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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바람에 곱은 손, '나 왜 산에 올랐지?'

가장은 불침번, 올해도 그 임무에 충실 하리라 '다짐'

등록|2009.01.02 12:54 수정|2009.01.02 12:54

▲ 수리산 관모봉에서 본 '해' ⓒ 이민선




추위에 손가락이 곱아서 셔터가 눌러 지지 않았다. 빨간 해는 아주 가끔씩 사람들 틈 속에서 힘겹게 모습을 드러낼 뿐이다. 이상 한 것은 손가락이 곱을수록, 셔터를 눌러야 한다는 욕구는 더 강해진다는 것이다. 함께 온 일행들이 “이제 내려가자”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 소리조차 귀에 들리지 않았다. 

‘찰칵’ 드디어 찍었다. 사람들 머리를 비집고 나온 기축년 첫날 ‘해’ 를 드디어 카메라에 담았다. 추위에 얼어 있는 손가락을 겨드랑이에 사이에 넣고 한동안 녹인 후에야 가능했던 일이다. 찍고 나니 포만감과 허무함이 함께 몰려왔다. ‘겨우 이 사진 한 장 찍으려고’ 라고 생각하니 허무했고, 카메라에 빨간 해를 담았다고 생각하니 포만감이 밀려왔다.

무엇인가 소원을 비는 듯한 모습이 눈에 띈다. ‘무슨 소원들 일까?’ 건강! 학업성취! 돈 많이 벌게 해 달라고!  기타 등등, ‘그렇다면 난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질문이 밀려왔지만 해답을 찾을 수가 없다.

난 새해 첫 날 뜨는 해에게 소원을 빌면 성취 된다는 따위의 말들을 사실 믿지 않는다. 그저 이른 새벽 반가운 얼굴들과 산에 오르는 것이 좋아서  올라왔을 뿐이다. 장갑을 끼고도 손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날씨에 산에 오르는 것은 나름대로 재미가 있는 일이다.

수리산 관모봉,  발 디딜 틈 도 없이 인파로 꽉 차 있었다.

▲ 관모봉 ⓒ 이민선



1월1일새벽5시30분, 11살 딸내미를 흔들어 댔지만 오히려 잠이 더 깊어지는 표정이다. 도무지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약속시간이 점점 가까워 왔다. 이제 그만 나가봐야 할 시간이다. 6시10분에 일행들과 안양8동 샘 여성병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너무 일찍 도착했다. 시계를 보니 5시49, 동트기 전이라 사방이 캄캄했고 칼바람이 불어서 매우 추웠다. 염치 불구하고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일직을 서는 직원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한 번 쳐다보고는 이내 TV로 시선을 옮긴다. 

의자 옆에 있는 신문을 뒤적이기를 약 15분, 일행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6시 20분쯤 수리산에 오르기 시작했다. 여성스럽고 얌전하다는 수리산 이지만 처음부터 풋내기 등산객 발길을 반기는 것은 아니다.

산에 발을 들이자마자 이내 숨이 가빠왔다. 직감적으로 이 고비를 넘겨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숨이 가빠질 때 한번 쉬면 자꾸 쉬어야 한다. 하지만 이 고비를 넘기면 그 다음 부터는 별 어려움 없이 오를 수 있다.

▲ 연을 날리는 청년 ⓒ 이민선



“천천히 가세요. 뒤에 있는 20대들 힘들어요”

애교 있는 한마디에 속도를 줄인다. 수리산 밑, 안양6동에 살고 있는 60대가 선두에서 굉장한 속도를 냈다. 우리 일행 중 최고령이다.  그 뒤로 20대 청년이 헉헉 거리며 산에 오르고 있었다. 60대 청년 20대 노인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

어두운 산길을 더듬어서 오르다 보니 일행들이 제대로 따라오고 있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분명 누군가 뒤로 처진 것 같은데 파악이 되지 않았다. 1시간 정도 오르자 관모봉이 보인다. 인원을 세어보니 3명이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보이지 않던 2명이 가뿐숨을 몰아쉬며 모습을 나타낸다.

관모봉 정상은 이미 발 디딜 틈 없이 인파로 꽉 차있었다. 해가 뜨는 동쪽 방향은 접근 할 수조차 없었다. 산 위에서 보니 안양시가지도 매우 운치가 있다. 비록 빨간 불빛만 보이지만. 연을 날리는 청년이 눈에 들어온다. 새해 첫 날 해가 뜰 때 산 위에서 연을 날리는 것도 무척 재미있어 보였다.

나머지 한명은 내려가는 길에 만날 수 있었다. 뒤 늦게 올라와서 인파에 휩싸인 일행들을 찾지 못하고 혼자 해돋이를 보다가 내려가는 길이었다. 산 중간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가 얼어버린 줄 알았다고 너스레를 떨자 “이 산도 마음에 안 들어 계속 오르막만 있어” 라고 맞장구를 친다.

▲ 수리산에서 본 안양시가지 불빛 ⓒ 이민선



내가 산에 오른 이유는 집에 도착해서야 알 수 있었다. 일행들과 떡국을 한 그릇씩 먹고 헤어지고 난후 집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0분 경이었다. 그때까지 아내와 11살 딸, 4살 아들 녀석은 쿨쿨 자고 있었다.

의식하지는 못했지만 가족들에게 계속 편안하게 늦잠 잘 수 있는 여유를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그러려면 난 좀 더 부지런해야 한다. 마치 소처럼. 그래서 이른 새벽 칼바람을 맞으며 산에 올랐던 것이다.

사람들에게 가려서 가끔 한번 씩 삐죽삐죽 보이는 빨간 해에게도 무의식중에 이렇게 소원을 빌었을 듯하다. 한 해 동안 소처럼 부지런히 열심히 일하게 해 달라고. 그러고 보니 가장은 가족들의 불침번 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족들이 편안하게 잘 수 있도록  두 눈 부릅뜨고 지켜주는 불침번. 올  한해도 그 임무에 충실 하리라 다짐한다.
덧붙이는 글 안양뉴스 유포터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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