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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우리도 직접민주제 시행할 때다

[서평] 브루노 카우파만· 롤프뷔치· 나드야 브라운의 <직접민주주의로의 초대>

등록|2009.01.08 10:16 수정|2009.01.08 10:43
우리에게 대의민주제가 참된 민주제였나?

책겉그림〈직접민주주의로의 초대〉 ⓒ 리북

어린 초등학교 시절의 반장선거는 모든 아이들의 관심사였다. 시골 학교라 아이들도 많지 않았고, 6학년이 되는 동안 한 번쯤은 반장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중고등학교와 대학생 때는 경쟁자들이 너무 많아 먼발치에 섰다. 그때는 투표만 참여할 뿐 공약 같은 것은 관심 밖이었다.

나이가 들어 참여하게 된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는 어떠했나? 정책보다는 지역정서와 정당위주의 인물 투표에 열을 냈던 것 같다. 물론 비례대표제가 도입된 이후에는 조금은 달라졌다. 인물과 정당과 정책을 구분해서 내 뜻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머리털 나고 지금까지 행한 나의 투표 방식들은 선거민주제요, 곧 대의민주제였다. 군입대전까지만 해도 대표만 잘 뽑아 놓으면 뭐든 잘 굴러갈 것으로 생각했다. 최근에는 그런 생각이 180도 달라졌다. 정치인들 대부분이 우리나라의 백년대계 보다는 특정 이해 세력들을 대변하는 정책에만 열을 올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녹색뉴딜정책과 같은 엄청난 규모의 예안이 소요되는 국책사업이나, 한미 FTA와 같은 외국과의 조약이나, 신문·방송법 개정이나, 헌법 수·개정과 같은 굵직한 나랏일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뜻이 전혀 반영될 수 없게 된다. 그것은 결코 참된 민주제라고 할 수 없다.

참된 민주제는 직접민주제에 달려 있다

브루노 카우파만, 롤프뷔치, 나드야 브라운의 〈직접민주주의로의 초대〉는 진정한 의미의 참된 민주제를 가르쳐 주고 있다. 스위스의 정치 체제를 모델로 하고 있는 이 책은 이제까지 행하던 정부발의의 국민투표에서 시민발의의 국민투표로 전환시킬 수 있는 지침서라 할 수 있다.

이제까지 정부주도의 국민투표는 대부분 권좌에 있는 자들이 권력을 동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삼아왔다. 하지만 시민발의의 국민투표는 시민 스스로가 정치적 의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국민투표를 통해 법으로 제정하기에, 정치인들이 의사결정권을 독점할 수 없으며 시민과 나눌 수밖에 없다. 시민들이 '비상근 정치인'의 지위를 누리게 되는 셈이다.

직접민주제는 비단 정치권력의 분배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경제발전에도 많은 영향을 준다. 대의민주제로 인해 나타나는 사회적 갈등의 비용을 고려하면, 그것은 의사결정의 공정성과 사회적 합의로 인해 얻는 경제적 수혜가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시민들이 나랏돈의 예·결산에 참여하게 되면 조세회피 비율도 그만큼 낮아질 것은 뻔하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는 정치를 보다 더 활발하게 대화하는 정치로, 정치결정을 보다 더 투명하게 만들고, 일체의 행위와 거래들을 평가와 감시의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공공영역의 질을 높인다. 효율성을 속도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의사결정 기반이 넓으면 넓을수록 주요한 정책결정의 과오로부터 안전하다. 그리고 결정에 주어지는 합법성이 크면 클수록 이행에 있어서 더욱 효율적인 길을 깔아준다." (144쪽)

그런 이유 때문에 스위스에서는 끊임없이 연방정부 차원의 헌법과 관련된 시민발의가 제기되고, 주정부 차원에서는 각종 법안과 관련된 시민발의가 제기된다고 한다. 더욱이 유권자 10만 명 이상의 서명이 있을 경우 연방헌법의 개정도 요구할 수 있다고 한다. 시민들이 얼마나 능동적이고 역동적일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우리도 직접민주제를 시행할 때다

현재 아래로부터의 시민발의와 국민투표를 시행하는 나라는 몇 개국일까? 2차 대전의 종전과 더불어 이탈리아, 호주,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콰도르와 같은 나라들이 직접민주주의를 도입했고, 유럽의 경우에는 헝가리, 이탈리아, 라트비아, 리히텐슈타인, 라투아니아, 스위스, 슬로바키아가 완벽한 형태의 시민발의와 국민투표를 시행한다고 한다.

미국의 여러 주들도 2008년에서 2009년 사이에 12개 이상의 시민발의와 국민투표가 예정돼 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에서는 부동산 소유자와  부유세 등의 이슈가 국민투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유럽연합의 국가들도 2004년 들어 정부 수반들이 모여 EU헌법 개정에 직접민주주의 원칙을 도입하기로 합의했다고 한다. 특히 '개혁조약' 2조에는 1백만 명 이상의 유럽 시민들이 새 법과 법규들을 제안할 권리를 갖는다는 규정도 넣었다고 한다.

가히 직접민주주의의 참여와 도전이 전 지구적 열풍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이러한 때에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당연히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나라로 발돋움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간접민주제로 인해 발생되는 집단이기주를 차단할 수 있고, 소수약자의 권익을 대변해 줄 수 있는 참된 민주제로 거듭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직접민주제가 없지는 않다. 전국단위에서의 국민투표와 지방에서의 주민발의·주민투표·주민소환·주민감사청구·주민소송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국민투표는 위로부터의 국민투표에 지나지 않으며, 주민발의 역시 의회가 심의하고 결정하고 있기에 직접주민 발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주민투표 역시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회계, 계약 및 재산 관리에 관한 사항들은 주민투표의 대상에서 벗어나 있고, 주민투표청구권자의 서명 인수가 5-20% 정도로 되어 있어서 스위스의 평균 2.2%보다 훨씬 높다. 그런 점에서 우리의 주민투표법은 중앙정부의 국가 정책을 수렴하는 정도 뿐이다.

아무쪼록 우리나라도 진정한 의미의 직접민주제를 하루속히 시행했으면 좋겠다. 그것만이 정치결정을 보다 더 투명하고 활발하게 할 수 있으며, 그것만이 의사결정의 기반을 더 넓힐 수 있으며, 그것만이 합법성과 실행력을 효율적으로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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