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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시대의 독일 대중과 MB시대의 한국 대중

폭정의 공범자들

등록|2009.01.05 09:45 수정|2009.01.05 09:45
히틀러와 독일 사회의 공모(conspiracy)

현대 독일인들에게 있어서 제2차 세계대전과 그 과정에서 자행된 나치당의 반인륜적 범죄들은 잊을 수만 있다면 잊어버리고 싶을 만큼 부끄러운 그들의 치부임이 분명할 것이다. 전후 독일인들이 이 부끄러운 역사를 청산하고 신뢰할 수 있는 국제사회 일원으로 복귀하기 위해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 등을 통하여 히틀러뿐 아니라 히믈러, 괴링, 괴벨스 등 전쟁 범죄와 반인륜적 범죄를 자행한 전범들의 만행을 밝혀내고 처벌하는 데 적극 협조하였다.

이 같은 독일의 태도는 주요 전범들의 처단을 외면한 것은 물론이고 종군위안부 강제동원, 양민학살, 생체실험 등 반인륜적 범죄행위에 대한 사실 인정조차 인색한 일본에 비교한다면 매우 대조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 독일인들이 나치의 범죄로부터 완전하게 자유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양차 대전에서 독일이 전범국의 오명을 뒤집어 쓸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경제발전을 뒷받침할 만큼 사회 민주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산업혁명 이후 독일 경제는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군주정으로부터 의회민주주의로의 자발적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민주화에 대한 자각이 없었던 독일 국민들은 20세기 초반까지 군주제나 관헌국가적 특성을 띤 권력의 권위적 지배를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던 것이다.

1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독일은 1919년 국민의 생존권을 보장하는 등 최초로 자유민주주의적 이념에 20세기적 사회주의 개념을 도입한 바이마르 헌법(Weimarer Verfassung)을 채택했지만 근대 민주헌법의 모범적인 전형인 바이마르 헌법은 1933년 나치의 국민혁명에 의해 무력화 되었다. 헌법 학자들은 바이마르 민주주의의 실패 원인으로 비례대표제 도입에 의한 정당 난립, 헌법상 직접민주제적 요소의 도입, 제국대통령의 비상대권 등 헌법 자체 결함을 꼽지만, 그 기저에는 의회 민주주의에 대한 대중의 이해 및 수호 의지 부족과 대 공황 이후 전개된 경제 위기 극복 과정에서 극우 민족주의에 입각한 히틀러의 선동적 발언이 압도적인 대중의 지지를 얻은 것 등이 보다 본질적인 요인으로 자리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정권이 자행한 범죄들은 나치 핵심 인사들에 의해 주도적으로 저질러졌지만 바이마르 체제의 붕괴와 나치의 득세 과정에서 독일 사회는 무책임하고 무기력했다.

1920년 독일노동자당(DAP)에서 '국민사회주의독일노동당'(NSDAP)으로 개명한 나치당이 집회 때마다 독일 국민에게 강조한 것은 유대인 배척과 패전국민의 굴욕감이었다. 이러한 나치의 주장은 특별한 대안 세력이 없는 혼란한 정치상황과 대공황의 여파로 발생한 극심한 실업난 등과 맞물려 하인. 중산층. 노동계급과 여성 등에게 압도적 지지를 얻게 되었으며 1930년 나치당 SA(Strum Abteilung: 돌격대)에 등록된 40만여 명은 거대한 정치적 사병집단이 되어 당의 집회를 보호하는 한편 반대파를 위협하는 등 파쇼당 전위대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나치당은 이러한 기반을 토대로 1932년 선거에서 원내 1당으로 약진했고, 다음 해에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히틀러를 수상에 임명하게 된 것이다. 히틀러는 취임 초기부터 권력을 절대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국가 기관 장악을 시도하는 한편, 괴링을 통해 프로이센의 경찰력을 완전하게 장악했으며 산업계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지원 받아 방송망을 장악함으로서 명실 공히 독일 사회의 모든 권력을 독점하게 되었다.

1933년 2월 의사당에서 화재가 발생하자 '공산당의 폭동기도'라고 침소봉대하면서 공포정치는 본격화되었다. 히틀러는 이 사건을 계기로 시민들의 정치적 권리를 유보시키는 긴급명령을 포고하였고, 노조를 해체시켰고, 좌익 언론을 침묵시켰으며 같은 해 6월에는 사민당을 해산시켰으며 국가인민당, 중앙당 등이 줄줄이 해산되어 7월 14일에는 국가사회주의독일노동당(NSDAP)만이 독일의 유일한 합법정당으로 남게 된 것이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하기 마련이다. 권력 독점 이후 독일의 국제연맹 탈퇴나 2차 세계대전 발발 그리고 유대인 학살 같은 야만적인 범죄는 견제할 수 없는 절대권력의 출현을 용인한 이상 반드시 겪었어야 할 결과물에 불과할 뿐이니, 20세기 최악의 비극이며 야만적인 역사는 독일 대중의 무책임한 선택이 야기한 필연적인 귀결이기도 한 것이다.

2009년 벽두의 대한민국

2006년 지방동시선거에서 한나라당의 압승 이후 전개된 한국의 정치 사회적 상황은 바이마르 체제의 몰락과 히틀러의 득세 과정과 비교하여 여러 모로 유사하여 작금의 한국사회가 얼마나 큰 잠재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노선 투쟁에 몰입하여 새로운 리더십을 대중에게 제시하지 못한 당시 집권 세력의 분열이 정치적 혼란을 자초한 면이 그러하며, 서민 경제의 위기를 침소봉대하여 집권 세력에 대한 불신을 기정사실화 한 한나라당의 선동적 전략이 성과를 내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 낸 점이 그러하다.

한나라당 집권 이후 전개된 정치 상황은 '절대권력의 추구'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정부 조직 개편 이후 유인촌 장관 주도로 전개된 임기직 공직자에 대한 퇴진 압박 수단이 재임시의 비리 및 비위사실 들추기 양상으로 전개함으로서, 이 인적 청산이 정당한 인사권 행사가 아니라 공직 사회를 장악하기 위한 공작(工作)의 일환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검경이 주도하는 공안정국전개와 언론장악기도 그리고 의회의 압도적 다수를 기반으로 한 절대 권력의 추구는 한국 대중이 용인하고 정당성을 부여해 준 합법적 수단을 통해 관철해 나가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함을 느낀다.

연말연시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국회에서의 공방전은 불행하게도 집권 여당은 적법하며, 이를 막으려는 소수 여당은 불법이거나 최소한 탈법 행위를 하고 있다. 정의나 불의 혹은 상식적인 옳고 그름의 평가 이전에 국민 다수가 집권당에 압도적 지지로 합법성을 부여해준 까닭이다. 그러니까 권력의 폭주를 막을 수 있는 어떤 합법적 수단도 남아있지 않다는 면에서 지금이 총칼로 권력을 탈취해 항상 정통성 시비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유신 독재나 전두환 시대보다 훨씬 절망적이다.

무도하고 부도덕한 정권에 의해 향후 자행될 갖가지 패악들에 대해서 그들의 실체를 알면서도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민주화 세력은 무능의 공모자이며, 그들의 실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경제를 살리겠다니까 혹은 일자리를 만들어주겠다고 하니까 허실을 따져보지 못한 채 지지한 대중은 무지의 공모자들일 터이니, 이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 중 책임을 모면할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다. 우리는 그런 절망의 늪에 빠져 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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