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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혈 개신교 선교사가 우리에게 다시 주는 메시지

[서평]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을 읽고

등록|2008.12.29 10:37 수정|2008.12.29 10:38

▲ 책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 겉그림. ⓒ 이숲

이 책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을 쓴 릴리어스 호톤 언더우드(Lillias Horton Underwood)와 같은 시대를 살았던 미국인으로서 동양에 대해 서구문명과 개신교 전도자로서 깊은 '소명의식'을 보여주며 활발하게 글을 썼던 이가 있었다. 우리에게 <은자의 나라 한국(Corea: The Hermit Nation)>'이라는 책으로 널리 알려진 윌리암 엘리엇 그리피스(William Elliot Griffis)가 바로 그 사람이다.

그리피스는 1876년 <미카도의 제국(The Mikado's Empire)>을 내면서부터 일본과 한국과 관련한 글을 쓰면서 20세기를 전후하여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이미지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특별히 그는 <미카도의 제국>과 <은자의 나라 한국>에서 어리석게도 동양(사람들)의 역사와 문화를 서구문명과 개신교의 시각으로 일방적으로 재단하고 해석하였다. 서구문명과 개신교를 받아들임으로써만 '개화'될 수 있으며 봉건제도와 '구습'과 같은 '미개'의 수렁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나는 그리피스에 대한 시각 때문에 그의 동시대 사람들 모두를 싸잡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그의 시대 미국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동양과 한국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들과 그것의 폐해를 학습하였기 릴리어스 호톤(지금부턴 그냥 '호톤'이라 한다)씨의 <조선견문록>은 내게 처음부터 그다지 끌리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책을 읽어가면서 나의 판단은 상당 부분 호의적으로 바뀌어 갔다. 호톤씨의 <조선견문록>은 그리피스의 시각과는 확실히 다른 그 '무엇들'을 담고 있었다. 개신교를 전파하겠다는 몸과 마음에 배인 '전도 임무(mission)'에서 비롯한 내용들이 일부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말엽부터 20세기 초 쓰러져 가는 조선과 조선 사람들의 삶과 문화를 엿보고 생각해 볼 수 있는 자료들을 그는 여럿 내게 전해 주었다.

호톤은 여성의 섬세한 시각으로 조선의 문물과 문화 등의 관습과 정치/사회 상황 등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주고 있다. 그의 본분이었던 '전도자의 사명'과 관련한 내용들을 써 내려가고 있는 사이사이 보여준 조선 '견문'의 글들은 조선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조선 '문화사'의 사료로서도 그 가치가 있다고 나는 보고 싶다.

조선의 종교 문화, 조선의 놀이 문화, 조선의 민간 전승 이야기 등도 호톤이 전해주고 있는데, 이에 대해서도 우리는 그에게 감사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조선의 정치·사회 현실보다는 민중의 삶과 문화와 관련된 내용들에 더 관심을 갖고 책을 읽었다.

"지극히 자잘한 절차에도 꼼꼼히 신경을 써서 조상을 섬기지 않으면 소홀한 대접을 받은 귀신들이 화가 나서 무시무시한 재앙을 내린다고 믿고 있었다. 이와 같이 강요된 제사는 힘겹고 지긋지긋한 것이지만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빠뜨려서는 안 되며, 다른 교리를 믿고 그 의식을 지키지 않는 이단자에게는 화가 미친다는 것이다. 이 신성한 의무를 지키지 않은 사람은 남자거나 여자거나 가정과 친구를 배신한 것보다는 더 심한 대접을 받는다." (책 27쪽)

"또 사람들은 자기의 죽은 부모를 잘 받듦으로써 자기 대에 남의 존경을 받기를 바라고 거기에 크게 만족해 하며, 자기를 기억해 주고 자기 위패 앞에 제사를 지내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무시무시한 공포와도 같은 당혹감을 느끼는 것 같다." (책 258쪽)

"조선에 온 첫 해에 나는 동네 싸움 또는 돌싸움을 구경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것은 참으로 흥미진진하긴 했지만 정말 영광이라고 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러운 것으로서 적어도 현명하고 양식 있는 여자라면 단 한 번도 보고 싶지 않을, 언제나 삼가야 할 일이었다. 서로 원한을 갖고 있는 두 이웃이나 두 지역 사이에 한 해에 한 번씩……(하략)." (책 50쪽)

"조선의 상투가 얼마나 쓸모 있는 것인지 말해야겠다. (…중략…) 나는 머리끝까지 화가치민 어떤 아낙이 술 취한 자기 남편을 굴집에서 질질 끌고 집으로 데려가는 것을 본 일이 있다. 또 화가치민 아낙이 자기의 주인인 남편의 상투를 꽉 움켜쥐고는 푸짐하게 벌을 주는 것을 여러 차례 보았다." (책 75쪽)

호톤은 조선의 산에 호랑이, 산돼지, 곰 등이 꽤 흔한 동물이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특별히 호랑이는 조선 사람들에게 아주 가까이 살았고, 일상에 크게 영향을 주었다는 내용도 전해준다. 조선 사람들이 그에게 많이 들려주었다는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의 독자들에게도 흥미로웠을 것이다.

