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힘차게 날아 오르는 철새들 ⓒ 이경모
몇 개월 전부터 계획한 가족여행을 출발했다.
여행은 사람들을 들뜨게 하고 설레게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뿌듯한 즐거움과 행복을 만끽하고 추억 하나를 만들어 온다. 그런데 우리가족의 이번 여행은 조금 다르다.
슬픔 고통 허전함으로 넘실대는 가슴을 가라앉히며 견뎌낸 2008년을 서로 다독거리며 위로하고, 가라 앉아 있는 마음을 일으켜 세워 새로운 희망과 꿈을 찾으러 간 여행이다.
고3 손녀딸을 뒷바라지 한 어머니. 군복무 10개월 만에 첫 휴가 온 아들, 흔들림 없이 수능을준비하고 시험 치른 딸이 함께 떠났다.
여행지는 자연이 살아서 숨 쉬는 곳, 경남 창녕 우포늪.
광주에서 창녕까지는 3시간 정도 소요됐다.
우포늪에 도착해 생태관을 둘러보고 우포늪 입구에 들어섰다.
눈에 들어 온 것은 커다란 호수.
붕어마름, 자라풀, 가시연꽃 등 수생식물들이 수면 아래로 내려앉고 그 위로 얼음이 얼어 늪이라는 느낌이 없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실망도 했다.
물 가운데 얼음이 얼지 않은 곳에 철새들이 보였지만 아스라이 보일 뿐이었다.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노랑부리저어새를 볼 수 있었다.
일상에서도 그렇지만 뭔가를 찾으려 애쓰면 그 대가가 있다. 특히 여행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 우포늪 사이에 있는 억새밭 ⓒ 이경모
우포늪 탐방코스 중에 1코스와 2코스를 선택했다. 먼저 2코스로 갔다.
우포늪에서 첫 번째 탄성은 우포늪 사이에 있는 억새밭에서다. 사람 키보다 더 자란 억새, 겨울에 만 입는 따뜻한 색깔의 옷을 입고 품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는 벌써 물이 오르기 시작한 왕버들이 우리가족을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왕버들 밑에 매달려 있는 쪽배는 봄을 기다리며 휴식 중이었고 그 옆에 물 닭만 먹이를 찾아 부산히 움직인다.
▲ 봄을 기다리며 휴식 중인 쪽배 ⓒ 이경모
목포대제방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가족사진을 한 장 찍었다.
목포대제방 쪽 끝까지 걸어갔다.
그런데 제방 끝, 산 너머에서 초여름에 시골에서나 들었던 개구리 합창이 들렸다.
웬 개구리.
산 밑으로 길이 보였다. 늪과 아주 가까운 길이었다. 산 밑 길을 따라 산을 돌아갔다. 그런데 깜짝 놀랄만한 풍경이 눈앞에 있지 않는가.
햇빛이 많이 든 산 아래쪽이어서 얼음이 녹아 새들이 모여들었고 그들의 합창은 마치 개구리 우는 소리처럼 들렸던 것이다.
가까이 가서 새들을 보려 했지만 그들은 나를 받아 주지 않았다. 불청객이었다.
놀라서 날아갔지만 힘차게 날아오르는 새를 보면서 나도 함께 날아오르는 것 같았다.
가까운 곳에서 겨울철새들이 비상하는 것을 처음 봤다.
황홀하고 행복 했다. 또 그것을 카메라에 담은 것은 행운이었다.
▲ 천연기념물 제330호인 수달 ⓒ 이경모
입구로 돌아오는 길에 천연기념물 제330호인 수달도 만났다. 또 하나의 선물이었다.
▲ 물 빛 하늘 빛이 똑같은 우포 ⓒ 이경모
1천여 종의 생명체가 있다는 우포, 그래서 삶의 격렬함도 있겠지만 겨울 우포늪은 그렇지 않았다.
수생식물이 수면위로 고개를 내밀어 초록의 융단을 깔아 놓은 늪도 볼 수는 없었지만 왕버들에서, 얼음 아래 물풀들은 봄을 준비 하고 있었다.
물 빛 하늘빛이 똑같은 우포늪, 물은 얼어 있었지만 겨울의 찬바람 냄새는 없다.
▲ 해질녘 우포늪 ⓒ 이경모
▲ 2코스 대대둑에서 만난 철새 ⓒ 이경모
해질녘 우포늪을 뒤로하고 발길을 옮겼다.
자유롭고 한가롭게 나는 철새들을 탈속(脫俗)한 눈으로 볼 수 없어 아쉬움도 남았다.
봄을 준비하는 우포는 우리가족에게 정말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덧붙이는 글
가족여행에 아내는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아니 저 높은 곳에서 함께 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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