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슬픔' 발견한 당신, 이제 새 삶을 살게 된답니다
[서평] '나'를 딛고 일어서 '우리'를 보게 하는 책, <굿바이 슬픔>
▲ <굿바이 슬픔>(그랜저 웨스트버그 지음)겉그림. 고도원·키와 블란츠 공역. 두리미디어 펴냄, 2008. ⓒ 두리미디어
“만약 당신이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래, 마침 나는 슬픈 일을 겪었다.
“만약 당신이 슬픔에 빠져 있다면 이 책을 만난 게 다행이란 생각이 듭니다.”
웨스트버그는 갑자기 떠안은 슬픔에 흠칫 놀란 내게 속삭이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당혹감만 안겨줄 것 같은 슬픔이란 감정이 어떻게 ‘좋은 슬픔’이 되어 나를 성숙시키고 또 내 주변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줄 수 있는지를 조심스레 이해시키기 시작했다.
그는 슬픔에 짐짓 놀라 먹먹한 나를 조심스레 토닥이며 차근차근 설명해주었다. 혼자 걷기엔 너무 높고 멀어보였을 슬픔의 열 고개를 함께 넘도록 돕는 그에게서 슬픔은 어느 순간 참 친근한 것이 되어버렸다. 못난 슬픔은 보내고(‘굿바이 슬픔’하고) 성숙해진 슬픔(‘좋은 슬픔’)을 받아들이기까지 지은이 웨스트버그는 그리 두텁지 않은 책을 풍성한 감성으로 가득 채웠다. 그래도 슬픔은 여전히 슬픔이다보니, 나는 한없이 가벼운 이 책에 무거운 내 마음을 여전히 기대고 싶다.
“눈물샘이 있고 눈물이 나올 이유가 있다면, 눈물을 흘려라”
새해를 맞은 지금 나는 이제 옛일이 되어 버린 작년 늦봄을 떠올린다. 나는 근 한 달간 그분과 함께 예배당 건물 옥상 방수공사에 참여했다. 간이 좋지 않으셨지만 그분은 그분 나이 절반 정도에 불과한 나보다 더 힘 있어 보였고 무엇보다 꾸준한 자세로 일하셨다. 안경 너머 보이는 그 반달 눈빛이 때때로 고단한 작업들 사이로 웃음을 흩날려주곤 했다. 그분은 늘 그랬다.
어느 날, 이제는 기억하는 것이 무의미한 어느 날 그분이 내 시야에서 사라지셨다. 가끔 교회 식구들과 함께 그분을 찾아가지 않고서는 반달 웃음을 선물하시던 그분 얼굴을 보기 힘들었다. 간이 좋지 않으셨다 했는데... 그건 이미 알고 있던 일인데 어느 날 삶을 놓아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되셨다. 그리고 새해를 막 넘기자마자 그분은 돌아가셨다.
그분은 가족에게서 떠나가셨고 그리고 내게서도 떠나가셨다. 담담할 것만 같던 내 마음은 그 늦봄 냄새를 기억하는 순간부터 막막한 슬픔으로 바뀌고 말았다. 그렇게 당혹스런 슬픔에 빠지려는 순간, 내심 걱정스러웠다. 나도 모르게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나 걱정스러워했다. 때마침 만난 가녀린 책 <굿바이 슬픔>은 그래서 내 손에 더욱 묵직하게 잡혔다.
종교와 의학이 어떻게 서로 영향을 주며 상호관계를 맺는지를 줄기차게 연구하고 적용해온 웨스트버그는 갑자기 마음을 흔들어대는 불청객 같은 슬픔이 어떻게 몸을 흔들어대고 생활을 어긋나게 하는지를 연구해왔다. 의사, 간호사, 카운슬러가 한 조를 이루는 방식으로 환자를 대해온 그는 환자 몸과 마음을 함께 치료하고 돌보는 일에 매진해왔다. 그리고 그런 방식은 지금 내 시야에 그대로 빨려들며 내 마음에 그대로 스며든다.
