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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 쓴 겹말 손질 (49) 사려 깊다

[우리 말에 마음쓰기 508] ‘지나침’과 ‘과대평가’

등록|2008.12.28 09:32 수정|2008.12.28 09:32
ㄱ. 지나친 과대평가

.. 시장 매커니즘에 대한 지나친 과대평가나 그의 역사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  《김근태-희망의 근거》(당대,1995) 301쪽

 “종말(終末)을 고(告)할”은 “마지막이 될”이나 “사라질”로 다듬고, “없을 것입니다”는 “없습니다”로 다듬어 줍니다.

 ┌ 과대평가(過大評價) : 실제보다 지나치게 높이 평가함
 │   - 그는 자신에 대한 사람들의 과대평가가 부담스러웠다
 │
 ├ 지나친 과대평가나
 │→ 지나친 평가나
 │→ 지나치게 높은 평가나
 │→ 지나치게 띄우는 말이나
 └ …

 ‘과대평가’라는 말에는 ‘지나침’이라는 뜻이 담겨 있음을 몰랐을까요? 아무래도 몰랐으니까 “지나친 과대평가” 같은 겹말을 썼으리라 봅니다. 이와 비슷한 꼴로 “지나친 과소평가”라는 겹말을 쓸 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지나친 과찬”이라든지 “지나친 과장”이라든지 “지나친 과식”처럼 글을 쓸 분도 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 너무 추켜세우다 / 너무 깎아내리다
 └ 참 좋다고 말하다 / 참 나쁘다고 말하다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너무 올려세워도 좋지 않고, 일을 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너무 내리깔아도 좋지 않습니다. 앞으로도 잘하라고 힘을 북돋우면 좋고, 앞으로는 잘하길 바라며 토닥토닥 어루만져 주면 좋습니다. 너무 넘치지 않게끔, 너무 모자라지 않게끔, 높낮이와 깊이를 알맞게 추슬러 줍니다.

ㄴ. 매우 사려 깊고

.. 니사의 이야기는 매우 사려 깊고도 유익했다. 그녀는 내가 확실히 이해할 수 있도록 몇 번이고 다른 방식으로 되풀이해서 이야기해 주었다 ..  《마저리 쇼스탁/유나영 옮김-니사》(삼인,2008) 53쪽

 “니사의 이야기는”은 “니사 이야기는”이나 “니사가 들려준 이야기는”이나 “니사가 풀어놓은 이야기는”으로 손봅니다. ‘유익(有益)했다’는 ‘도움이 되었다’나 ‘좋았다’로 다듬습니다. ‘그녀’는 ‘니사’로 고치고, ‘확실(確實)히’는 ‘뚜렷이’나 ‘잘’이나 ‘틀림없이’로 고쳐 줍니다. ‘이해(理解)할’은 ‘알’이나 ‘알아들을’로 손질하고, “다른 방식(方式)으로”는 “다르게”로 손질합니다.

 ┌ 사려(思慮)
 │  (1) 여러 가지 일에 대하여 깊게 생각함
 │   - 사려가 부족하다 / 그는 사려가 깊은 사람이다 /
 │     사려를 깊게 하는 어떤 것들이 담겨 있다는 뜻이다
 │  (2) = 사념03
 │   - 두만이도 차츰 불쌍하다는 사려가 생겼음인지
 │
 ├ 사려 깊고도
 │→ 생각 깊고도
 │→ 마음 깊고도
 │→ 깊이 있고도
 └ …

 한자말을 쓸 때 말썽이 되는 대목으로 ‘말뜻을 제대로 모르면서 엉뚱한 자리에 잘못 쓰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토박이말로 해도 넉넉한데, 토박이말로는 안 하고 구태여 한자말로 쓰면서 말썽이 됩니다.

 ‘사려’라는 한자말이 좋은 보기가 됩니다. 우리한테 ‘생각’이라는 토박이말이 있음에도 굳이 이 한자말을 쓰면서, ‘사려’ 뜻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면 여러모로 우리 말이 어지러워지고 맙니다.

 ‘사려’는 “깊게 생각함”입니다. 그래서 “사려 깊다”처럼 말하거나 “깊은 사려”처럼 글을 쓰면 겹말이 돼요.

 그런데 국어사전을 들춰보면, 국어사전 보기글에도 얄궂게 겹치기 말투가 보입니다. 아무래도 국어학자마저도 ‘사려’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보기글을 붙였기 때문이라고 느낍니다. 또는, 문학작품에서 보기글을 싣다가 ‘문학하는 이들이 잘못 쓰고 만 겹말’을 걸러내지 못하고 그대로 두는 바람에 국어사전 보기글이 앞뒤가 어긋나 버리는 모습을 보이게 되는 셈입니다. 또는, 국어사전 보기글로 싣는 보기글을 알바생을 써서 넣느라, 제대로 살피지 않고 그냥 실어 버린 탓입니다.

 ┌ 사려가 부족하다 → 생각이 깊지 못하다 / 깊은생각이 모자라다
 ├ 사려가 깊은 사람이다 → 생각이 깊은 사람이다 / 속이 깊은 사람이다
 └ 사려를 깊게 하는 → 생각이 깊게 하는 / 깊이 생각하게 하는

 우리들은 ‘생각 + 깊다’처럼 쓰면서 ‘생각깊다’라는 새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또는 ‘깊다 + 생각’처럼 쓰면서 ‘깊은생각’이라는 새말을 빚을 수 있습니다. 둘 가운데 하나만 받아들여서 쓸 수 있는 한편, 두 가지 모두 받아들여서 우리 말 살림을 한껏 키우거나 북돋울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말살림을 추스르면, 저절로 ‘생각 + 얕다’와 ‘얕다 + 생각’ 꼴도 헤아리게 되니, 곱배기로 말살림을 북돋웁니다. ‘생각얕다’와 ‘얕은생각’을 얻습니다. 또한, ‘생각 + 너르다’와 ‘너르다 + 생각’을 엮어서 새말을 빚을 수 있고, ‘생각 + 좁다’와 ‘좁다 + 생각’을 엮어서 새말을 빚어낼 수 있어요.

 우리 스스로 생각을 열어 놓으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 말문을 열어젖히면 됩니다. 우리 스스로 우리 얼과 넋을 찬찬히 보듬으면 되고, 우리 스스로 우리 마음밭과 마음그릇을 넉넉히 채우면 됩니다.

 스스로 애쓰는 사람이 보람을 얻듯, 스스로 가꾸는 우리들이 될 때, 우리 말은 힘을 얻고 아름다워지며 새로워집니다. 스스로 애쓰지 않는 사람한테는 보람이 없듯, 스스로 가꾸지 않는 우리들이 될 때, 우리 말은 힘을 잃거나 영어에 눌리거나 한자에 밟히면서 낡아빠지고 썩어빠지고 문드러집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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