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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책 선물, 나는 통닭 선물

'통닭데이트'로 행복을 느꼈던 성탄 이브

등록|2008.12.27 12:52 수정|2008.12.27 12:52

▲ 아내에게 선물 받은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한강’. 태백산맥은 읽기 시작했는데 읽는 속도와 기억력이 예전같이 않네요. ⓒ 조종안


열흘쯤 되었을까요. 아내가 퇴근하면서 노란 박스 하나를 낑낑대며 들고 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뛰어나가며 전화를 하지 그랬느냐고 하니까, 저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이라며 박스를 뜯는데 조정래의 ‘태백산맥’과 ‘한강’이 각각 한 질씩 들어 있었습니다.

작가 ‘조정래’씨가 보안법 위반으로 고발당해 언론에 오르내릴 때 대충 읽은 ‘한강’을 얘기하며 ‘태백산맥’도 보고 싶다고 했을 뿐인데 기억하고 있다가 사오다니 감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미안할 정도로 고마워 무엇으로 보답을 해야 할지 고민이 되더군요.

볼펜 한 자루라도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선물은,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고 주는 사람도 흐뭇하게 해서 생활에 활력을 넣어주는 보약과도 같습니다. 그래서 가장 가깝다는 부부와 형제 사이에도 선물은 자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격려의 말도 선물이 되니까요.

보답할 수 있는 기회를 잡다

“내일이 크리스마스고 오늘 밤이 이븐디···. 자기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가꼬 통닭 한 마리 사다 놓을까? 그런디 시골이라 통닭집이 밤늦게까지 영업을 할지 모르겠네. 하긴 미리 사다놓으면 되지···.”

어떻게 보답해야할 지 고민을 해오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통닭을 선물해야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해서 지난 24일 아침에는 출근준비를 하는 아내에게 통닭 한 마리 사다놓고 성탄 이브를 둘이서 오붓하게 보내자고 했습니다. 고향으로 이사해서 4개월이 넘도록 아내가 좋아하는 통닭 맛을 못 봤기 때문에 겸사겸사해서 물어봤지요. 

“통닭은 미리 사다놓으면 식어서 맛이 없어요. 그리고 성탄절이라고 하지만, 근처 통닭집이 11시 넘도록 영업을 할지 모르니 퇴근하고 오면 함께 시내로 나가지 뭐. 시내는 그때까지 영업을 할 테니까, 밤거리 구경도 하고···.”

아내의 얘기 속에는 사람 물결 속에 묻혀 걷기도 하고 분위기 있는 생맥주집에서 통닭도 먹고 좋아하는 음악도 감상하고 싶다는 뜻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초대를 받거나 부부모임에는 함께 참석했지만, 성탄절 이브에는 교회에 가야하기 때문에 둘이서 거리를 거닐어 본 적이 없었거든요.

▲ 크리스마스 이브 나운동 주점골목 풍경.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젊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퇴근해서 오면 함께 시내로 나가자는 얘기까지 나왔지만 꼭 가자는 확약은 하지 않고 아내는 출근을 했고, 저는 글 정리와 집안 청소도 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브닝(저녁) 근무인 아내는 평소 같으면 밤 11시 조금 넘으면 집에 도착하는데 자정이 넘어가는데도 오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은 아닌지 궁금했으나 전화를 하기도 그렇고 해서 엉덩이를 들먹이며 기다리는데 휴대폰 소리가 울렸습니다. 열어보니 아내의 전화번호가 찍혀 있더라고요. 순간, ‘오늘밤 데이트는 틀렸구나!’ 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를 스쳤습니다.

평소 같으면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저에게 나가자고 할 터인데 전화를 했으니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은 분명했습니다. 그런데 전화를 받는 순간 “차를 문 앞에 대고 있으니까 빨리 옷 입고 나오세요.”라는 반가운 목소리가 얼굴에 미소를 짓게 했고 마음을 들뜨게 했습니다.

생각지 않은 드라이브

옷을 갈아입으면서도 데이트가 무산되는 줄 알고 실망했던 순간이 떠올라 웃음이 나왔습니다. 새벽 1시가 가까워지기 시작했고, 고향에서 아내와 처음 있는 성탄 전야 데이트라서 더욱 흥분이 되었습니다. 

