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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브샤브→버섯데침, 더 맛깔나지 않나요

[맛이 있는 풍경 63] 버섯과 쇠고기가 헤엄치는 행복한 새해 식탁

등록|2009.01.05 17:44 수정|2009.01.05 17:44

버섯데침버섯은 종류에 상관없이 소화율이 높은 저칼로리, 고 비타민 건강식품이다 ⓒ 이종찬


버섯을 따오면 무게를 달아 그만큼 황금으로 상을 내렸다는 로마 네로황제(A.D 37~68). 신선이 되기 위해 '불로초'(버섯)를 찾아 우리나라와 일본으로 사신을 수천 명이나 보냈다는 중국 진시황(BC 259~BC 210). 식탁에 버섯조리가 오르지 않으면 짜증을 냈다는 나폴레옹(1769~1821). 영지버섯으로 아름다움을 맘껏 뽐냈다는 양귀비(719~756).

한무제(440~493)조차 버섯이 발견되면 궁중에서 연회를 베풀고 시를 지어 읊으며 축하했다는 신비스런 영약 버섯! 버섯은 채소와 육류에 들어 있는 장점을 골고루 갖추고 있는 '신이 내린 음식'이라 할 수 있다. 버섯에는 무기질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육류처럼 단백질까지 골고루 들어 있어 서양에서는 '채소 스테이크'라 불릴 정도로 귀한 먹을거리이기 때문이다.

버섯조리는 참 많다. 하지만 버섯은 살짝 데쳐 먹는 것이 가장 향이 좋고 맛이 깊다. 데침조리, 즉 샤브샤브는 13세기 칭기즈칸이 아시아 대륙으로 영토를 넓히던 때, 병사들이 투구에 물을 끓여 양고기와 채소를 익혀 먹던 야전요리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음식 연구가들은 우리 전통 조리법에 '토렴'이란 음식이 있는데, 이 음식이 샤브샤브 원형이라고 못 박고 있다.

토렴이란 밥이나 국수, 말린 고기에 뜨거운 국물을 부었다가 따라내기를 서너 번 하면서 음식을 살짝 데우는 것을 말한다. 이 토렴이란 독특한 음식 조리법이 처음 기록에 나오는 때는 삼국시대이다. 우리나라 음식연구가들은 이때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철로 된 투구에 물을 끓여 채소와 고기를 익혀 먹거나 데워 먹은 데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버섯데침이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띠는 것이 주방 한 켠에 수북이 쌓인 느타리버섯과 그 버섯을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다 ⓒ 이종찬


버섯데침부피가 너무 커기 때문에 일일이 한 송이 한 송이 손으로 찢어야 한다 ⓒ 이종찬


'샤브샤브'란 일본말 버리고 '데침'이란 우리말 쓰자 

너도 나도 웰빙을 외치는 요즈음, 입에 넣으면 살살 녹아내리는 향긋하고도 쫄깃한 맛이 그만인 버섯데침이 인기를 끌고 있다. 데침(샤브샤브)은 끓는 국물에 고기나 야채, 해물 등을 살짝 데쳐 먹는 조리를 말한다. 글쓴이가 '샤브샤브' 대신 순 우리말로 '버섯데침'이라 이름 지은 것도 샤브샤브란 말이 '살짝 살짝 혹은 찰랑 찰랑'이라는 일본어 의태어에서 온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불로초'라 불리는 버섯을 먹기 시작했을까. 우리나라에서 버섯이 기록에 처음 나오는 것은 김부식(1075~1151)이 쓴 <삼국사기>다. 이 책에는 "선덕여왕 3년, 서기 704년에 금지(金芝)와 서지를 진상물로 왕에게 올렸다"고 나와 있다. 이와 함께 조선시대 명의 허준(1539~1615)이 쓴 <동의보감>에도 버섯 약용법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동의보감>에는 "버섯류는 기운을 돋우며 식욕을 증진시키고 위장 기능을 튼튼히 해준다. 시력을 좋게 하며 안색을 밝게 해 준다"고 씌어져 있다. 이와 함께 "검은색을 띠는 표고, 목이, 석이버섯은 항암 효능이 뛰어난 동시에 오래 먹으면 스테미너가 좋아지는 효능이 있다.  느타리버섯은 풍병과 몸의 찬 기운을 없애고 근육과 경락을 풀어 준다"고 되어 있다.