"이 민족에게는 호랑이 이야기가 아주 많이 있다. (…중략…) 이 탐욕스런 친구가 먹이를 찾아 담장을 뛰어 넘어갔다가 다시 넘어왔다가 하면서 분노와 식욕이 점점 커져서는 마침내 완전히 지쳐서 그 조그마한 꾀 많은 적 앞에 먹이가 되어 볼품없이 죽어버렸다는 것을 말해야겠다. 이 이야기는 (…하략)." (책 84쪽)

19세기 말에도 조선 사람들이 미국 시민권을 따내는 것도 지도층 사람들이 누릴 수 있는 특권으로 여겨졌던 것 같다. 우리 시대에는 물론 이런 특권(?)의 범위가 더 넓어졌지만 말이다.

"그(서재필씨)는 문관시험을 거쳤고 미국 시민이 되었다. (…중략…) 윤치호씨는 아직 조선의 시민권을 지니고 있지만, (…하략)" (책 233~234쪽)

그가 전해준 좋은 내용들 가운데 특별한 하나는, 19세기 말에 조선 사회가 지녔던 공동체 정신이다. 19 세기 말 이미 시장 중심의 자본주의와 민주정치의 기틀을 확고히 한 미국인들이 비난해마지 않았던 봉건제도와 혹독한 가난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질병의 폐해 속에서도 조선에는 '공동체 정신'이 애틋하게 살아있었음을 우리는 호톤의 글에서 건져 올릴 수 있다. 얼마나 중요한 이야기인지 모른다.

"평민들은 가난하고 그들의 집은 아주 형편없이 초라한 미국 사람의 집과 비슷하다. 그러나 런던이나 뉴욕의 극빈자들과 견주어 볼 때에 서울에는 헐벗거나 굶주린 채로 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집집마다 정돈이 잘 되어 있고 집의 한 부분은 여자들이 차지한다." (책 20쪽)

왕정 체제와 봉건주의, 남성중심의 사회 속에서도 이어졌던 조선의 공동체 정신은 호톤에게도, 그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나에게도 신선한 충격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우리 시대가 혹독한 세계와 국내의 자본주의 체제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라 위기의 가정과 유민(流民)들이 빠르게 늘어가고 있기에 호톤이 그려내고 있는 19세기 공동체 정신이 숨쉬는 조선의 풍경은 아름답기만 하다.

그리피스와는 달리 조선 사람들과 일본의 조선 침략과 관련해서도 호톤은 객관적으로 평가했다는 평을 들을 만하다.

"흔히 조선 사람은 게으르고, 무디고, 어리석고, 느리고, 열등한 민족이라고 말들을 한다. 그러나 짐작건대 이런 말은 그들을 잘 모르는 여행자들이나,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을 쓸모없는 사람들로 생각하게 하려는 목적이 있는 그들의 적이나, 그들을 잘 알아보려는 생각이 없이 겉모습만 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중략…) 그러나 그런 계층들은 어디에나 있으며, 가장 선진국인 유럽에서도 볼 수 있다." (책 280쪽)

"또 만일에 조선이 올가미에 걸려서 나라를 빼앗겼다면 그것은 잠깐 방심을 했기 때문임을 생각해야 하겠다." (책 281쪽)

호톤은 자신의 선교 임무를 수행하는 데 조선 사회가 정말로 열악한 물리적·사회문화적 환경을 지닌 곳이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의 책 곳곳에 나오는 경험 이야기들에서 우리는 그와 그의 남편, 그리고 같은 처지의 선교사들이 얼마나 어렵게 자신들의 임무를 수행했는가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도 남편과 함께 몸을 아끼지 않고 환자들을 돌보는 등 일관되게, 그리고 욕심 없이 자신의 선교 임무에 충실하였던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신앙심에서 우러난 것이라 하더라도, 그들이 조선과 조선 사람들을 무척 사랑했다는 점을 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물량주의와 기복주의가 만연한 한국 개신교의 선교 방식과 선교 자세에도 호톤과 그 남편의 헌신적 자세가 보여주는 교훈은 적지 않다 할 것이다.

호톤이 전해주는 조선 사람들의 삶과 삶의 현장, 그리고 그들의 엮어낸 문화가 우리 시대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들의 후손들로서 우리는 우리가 지켜내야 할 것들로 어떤 가치들을 잃어버렸으며, 좋지 않은 풍속들 가운데서 우리에게 여전히 남아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것들은 어떤 것들인가.

호톤이 조선에서 활동하던 시대, 조선의 정치가들과 지도층 인사들의 혼과 정신과 삶의 자세를 우리 시대의 그런 분들의 그것들과 비교해서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하고 참여하고 싸워서 얻어내야 하는 교훈들과 결과물은 어떤 것들인가. 호톤과 이 책을 다시 우리에게 새로이 옮겨 펴낸 김철 선생이 우리에게 주는 숙제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릴리어스 호톤 언더우드, 김철 옮김, <언더우드 부인의 조선 견문록> 서울:이숲,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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