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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 추워도 신나잖아요"

자원봉사 진면목 보여준 '틔이'

등록|2009.01.06 13:52 수정|2009.01.06 15:24
"저 지난번 자원 봉사 약속한 학생인데요, 거기 어떻게 가요? 여기 터미널 근처거든요."
"자원봉사 약속한 학생이요?"

자원봉사를 약속했던 학생이라고 찾아온 학생은 운전하고 왔다는 학부모와 함께 쉼터를 들어섰습니다. 학생은 작년 연말에 우리 쉼터에서 자원봉사를 모집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전화 문의를 했던 학생이었습니다.

정작 필요할 때 나타나지 않았다가, 뜬금없이 자원봉사를 하겠다는 학생이 부모의 손을 잡고 찾아온 이유는, 아직 철부지라서라기보다는 '봉사활동인증서'가 필요해서라는 것쯤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던 터라, 늘 하던 대로 "봉사할 만한 것이 있는지 몇 주간 꾸준히 이곳 활동을 살펴보고 스스로 판단해서 말하면 할 수 있도록 하지요"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자 그 학생과 학부모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인사를 하고 돌아가더군요.

지난 연말 열흘 동안 우리 쉼터에서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후원으로 수원 IC 톨게이트 모금을 한 바 있습니다. 모금 활동을 위한 최소 자원봉사 인원은 1일 24명이었습니다. 그 일로 우리 쉼터에서는 자원봉사자를 모집하기 위해 인근 지역 모 기업 사회공헌팀을 비롯한 몇몇 단체에 자원봉사 협조를 부탁했었습니다.

자원봉사자 모집이 어려울 것이라는 당초 예상과는 달리 공문을 받은 단체들의 반응들이 너무 좋아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놓고 봉사 시간을 배정하지 못해 귀한 시간을 할애한 분들의 아까운 시간을 거리에서 허비하게 하지 않기 위해 참여의사를 나중에 밝힌 분들에게는 양해를 구해야 할 정도였습니다.

기업 사회공헌팀에서는 "모금 활동기간 동안 사회공헌팀만 아니라 전 직원들을 독려해서 봉사활동에 참여토록 하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였습니다. 또 다른 단체에서는 졸업을 앞둔 고3학생들과 학부모 17명이 한꺼번에 신청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모금 활동 시작을 앞두고 삐거덕거리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자원봉사를 약속했던 해당 기업이 경제위기로 금년 1월 4일까지 휴무를 결정한 것이었습니다. 사회공헌팀 담당자는 모금 시작 며칠 전까지만 해도 "회사가 휴무를 결정했지만, 그래도 방안을 모색해 보겠다"며 희망적인 답변을 계속하더니, 결국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아서…"라며 자원봉사자를 모집하지 못하겠다고 전해 왔습니다. 이어진 악재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서 고3 졸업생들의 참여를 제한한다고 뒤늦게 밝히면서, 학생과 학부모로 구성된 팀이 와해돼 버린 것이었습니다.

자원봉사자를 모집했던 입장에서는 "회사가 휴무면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더 용이할 텐데. 이럴 때일수록 기업의 사회공헌을 실천하는 것도 좋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았지만, 불황을 모르던 회사의 휴무로 사람들이 의기소침해져서 그럴 수도 있겠다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그런데 학생들과 학부모가 팀을 이뤄 봉사하겠다고 했던 학부모들에게는 그런 아쉬움과 함께 우리 사회 자원봉사 의식 수준을 확인할 수 있어서 씁쓸함이 더했습니다.

모름지기 자원봉사란 자발적 의사와 선택에 의해 이뤄지는 행동으로, 어떠한 대가를 바라기보다는 사회 전체의 편안을 도모하기 위한 사회적 책임감을 갖고 하는 행위인데, 학생들의 자원봉사 기회가 차단되었다고 해서 학부모들까지 자원봉사 약속을 저버린 것은 자녀 교육에도 좋지 않을 것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톨게이트 모금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틔이톨게이트 모금으로 마련된 기금은 결혼이주민 가정 지원을 위한 한국어교실 등에 쓰일 예정이다. ⓒ 고기복


한편 자원봉사 약속들이 어긋나며 힘을 빼는 사람들이 있는 것과 달리 예상치 않았던 원군들도 있었습니다. 그 중 한국 생활 5년을 넘긴 결혼이주민 틔이씨의 참여는 누구보다 눈에 띄었습니다.

틔이는 모금 당시 '금년 들어 가장 춥다는 날씨에도' 톨게이트 모금을 하며 신이 나 있었습니다. 방긋 웃는 얼굴로 "안녕하세요. 사랑의 열매입니다. 사랑을 나누면 희망이 자랍니다. 함께 하면 좋은 세상 됩니다"라는 인사를 하면 톨게이트를 나서는 운전자들은 그냥 지나치다가도 한 번 더 돌아보며 모금에 호응해 주었습니다.

"내가 돈 벌겠다는 것 아니잖아요. 다른 사람들 돕겠다고 하는 일이니까,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추워도 신나잖아요."

평소 숫기 없다고 여겼던 틔이씨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자원봉사란 것이 여유 있는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약속해 놓고 형편에 따라 임의대로 해도 좋고 말아도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실천되어질 때 우리 사회가 더욱 아름다워질 것이라는 것을 틔이씨의 말을 통해 되새겨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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