버섯연구소에 따르면 버섯은 종류에 상관없이 소화율이 높은 저칼로리, 고 비타민 건강식품이다. 버섯은 고혈압이나 동맥경화증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바이러스 감염 예방, 암에 대한 면역력 증강, 노화방지와 신진대사 촉진 등 생리 효능이 뛰어나다. 알칼리 식품인 버섯은 또한 몸의 산성화를 막아 피로까지 풀어준다.

버섯데침속배추, 미나리, 대파 등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 있는 데침용 맛국물 ⓒ 이종찬


버섯데침밑반찬으로 총각김치, 배추김치, 콩나물, 배추열무나물, 물김치 등이 식탁 위에 올라온다 ⓒ 이종찬


'불로초' 버섯은 하늘이 땅에 내린 만병통치약

"버섯은 하늘이 땅에 내린 만병통치약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버섯의 종류도 수천 가지에 이를 정도로 많고, 먹을 수 있는 버섯만 해도 수백 가지가 넘지요. 하지만 독버섯도 꽤 많기 때문에 야생에서 직접 채취할 때는 반드시 전문가와 함께 해야 합니다. 석가모니도 독버섯을 잘못 먹어 열반에 들었다고 하지 않습니까."

지하철 분당선을 타고 경기도 성남에 있는 태평역에 내려 소망병원 옆으로 가면 '2008년 맛깔스런 경기 으뜸 음식점'으로 선정된 버섯조리 전문점이 하나 있다.  50평 남짓 널찍한 이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주방 한 켠에 수북이 쌓인 느타리버섯과 그 버섯을 손으로 만지작거리고 있는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다.  

언뜻 보기에 하얀 배를 내보이고 있는 꽃게 같은 이 버섯을 만지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나그네가 "그 많은 버섯을 왜 일일이 다 살펴봅니까?"라고 묻자 "버섯송이가 한 덩어리로 붙어 있어 부피가 너무 커기 때문에 일일이 한 송이 한 송이 손으로 찢어야 한다"며, 느타리 몸뚱이처럼 하얗게 웃는다.

이 집 주인 황기철씨는 "성남 곳곳에 버섯조리 전문점이 꽤 많이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문을 닫았다"고 말한다. 황씨는 "저희 집은 맛국물을 다른 버섯조리 전문점과 차별화했다"며 "버섯 샤브샤브에 쓰는 쇠고기도 다른 집들은 가격이 비싼 목심을 쓰지만 저희 집은 가격도 낮고 오래 끓여도 육질이 부드러운 부채살로 쓴 것이 생존비법"이라고 말했다.

버섯데침엄청나게 큰 접시 위에 느타리, 표고, 양송이, 새송이 버섯이 푸짐하게 올라온다 ⓒ 이종찬


버섯데침하얀 눈송이가 콕콕콕 박힌 듯한 쇠고기, 돌돌돌 말린 빛깔 고운 쇠고기 부채살이 맛깔스럽게 곁들여진다 ⓒ 이종찬


거무스레하면서도 시원하고 뒷맛이 깔끔한 맛국물 비법은 가다랑어포

"저희 집에서 나오는 팽이버섯이 노란 색을 띠는 것은 자연산 황금팽이버섯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들은 인천에 있는 한농버섯이라는 농장에서 키우고 있는 싱싱한 버섯을 매일매일 가져다 쓰지요. 그래서 그런지 손님들이 버섯향이 아주 진하고 쫄깃거리는 감칠맛이 참 좋다고 그래요."

12월 25일(목) 크리스마스 날 저녁 6시에 찾은 성남시 수정구에 있는 버섯조리전문점. 자리에 앉아 이 집이 자랑하는 버섯 샤브샤브(8천 원)를 시키자 밑반찬으로 총각김치, 배추김치, 콩나물, 배추열무나물, 물김치 등이 식탁 위에 올라온다. 이어 속배추, 미나리, 대파 등 여러 가지 채소가 들어 있는 데침용 맛국물이 놓인다.

