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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들을 위한 동화] 그녀가 사라졌다

그렇게 바람을 피우고 돌아와도 그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등록|2009.01.07 17:45 수정|2009.01.07 17:52
벌써 이 골방에 처박혀 어디로 간 지 알 수 없는 내 반쪽을 기다린 지도 벌써 일주일째다. 항상 함께 있어서 그녀의 소중함을 몰랐던 것을 뒤늦게 후회해 보지만, 이젠 그녀가 돌아오기를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녀의 체취가 그리워지고 그녀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그녀가 돌아오지 않으면 어쩌면 나도 그녀를 따라 다시는 이 골방으로 돌아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 조바심이 난다. 내가 조금만 더 신경쓰고 챙겨 주었더라면 이런 일은 발생하지 않을텐데….

기다림보다 더 나를 괴롭히는 것은 지독한 외로움이다. 모두들 짝을 이루고 다정히 서로가 서로를 감싸 안은 채 온기와 아득함을 누리는 부부가 부럽다. 지독한 고독이 밀려온다. 골방사이 간신히 들어온 한 줄기 빛에 내 몸을 비춰본다.

몇 가닥 남지 않은 천으로 나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 측은하다. 늘 함께 있는 것이 지겨워 그녀를 버리고 중년의 사랑이라는 삼류 감성에 젖어 바람을 피웠고 사람들은 그런 우릴 두고 손가락질을 했다. 그러나 난 그건 바람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우겼다. 그땐 몰랐다.

내가 다른 여자와 함께 돌아다닐 때 이 골방에서 지독한 외로움과 삶에 대한 공포까지 느끼며 몸을 떨었을 그녀를 생각해 보지 못했다. 그렇게 바람을 피우고 돌아와도 그녀는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다.

이제 그녀가 떠나갔다. 그녀가 돌아오더라도 이젠 나를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내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그녀가 기다려진다. 내 목숨을 조금이라도 늘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단지 죽기 전에 그녀가 보고 싶다. 사죄하고 싶다.

어쩌면 자신의 인생만 생각하는 지독한 이기주의와 배신감, 그리고 긴 방랑의 여정 끝에 닳아버린 내 모습을 보고 집을 나간지도 모른다. 함께 태어나 함께 죽자고 맹세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그녀는 간다는 말도 없이 사라졌다. 그녀를 만나면 혼을 내줘야겠다. 지독한 증오는 사랑이라고 했던가? 야속하다. 그녀가 돌아오면 나 만나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는 꼭 해 주고 싶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없다. 그녀가 오늘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나도 이 방에서 나가야 한다. 이 방을 나가면 갈 곳이 없다. 내가 죽는 것은 두렵지 않다. 내가 이 방에서 나간 뒤 그녀가 돌아온다 해도 그녀 역시 나와 같은 전철을 똑같이 밟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슬프다.

차라리 돌아오지 않는 것이 더 편할지도 모르겠다. 그럼 세상 어딘가에 살고 있겠지 하며 위로라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비록 한 몸은 아니지만 함께 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것을 왜 이렇게 늦게 깨달았는지 후회스럽다.

그녀는 결국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밤 알뜰하고 인내심 많은 아줌마가 골방에서 나를 꺼낸다.

"에고! 양말 한 짝은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아직 한 번 더 신을 수 있는데. 아깝지만 버려야지 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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