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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교는 '망교'... 빚 지고 봉됐다"

[현장] 입주 일주일된 판교신도시... 썰렁한 분위기 속 보증금 인하 시위도

등록|2009.01.07 10:34 수정|2009.01.07 11:26

▲ 판교신도시 첫 입주 아파트인 부영 '사랑으로' 임대아파트 인근에서 바라본 판교신도시의 모습.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아 을씨년스럽다. ⓒ 선대식


"판교 로또? 다 옛날 얘기다. 지금은 판교 분양받아서 망했다고 해서 '망교'라고 부른다."

6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의 A공인중개사무소 김철호(가명) 대표는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판교 로또'를 분양 받은 뒤 최근 분양권을 팔게 된 사람들은 죽겠다고 한다"며 "내가 '돈은 나중에 벌면 된다'고 위로해주고 있다"고 전했다.

2006년 분양 당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판교신도시는 지난달 31일 썰렁한 분위기 속에 입주가 시작됐다. 거리와 아파트에는 '입주를 축하합니다'는 플래카드가 눈에 띄었지만, 이사를 위한 사다리차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은 아파트에서 중장비가 움직이는 소음만 퍼질 뿐,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사람들의 웃음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날 오전에 찾은 판교신도시는 춥고 흐린 날씨 속에서 을씨년스러운 풍경으로 기자를 맞았다.

'입주환영' 플래카드 나부끼지만 이사차량은 없었다

▲ 지난달 31일부터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에서 처음으로 입주를 시작한 부영 사랑으로 임대아파트. 6일 찾은 이 아파트는 '입주를 축하한다'는 플래카드가 무색할 정도로 낮은 입주율은 보였다. ⓒ 선대식


'부영 사랑으로' 임대아파트는 판교신도시 첫 입주 아파트다. 입주 일주일째인 이날 오전까지의 성적은 참담하다. 371가구 중 입주를 한 곳은 단 2가구. 입주율은 0.53%다.

인근 아파트가 공사 중이라 이 주변은 공사차량으로 가득했다. 또한 보도블록 공사가 끝나지 않아 어수선한 모습이었다. 아파트 상가는 텅 비어있었다.

입주가 시작된 아파트 단지 들머리에 으레 진을 치는 초고속인터넷·정수기·학습지·우유 업체 사람들도 보이지 않았다. 입주자들의 전화 설치를 돕기 위해 나온 KT의 천막뿐이었다. KT 관계자는 "보통 일주일째면 입주 준비로 북적거려야 하는데, 이렇게 썰렁한 입주는 처음"이라고 말했다.

단지 입구엔 판교신도시 입주종합상황실에서 나온 차량이 서있었다. 매일 현장에 나온다는 조병열 차장은 "경기 상황이 좋지 않아 전세가 빠지거나 집이 팔리지 않아 입주가 늦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예전엔 판교신도시를 기를 써도 살 수 없었는데, 이젠 싼 매물이 나와 골라 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파트 단지는 적막감이 감돌았다. 보강공사를 하는 인부들과 몇몇 취재진만 눈에 띄었다.

안 그래도 비싼 판교 아파트, 경기 한파에 잔금 마련 못해

▲ 6일 찾은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 첫 입주아파트인 부영 사랑으로 임대 아파트 상가가 텅 비어있다. ⓒ 선대식


1시간여를 기다린 끝에 입주예정자 김숙자(가명·62)씨를 만날 수 있었다. 처음엔 투자 목적으로 아파트를 샀다는 그는 "입주를 하고 싶은데 못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김씨가 들어갈 76㎡(23평) 아파트의 보증금은 1억6천만원. 이중 계약금과 중도금을 합쳐 7500만원을 냈다. 대출 이자만 매월 40만원.

현재 살고 있는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112㎡(34평) 아파트를 팔아 잔금과 빚을 해결할 계획을 세웠지만, 차질을 빚고 있다. 한때 4억원이던 아파트를 지난 9월 3억6천만원에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기 때문이다. 집을 보러오는 손님도 없다. "매달 막대한 이자 부담이 힘겹다"는 박씨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죽겠다"고 말했다.

