 우뚝 솟아있는 오봉산 기슭에 자리한 천년고찰 청평사다.

청평사는 깊은 산속에 있어도 호수를 내려다보고 있는 다섯 개의 봉우리와 소양호의 젖 줄기 중 하나인 청평계곡의 풍광이 뛰어나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고려시대 청평거사로 불렸던 이자현과 조선시대 금오신화를 지은 김시습도 이곳에서 은거를 했다.

고려 광종 때 선사 승현에 의해 백암선원으로 창건된 후 보현원과 문수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경내에 221칸의 방과 3km에 달하는 정원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컸었다지만 한국전쟁 때 대부분 소실되는 바람에 국보급 유물마저 사라진 지금의 청평사는 작아서 서글프다.

청평사에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극락보전, 삼성각, 관음전, 나한전 등의 건물과 역사적으로 가치가 있는 진락공 이자현 부도, 영지가 있다. 회전문(보물 제164호), 삼층석탑(강원도문화재자료 제8호), 절터(강원도기념물 제55호)는 사찰을 대표하는 주요문화재다.

청평사로 가는 길은 육로와 수로를 이용하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춘천에서 양구방면으로 46번 국도를 따라가다 간척사거리에서 청평사 방향으로 우회전해 배치고개를 넘으면 심산유곡 끝에 사찰 초입의 상가지역이 나타난다. 꽁꽁 얼어붙어 빙판길을 만드는 배치고개 때문에 겨울철에는 가급적 육로를 피하는 것이 좋다.

청평사가 유명해진 것은 소양댐이 생긴 이후다. 기차를 타고 남춘천역까지 오면 소양댐으로 가는 버스가 있다. 소양호에서 배를 타고 10여분이면 사찰 입구의 청평사선착장에 도착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로를 이용해 청평사를 찾는다.

'저 깊은 푸르름 반짝이는 햇살/ 내가 살던 세상은 호수 저편에/ 아직도 눈에 밟히는 그리운 사람 두고/ 나는 아득함에 끌려 당신께 가네...'

소양호 풍경

ⓒ 변종만



호수위로 눈발이 흩날리는 날 뱃전에서 ‘부~웅~’ 울리는 뱃고동이나 '청평사 가는 길' 노래를 들으며 사찰을 찾는 여행은 생각만 해도 즐거워 청평사를 섬 속의 절로 착각하게 만든다. 각종 교통편을 갈아타는 재미가 쏠쏠해 젊은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시간을 잘 맞추면 소양호의 일출과 일몰, 아름답게 피어오르는 물안개도 감상할 수 있다.

선착장에 내려 상가지역인 사하촌으로 올라가면 좌측의 계곡을 따라 산길이 이어진다. 산의 나무와 계곡의 바위가 흰눈으로 뒤덮여 아늑한 숲길에서 공주가 손바닥의 상사뱀을 애처롭게 바라보고 있는 조형물을 만난다. 청평사에는 공주를 사랑하다 상사병으로 죽은 당나라 청년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전설이 전해져오고 있다.

청평사 가는 길

ⓒ 변종만



아홉 가지 청아한 소리를 낸다는 구성폭포가 가까이에 있다. 높이 약 8m의 폭포가 수직으로 우뚝 서 있는데 시원한 물줄기 대신 큰 바위에 얼어붙은 빙벽이 주변경관과 어우러지며 계곡의 겨울풍경을 아름답게 한다. 공주탑이라 불리는 삼층석탑은 구성폭포 건너편 산비탈의 바위에 서있다.

청평사와 관련이 많은 사람이 고려시대의 학자 이자현이다. 구성폭포에서 조금 더 가면 이자현의 부도가 있다. 일반적인 부도와 달리 학자를 모셨다는 점이 이채롭다. 고려정원을 대표하는 문수원 정원을 만든 이자현이 오봉산의 봉우리가 비춰지도록 설계했다는 영지가 맞은편에 있다. 얼어붙어 별다른 게 없어 보이지만 이 연못이 몇 개 남아있지 않은 고려시대의 인공연못이다.

청평사 풍경

ⓒ 변종만



영지를 지나 10여분 오르면 오봉산의 봉우리 아래로 소박한 느낌의 청평사가 한눈에 들어온다. 돌계단을 오르면 일주문으로 불리는 키가 큰 나무가 두 그루 서있고, 그곳을 지나면 청평사를 대표하는 보물 제164호 회전문을 만난다. 천둥번개와 비로 공주를 쫒아온 뱀을 되돌려 보냈다는 곳이다.

사찰의 중문인 회전문을 지나면 누각 경운루가 있고, 대웅전 뒤편 옆에 극락보전이 있다. 이자현이 만든 문수원 정원은 청평사 뒤편 등산로를 따라 자연과 어우러지며 작은 폭포와 기암절벽이 선경을 이루는 곳까지 이어진다.

겨울은 보기 흉한 흠집을 눈 속에 감춰주면서 하얀 세상에서 마음껏 마음을 열라고 한다. 눈에 홀려 무작정 길을 나섰더라도 겨울여행을 떠난 사람은 여행의 말미에서 '청평사의 회전문이 왜 빙글빙글 돌지 않는지, 마음의 문은 어떻게 열어야 하는지'를 생각한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산사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도로안내
①청량리역 → 기차 이용 → 남춘천역 → 시내버스 이용 → 소양댐 → 선박이용 → 청평사
②중앙고속도로 춘천IC → 구봉산 → 감정삼거리 → 46번국도 → 강변로 → 세월교 → 소양댐 → 선박이용 → 청평사
③중앙고속도로 춘천IC → 구봉산 → 감정삼거리 → 46번국도 → 양구방향 → 간척사거리 우회전 → 배치고개 → 상가지역 → 청평사

*Tip자료
①청평사 입장료 : 성인 1,300원, 청소년ㆍ의무군경 800원, 어린이 500원
②왕복 승선요금 : 일반 및 청소년 5,000원, 어린이 3,000원
③승선시간(겨울철) : 소양호 선착장에서 10시부터 16시까지 30분 간격
④주차료 : 청평사관광지내 주차장, 소양댐 주차장 - 소형 2,000원
⑤시내버스 : 남춘천역에서 1시간 간격으로 40분 소요, 요금 1,100원
⑥전화 : 청평사 033)244-1095, 청평사매표소 244-1021, 소양댐선착장 242-2455, 남춘천역 257-7022
⑦사이트 : 춘천관광넷 http://tour.chuncheon.go.kr
소양관광개발 http://www.soyangdaem.co.kr
⑧소양관광개발 사이트에 열차와 시내버스 시간이 자세히 안내되어 있음
⑨주의사항 : 선착장 승선시간이 일정하지 않음-출발 전 소양관광개발 사이트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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