나포에서 군산 시내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약 20분, 12년 된 늙은 티코라서 황소바람이 들어와 승차감을 말하기도 그렇지만, 4차선 도로를 쌩쌩 달릴 때는 얼마나 신통한지 모릅니다. 털털거리면서도 시간에 맞춰 목적지에 도착할 때는 고마운 생각이 들기도 하고요.

서해안 고속도로가 지나는 금강대교와 하구둑을 지나 시내로 접어드니까 새벽 공기가 차갑기는 했지만 가슴이 탁 트이면서 기분이 상쾌했습니다. 

시내로 들어서서 옛 시청 건물 앞 중앙로를 지나는데 70년대 초 이성당 제과점에서 망년회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위관장교시절 군산비행장에서 근무하던 친구가 양주 한 병을 들고 나왔는데 마땅하게 갈 곳이 없어 거리를 헤매고 다녔던 그때가 떠올라 웃음이 나오더라고요. 

나운동지구가 조성되지 않았던 70년대까지만 해도, 12월31일과 크리스마스 이브에만 통행금지가 해제되었기 때문에 해방감을 느낀 시민과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새벽까지 인파로 붐볐거든요.  

차를 세우고 잠깐 내리니까, 일제강점기에 지어진 건물로 군산의 상징이었던 구 시청 건물과 눈에 익숙했던 간판들이 보이지 않아 허전했습니다. 더구나 인기척이 없는 거리는 황량하기 이를 데 없었고 별빛이 없는 새벽하늘은 음울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황량하게 변해버린 중앙로를 뒤로하고 계획에 없던 은파 유원지로 갔습니다. 가족동반은 자주 했지만, 아내와 단둘이는 20년도 더 되는 것 같아 가슴이 설레고 요상한 감정이 솟구치더라고요.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딸이 생각나면서 ‘함께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는 말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나왔습니다.

은파 유원지 드라이브코스를 돌아 젊은이들이 생맥주집에서 수다를 떠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는 나운동 주점골목으로 들어섰습니다. 삼삼오오 짝을 지어 거리를 배회하는 젊은이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젊어지는 것 같더라고요.

그런데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제가 마음에 드는 피자집이 있어 들어가자고 하니까 아내가 “어른들은 없고 고삐리(고교생)들만 보이니까 쪽(얼굴) 팔려서 못 들어가겠네.”라고 하더라고요. 제가 “크리스마스 이브에는 어른들은 집에 있고 젊은이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는 거라고...” 하니까, 그래도 그렇지 못 들어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분위기 좀 잡으려고 했는데 미치겠더라고요. 젊은이들 틈에 끼어보려고 찬바람도 마다않고 나왔는데, 아내와의 생각차이를 좁힐 수 없어 흥청대는 거리를 구경한 것만으로 만족하고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렵게 이루어진 통닭데이트

▲ 통닭집 실내 풍경. 아내가 미군과 함께 온 젊은이들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부러운 모양입니다. ⓒ 조종안


아쉬움을 뒤로하고 구 경찰서 앞을 지나오는데 통닭집 간판이 보였습니다. ‘옳다구나!’하고 들어갔더니 제목을 모르는 팝음악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마주하고 앉아 둘러보니까 인테리어가 제법 깔끔해서 분위기가 살아나더군요. 아내도 만족한 표정이었고, 통닭 한 마리와 콜라 한 병을 시켜 먹으며 시간여행을 떠났다 가게가 문을 닫는 시간이 다 되어서야 돌아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계산서에 1만6천원이 적혀있는데 아내가 계산을 하려는 눈치여서 얼른 일어나 제가 했습니다. 읽고 싶었던 책을 선물 받고 며칠을 고민해오다 통닭으로 보답해야겠다고 결정하고 기다려왔으니 당연히 제가 해야지요. 

중간에 약간의 의견 차이가 있었지만 즐거운 외출이었습니다.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집에 돌아와 생각하니 의미 있는 시간여행도 다녀오고 드라이브도 했더라고요. 통닭 한 마리로 행복을 느꼈던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 칠면조 대신 닭? 성탄 전야에 아내와 분위기 있는데서 먹는 통닭이라서 그런지 맛이 더욱 좋은 것 같았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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