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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를 열며 새 정치를 갈망한다

등록|2009.01.07 14:24 수정|2009.01.07 14:24
하루가 지나고 또 하루를 맞는다. 한 해를 보내고 또 한 해를 맞는다. 우리는 이런 시간의 연속성에 금을 긋고 굳이 새 해, 새 아침에 의미를 부여한다. 지난 해를 돌이켜 보며 우리는 새 아침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지난 해, 우리는 불타는 남대문을 넋 놓고 바라보면서 국보 1호조차 보전 못한 충격과 참담한 부끄러움으로 한 해를 시작했다. 그리고 격동하는 세계 속에서 새로 뽑은 대통령 밑에서 참으로 고단한 한 해를 보냈다. 일년 내내, 평정을 잃고 요동치는 정치와 경제를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가 이렇게 후진적인가 라는 탄식으로 한 해를 마감했다. 이제 우리는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라는 명제에 대해서도 심각한 회의를 하게 되었다.   

무엇부터 잘못되었는가? 이명박 정권은. ‘전 국민을 부자로 만들겠다’ 라는 구호를 내세워 선거에서 승리했고 물신숭배를 이 사회의 지배 이데올로기로 내세운 정권이다. 이런 캐치 프레이스는 한국경제의 성장과정에서 소외된 빈곤층과 온갖 험한 일을 하면서 겨우 중산층에 대열에 오른 많은 사람들에게 그들에게도 물질적 신분 상승의 희망이 있다는 기대와 욕망을 부풀리게 했다.

그러나 부자들로 구성된 내각과 보좌 진은 극소수의 부자 가슴에 박힌 대못은 빼고 부자를 더욱 부자로 만드는 정책에는 열심이었으나 국민 대다수의 기대와 아픔은 외면했다. 오히려 그들은 겨우 이룩한 최소한의 사회 안전망을 해체하며 역진적 분배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한국 사회에서 빈부 문제는 이제 노골적으로 갈등의 이슈로 등장했다. 그리고 계층 간의 첨예한 대립은 외교, 통일문제에서 교육에 이르기까지 사회 전 부문에 확산됐다.

지난 초여름부터 거리를 뒤덮은 촛불의 행진은 겉으로는 미국에 대한 쇠고기 시장의 헤픈 개방으로 촉발된 것으로 보였다. 물론 미국 역사상 최악이라고 평가 받는 부시에 대한 추종이 국민들의 실망과 빈축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정권에 대한 기대의 때 이른 좌절과 배신감 때문이 아니라면 촛불집회의 열기를 도저히 설명할 수 없다. 이런 불만을 표출할 미디어 환경은 독과점 신문에 의해 폐쇄당하고 그들을 대변할 국회는 무기력하게 흐느적거리는 정치환경에서 국민들은 인터넷 광장에서 모이고 거리로 뛰어 나왔다. 그것은 대의 민주주의에 대한 철저한 불신과 새로운 정치 파라다임을 찾아 헤매는 민중의 호소였다. 그러나 대안 없이 어찌할 건가. 직접 민주주의의 짧은 실험은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었다.

때 맞추어 진행된 미국의 대선을 바라 보면서 우리 국민은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후보 경선 과정이나 본선에서 보여준 미국의 선거 쇼는 우리의 정치 현실을 한없이 초라하게 만들었다. 국민의 마음에 다가가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 하는 후보자들을 보면서 우리는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가 어떤지를 똑똑히 보았고 거짓과 비방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우리 현실에 환멸을 느꼈다. 그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바마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탄생했을 때 우리는 미국의 힘을 다시 보았다. 이제는 분명 노쇠해 가는 대 제국, 미국이 변화를 앞세운 젊은 흑인을 내세워 생명력을 다시 얻음으로써 팍스 아메리카나를 다시 연장하는 기적을 우리는 바라 보았다.     

우리에겐 그런 기적이 일어날 수 없을까? 이런 전 세계적인 열풍에 자극 받아 청와대는 오바마나 이명박 대통령이나 서로 닮았다는 촌평을 내 놓았다는데 그것은 아마도 지난 해 최고의 코미디로 뽑아야 할 것 같다. 비교를 위해 오바마가 당선 직후 시작한 노변담화의 한 부분을 인용한다. 앞으로 현실정치에서 그의 이상이 얼마나 희석될지는 두고 보아야겠지만 국민들의 아픔을 같이 나누고 도우려는 그의 자세가 한없이 부러워서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즉각적인 행동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많은 부모들이 다음 달 생계비를 걱정하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침에 출근했다가 오후에 책상을 비우라는 통보를 받고 돌아온 사람들이 있습니다. 평생 모은 돈을 날려버린 은퇴자들, 꿈을 접어야 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이 미국인들은 바로 지금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런 위로의 소리조차 듣지 못하는 불행한 국민이다. 이제 이명박 대통령은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불황 때문에 우리 경제가 나빠지고 있다고 변명한다. 하지만 잘 살지도 못하는 나라에서 부의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생존을 위해 온몸을 던져 일하는 성실한 국민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고, 수 많은 젊은이를 절망으로 내 모는 정책을 택한다면 세계경제가 아무리 호황이라도 한국경제는 나빠질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환경에서 첨예화되는 갈등이 사회적 혼란을 일으킬 때 폭력으로 이를 억누르려고 준비한다면 그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 정치는 아직도 후진적이어서 국민들은 선거 때마다 농락을 당하지만 사회 발전을 향한 끈질긴 집념이 결국 응집되어 역사의 수레바퀴를 앞으로 돌려왔다는 사실은 짧지 않은 우리 역사가 보여주고 있다. 이 땅의 정치가가 제 자리를 찾아주기를 바라는 희망은 올해도 헛된 꿈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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