일상을 깨는 슬픔에 마음이 반사적으로 대응한 첫 방식은 ‘충격’이다. 그리고 충격이란 갑작스런 슬픔이 주는 당혹감과 혼란스러움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웨스트버그는 이를 두고 “충격은 일시적인 현실도피이다. 일시적이기 때문에 슬픔과 함께 찾아오는 충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충격이라는 반응이 어느 정도 가라앉으면 그 다음에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그건 바로 슬픔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는 “눈물샘이 있고 눈물이 나올 이유가 있다면, 눈물을 흘려라.”라는 말로 2장을 이루는 이 이야기의 의미를 설명한다. 이런 식으로 책은 나머지 여덟 고개를 넘고 넘어 못난 슬픔을 ‘좋은 슬픔’으로 변화시킨다.
슬픔 중에서도 가장 극심한 혼란을 주는 슬픔은 바로 상실감이다. 늘 있던 사람이나 환경이 갑자기 내게서 사라졌을 때, 좀 더 자세히 말하면 그 같은 상실감이 물밀듯이 현실이 되어 다가올 순간에 마음을 사정없이 흔들어대는 그 무엇이 바로 상실에서 오는 슬픔 중 슬픔이다. 그것을 다스리지 못해 당황해하거나 아예 충격에 빠져 긴 어둠 속을 걸을 때 일상은 깨지고 삶은 구렁에 빠지기 쉽다.
슬픔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려주는 확실한 기준이 바로 상실감이다. 그리고 그 확실한 예가 바로 사랑하고 아끼던 사람을 영원히 잃어버렸을 때이다. 그것이 죽음이든 다시는 만날 수 없는 영원한 헤어짐이든 말이다.
'좋은 슬픔'은 새로운 나를 받아들이게 하고 이웃을 다시 보게 한다
상실의 슬픔 때문에 흔히 나타나는 다섯 가지 증상(신체적 이상 증상, 상실에 대한 집착, 죄의식, 적대적 반응, 행동 패턴 상실)을 한쪽에 두고서, 웨스트버그는 사람들로 하여금 슬픔이 본래 지닌 얼굴을 드러내 보이고 친근할 정도로 받아들이게 하고 그 와중에 슬픔이 몰고 온 갖가지 상처들을 하나하나 거두어낸다. 이러한 과정들이 이 책 열 장을 구성하는데, 그는 이 열 고갯길 같은 과정을 차근차근 밟아가면서 말 그대로 슬픔에 불과했던 어두운 감정을 밝게 바뀐 성숙한 감성 곧 ‘좋은 슬픔’으로 발전시켜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어버리면서 생기는 상실감은 누구에게든 언제든 일어나는 일이며 슬픔이라는 감정 역시 당연히 누구에게든 또 언제든 일어나는 일이다. 정작 문제는 누가 그 격하고 혼란스런 감정을 선한 것으로 변화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상실감과 슬픔이 뒤섞여 발생하는 복잡한 감정을 딛고 일어설 때 평범한 개인의 삶은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돕는 삶으로 바뀐다. 그리고 이것이 모든 독자들을 위해 간절히 바라는 웨스트버그의 최고 희망사항이다.
참고로, 구성과 문장 다듬는 일을 고도원이 맡았고 번역은 키와 블란츠가 맡았다. 그리고, 각장 끝부분에는 '고도원의 아침편지'에서 소개했던 슬픔과 삶에 대한 짧은 이야기들 중 일부를 덧붙였다.
"상실의 아픔을 달래는 치유의 과정과 메시지를 심리적·정신의학적 관점에서" 보여준 이 책을 손에 든 모든 독자들을 위해 기도한다. 그들 모두 이 책과 함께 열 고개를 넘는 어느 순간에 어둔 슬픔은 흐르는 강물처럼 자연스레 보내고(‘굿바이 슬픔’) 타인을 이해하고 돕도록 지원하는 성숙한 마음(‘좋은 슬픔(Good Grief)')은 안은 채 이전과는 다른 본래 자리로 다시 돌아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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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 Good Grief by Granger E. Westbe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