반면 관리사무소 쪽은 "입주가 잘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회사 부영 관계자는 "연말연초인 탓에 입주가 늦어지는 것 뿐"이라며 "지금까지 20~30여 명이 입주 준비를 하기 위해 찾아왔고, 이미 대여섯명이 잔금을 치르고 아파트 열쇠를 가져갔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좋지 않았다. 이곳 관계자는 아파트 분양 정보 책자를 달라는 기자의 요청에 "더 이상 취재하지 말아달라"고 말했다.

한쪽에선 "아파트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아파트가 부실 공사됐다"며 분통을 터트리는 입주예정자들이 눈에 띄었다.

철거민 특별분양을 받은 박명숙(50)씨는 그들 중 한 명이다. 그가 들어갈 105㎡(32평) 아파트의 보증금은 2억3천여만원. 계약금과 중도금을 합쳐 1억5천만원을 냈다. 잔금은 박씨가 현재 월 60만원을 내며 살고있는 아파트의 보증금과 대출을 보태 마련할 생각이었지만, 집이 나가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같은 크기의 일반분양 아파트 전세가격이 1억 5천만원으로 떨어진 걸 생각하면 박씨는 잠을 이룰 수 없다. 그는 "비싼 돈 내고 시설 좋지 않은 임대 아파트에 살게돼 억울하다"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김철호 대표는 "판교신도시 전월세 시장이 죽을 쓰고 있다"며 "(일반분양) 입주예정자들이 이자 부담 때문에 전월세를 내놓고 있는데,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최고 2억원까지 올랐던 79㎡(24평) 아파트의 전세가격은 현재 1억2천만원까지 내렸지만, 이마저도 집주인의 희망가격일 뿐이다.

전월세 가격 하락은 수요가 없기 때문이지만, 집값 하락 탓도 크다. 김 대표는 "'떴다방'들이 분양가 4억 내외였던 105㎡ 아파트에 피(프리미엄)를 1억 5천만원 붙여서 샀다. 하지만 현재는 좋은 층만 분양가격 거의 그대로 매매가 된다"고 밝혔다.

"줄 서서 판교 샀는데, 봉됐다"

오는 15일부터 입주가 시작되는 인근의 '대방 노블랜드' 임대아파트 앞에서는 입주예정자 10여 명이 모여 "보증금 인하" "해약금 인하" 등을 외치고 있었다.

박학현(50)씨는 "105㎡ 임대아파트의 보증금이 2억 5천만 원, 월임대료가 60만 원으로 너무 비싸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를 비롯, 인근의 부영 사랑으로·모아 미래·진원 로제비앙 등 4곳의 임대아파트 입주자들은 보증금 인하 소송을 냈거나 준비하고 있다.

"잔금 1억원이 남았지만 마련할 계획조차 못 세웠다"는 박씨는 "전세 보증금 5천만원과 대출을 받아 잔금을 치르려 했지만, 전세가 빠지지 않고 대출을 받고 싶어도 대방건설 사정이 어려워 은행에서 대출을 해주지도 않는다"고 밝혔다.

▲ 6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신도시 두번째 입주 아파트인 대방 노블랜드 임대아파트의 입주예정자들이 건설회사 쪽에 "임대료 인하"를 요구하기 위해 모여 상의하고 있다. ⓒ 선대식

그렇다고 해약할 수도 없다. 해약금은 보증금의 10%로,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동현(가명·49)씨는 "해약금 2500만원과 발코니 확장 등 옵션비 2000만원에 지금까지 낸 대출 이자까지 합하면, 해약할 경우 5000만원을 손해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 목적으로 이 아파트에 청약했던 한수현(가명·44)씨 역시 화가 잔뜩 나있었다. 서울 역삼동의 12억원짜리 아파트를 8억원에 내놓았지만 팔리지 않는다. 전세도 안 나간다. 잔금을 치르지 못한 채 이자만 매달 부담하고 있는 상황. 그는 씩씩거렸다.

"판교 로또라고 해서 기대를 정말 많이 했다. 피를 1억원 넘게 받을 줄 알았다. 줄서서 판교 샀는데, 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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