까무잡잡한 빛을 띠고 있는 시원하고도 깔끔한 뒷맛을 자랑하는 이 집 맛국물 비법은 가다랑어포를 우려내는 데 있다. 그렇다고 멸치나 다시마 등 맛국물을 낼 때 들어가는 기본 재료를 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이렇게 만든 맛국물에 여러 가지 채소를 다시 넣은 것도 국물이 더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나게 하기 위해서란다.

맛국물이 마악 끓기 시작했을 때였을까. 엄청나게 큰 접시 위에 느타리, 표고, 양송이, 새송이 버섯이 푸짐하게 올라온다. 피라미드처럼 차곡차곡 쌓인 싱싱한 버섯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을 반쯤 벌리고 있을 때 하얀 눈송이가 콕콕콕 박힌 듯한 쇠고기, 돌돌돌 말린 빛깔 고운 쇠고기 부채살이 맛깔스럽게 곁들여진다.

버섯데침하얀 눈송이가 콕콕콕 박힌 듯한 쇠고기 ⓒ 이종찬


버섯데침쇠고기 부채살을 젓가락으로 집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뜨거운 맛국물에 넣어 살랑살랑 몇 번 흔들어 입에 넣자 솜사탕 녹듯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 이종찬


빠듯한 생활고에 대드는 마누라도 이 맛 앞에서는...

소주 한 잔 입에 탁 털어 넣고, 쇠고기 부채살을 젓가락으로 집어 보글보글 끓고 있는 뜨거운 맛국물에 넣어 살랑살랑 몇 번 흔들어 입에 넣자 솜사탕 녹듯이 사르르 녹아내린다. 맛국물에서 열심히 헤엄치고 있는 여러 가지 버섯을 설렁설렁 건져 먹는 맛도 일품이다. 입으로 가져가는 순간 은은한 버섯 향과 함께 쫄깃쫄깃 씹히는 감칠맛이 깔끔하기 그지없다.

살짝 데친 쇠고기 부채살을, 송송 썬 양배추와 양파 등이 곁들여진 양념장에 찍어먹는 맛도 부드럽고도 쫄깃한 맛이 깊다. 첫 입맞춤을 할 때 다가오던 그 찌릿찌릿하면서도 은근슬쩍 미끄러지는 그 느낌 그대로다. 가끔 집어먹는 총각김치와 배추김치도 매콤하면서도 달착지근한 깊은 맛이 입 안에 오래 남는다. 

'불로초'라는 버섯! 그것도 여러 가지 버섯을 시원하고도 깊은 국물 맛이 끝내주는 맛국물에 살랑살랑 흔들어 먹는 이 담백한 맛!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고 자꾸만 젓가락이 가는 이 향긋하고도 깔끔한 뒷맛을 어찌하랴. 빠듯한 생활고에 고개 빳빳이 치켜들고 남편에게 대드는 마누라도 아마 이 맛 앞에서는 고개를 절로 숙이리라.

한동안 쇠고기 부채살과 버섯이 마구 헤엄치고 지나간 맛국물에 남은 버섯을 몽땅 다 집어넣고 칼국수를 보글보글 끓여먹는 맛도 그만이다. 그렇게 먹고도 약간 모자란 듯하다는 기분이 든다면 자작하게 남은 맛국물에 밥 한 공기와 김가루, 참기름을 넣고 볶아먹는 재미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다.    
   
신비스런 영약이자 '불로초'라 불리는 버섯! 기축년 새해 들어 일 년 동안 살아갈 궁리를 요모조모 하며 가족들과 오붓하고도 즐거운 한 끼 식사를 나누고 싶다면 버섯데침을 먹어보자. 건강에도 좋고 영양가도 만점인 버섯데침을 맛깔스럽게 먹다 보면 저만치 멀어져 보이는 새로운 희망 하나가 살그머니 다가서리라.      

버섯데침맛국물에 남은 버섯을 몽땅 다 집어넣고 칼국수를 보글보글 끓여먹는 맛도 그만이다 ⓒ 이종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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