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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발하는 자격증 '유감'

늘어나는 자격증 횟수보다 '진정한' 공신력 더 키워야

등록|2009.01.05 16:51 수정|2009.01.05 16:51

▲ 유통관리사 2급 교재, 특정 이름은 모자이크 했음을 밝힙니다. ⓒ 이상규




"자격은 일정한 신분이나 지위를 가지거나 일정한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조건이나 능력을 말하며, 자격증은 일정한 자격을 인정하여 주는 증서다."

국어사전에서 자격증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이렇게 나옵니다. 운전 면허증을 취득할 때 70점을 넘어야 자격을 얻듯, 자격증은 아무나 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자격증에 대한 매리트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제가 고1이었던 2000년. 동네 근처에 있는 대한 상공 회의소에서 워드프로세서 자격증을 응시하려고 대기하고 있을 때, 회의소 건물 바깥에 비치된 현수막에는 <자격증 따면 취업 보장>이라는 단어가 표기되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격증에 응시하도록 관심을 유도하는 일종의 마케팅 수단이었죠.

자격증 접수를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1시간 넘게 걸렸을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기다렸는데, 저 같은 어린 학생을 비롯해서 20대와 30대 분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시험때는 유치원생, 초등학생까지 단체로 응시하였고 서울 시내에서만 10곳 넘는 학교가(지금은 규모가 축소되었지만) 필기 시험장으로 활용될 만큼, 워드 프로세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높았습니다. 아마 이때가 워드 프로세서의 전성기 시절이었을 겁니다. 1~2급, 1~3급 동시에 응시하는 사람들까지 비일비재했으니까요.

워드 프로세서가 붐을 일으킨 이후에는 컴퓨터 활용능력, 인터넷 정보검색사, 전자상거래 관리사 등 IT관련 자격증들이 사람들의 높은 관심을 끌게 되었습니다. 자격증 이것 저것 취득해서 취업을 대비하자는 사람들이 많았죠(물론 학점은행제와 관련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제 친척 누나는 정보처리 기사 자격증을 취득하여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고, 다른 친구들도 컴퓨터 관련 자격증을 따서 IT 관련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죠.

제가 군 제대했던 2년 전, 아르바이트 하면서 알게 된 형들을 만나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헌데 그 형들은 3년째 취업을 못했다고 하더군요. IT 관련 자격증만 3~5개 가지고 있었는데 한 곳도 못붙었다고 합니다. 제가 왜 취업이 안되었느냐고 물어 보니까 "너무 놀았던 것도 있지만, 대학교 다닐때 자격증 공부에만 매달리다 보니까 회사에서 안받아주더라"고 답하시더군요.

물론 소규모 업체에서는 자격증으로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 형들이 중견급 혹은 대기업을 목표로 취업을 노렸던 사람들이라 3년 동안 번번이 취업 낙방 맞으면서 방황했던 것 같았습니다.

제가 그 형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저도 군대에서 자격증 공부에 매달리다가 나중에 와서야 허탈감을 느꼈기 때문이죠. 그 형들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자격증 남발'의 희생양이었으니까요.

저는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스포츠 관련 업종에서 일하고 싶은 꿈을 키웠습니다. 워낙 스포츠를 좋아해서 관련 일에 몸담고 싶었는데 어느날 스포츠 마케터라는 것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스포츠 마케터는 '기업이 스포츠마케팅을 통해 회사의 인지도향상 및 이미지 개선을 할 수 있도록 스포츠와 관련된 각종 행사지원, 선수지원, 스포츠용품 판매 등을 대행'하는 직업을 말합니다.

이것과 관련된 자격증으로 <스포츠 경영 관리사>라고 있었는데, 하필이면 저는 이것과 유사한 민간자격에 속하는 어느 모 스포츠 마케터 자격증을 군대에서 공부했던 겁니다. 일병 2호봉 시절부터 말년병장에 이르기까지 계속 그 책만 붙들고 공부했었죠.

그런데 군대에서 제대하고 나서부터 그 자격증이 없어졌거나 존폐위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2006년에 시험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인터넷 관련 정보를 뒤져봐도 최신 업데이트된 소식이 없을 만큼 '제대로 속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더군요. 제가 군대라는 특수성에 속한 신분이었기 때문에(요즘에는 군대에서 인터넷이 됩니다만) 바깥 정보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습니다. 주위에서 스포츠 마케터에 대한 관심을 가진 사람까지 없었기 때문에, 모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포츠 경영 관리사라도 공부할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문제는 이 자격증만으로 취업을 하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죠(요즘에도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스포츠 경영 관리사에 컴퓨터 관련 자격증, 영어 등 스펙만 골고로 갖춘다면 그나마 스포츠 업종에 취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은 갖췄다고 볼 수 있겠지만 스포츠 경영 관리사가 무조건 취업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제가 몸담았던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어떤 분이 그러시더군요. '우리나라 현실에서는 자격증 하나 가지고 있다고 모든 걸 바꾸지 못한다'고요.

저는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2000년대 초반을 기점으로 국가자격, 국제자격, 민간자격 형태의 자격증들이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이리저리 '자격증 남발'이 판을 쳤던 것은, 자격증 횟수만 늘릴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취업 보장을 맹신할 수 없는 단점이 있었던 겁니다.

미용사나 조리, 제빵 같은 오랫동안 취업 분야에서 활성화 되었던 자격증들은 취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겠지만 특히 IT쪽에 있는 '난이도 쉬운' 자격증이나 이름 없는 자격증들은 취업과 큰 연관이 없다고 볼 수 있죠. 냉정히 말해, 자격증은 자격증이었을 뿐입니다.

저는 요즘에 유통 관리사 2급 시험을 치를까 말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경영학과다 보니까, 유통쪽으로 진로를 틀 것 같아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이것마저도 합격자들이 너무 많아서 취업 시장에서 알아주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학점은행 제도를 통해 취득했던 사람들이 많았으니까요. 관련 업종에서 일하시는 분들은 유통 관리사 자격증보다 경력을 더 중요시하더군요(참고로, 유통 관리사보다 난이도가 높은 물류관리사는 물류쪽이기 때문에, 세부적으로는 유통과 분야가 다릅니다).

작년 초에 유통관리사 시험을 보기 위해 며칠간 공부하다가 바쁜 일이 있어서 결국 응시를 못했고, 올해는 유통 관리사 교재를 읽을 즈음부터 '이 자격증을 취득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라고 망설였습니다. 결국에는 유통 관리사에 대한 미련을 잊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하더라도 그로 인한 시간 손해가 크기 때문이죠. 유통 관리사를 취득하는 것보다 신뢰성 높은 자격증을 취득한다든가, 외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든가, 경력을 더 쌓는게 더 나을 거란 판단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모 유명 대기업에서 중견 간부로 몸담고 있는 강사의 강의를 들어 보니까 "요즘에는 인사 담당자들도 스펙을 믿지 않고 있다. 자기 소개서도 형식적으로 쓰는 사람들이 많아서 잘 안 믿는다. 회사에 잘 맞는 인재인지 판단하기 위한 인성 검사라든가 경력을 더 중요시 하고 있다. 나는 입사 1~2년차에 속한 사람들을 회사 직원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만큼 실무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는 말을 했습니다. 이제는 자격증보다 경력이 더 중요시 되는 세상에 접어들었네요.

자격증을 통해 취업을 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요즘에는 자격증들이 이러저리 늘어나고 합격자들이 너무 많아서(워드 프로세서 같은 경우 필기 합격선이 최소 60점 이상이죠. 합격 커트라인이 낮아 많은 사람들이 합격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자격증 존재만으로 취업을 보장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몇몇 전문 분야는 다르겠지만) 관련 업계에서는 '이 자격증은 희소성있고 공신력 있는 자격증으로 인정받는 추세'라고 홍보합니다만, 취업난을 노리는 허위 및 과장 광고일 가능성 또한 없지 않습니다. 자격증에 대한 '진정한' 공신력이 커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저의 블로그(http://pulses.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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