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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DJ'가 모였다... "우리 우정은 죽지 않아"

[서평] <친구에게 가는 길-두 남자의 평생 우정 이야기

등록|2009.01.09 09:51 수정|2009.01.09 09:52

▲ <친구에게 가는 길-두 남자의 평생 우정 이야기>. 겉그림. 밥 그린 지음. 강주헌 옮김. 푸른숲 펴냄, 2008. ⓒ 푸른숲


"잭은 떠났지만 우리 우정은 죽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삶이 끝날 때까지 영원히 지속될 것이다. 건물은 세워졌다 무너지고, 사람의 명성도 사그라들며, 세월도 찾아왔다 흔적없이 사라지지만, 우정만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값을 헤아릴 수 없는 것, 그 누구도 우리에게서 빼앗아갈 수 없는 것, 그것이 우정이다." (<친구에게 가는 길-두 남자의 평생 우정 이야기>, 219)


해가 뜨고 해가 지고 그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른 얼굴을 하는 하늘에서 무언가를, 아니지 누군가를 찾는다. 몸은 그대로인 채로 오로지 눈만 좌우를 오가면서. 같은 땅 위에 있어도 더 이상은 찾을 수 없고 만날 수 없는 누군가의 자취를 찾는 유일한 방법인 셈이다. 높고 높은 하늘은 아무래도, 불쑥불쑥 누군가를 찾는 나보다 먼저 그를 찾아낼 것만 같아서다. 추억을 거슬러 누군가를 찾을 때면 으레 그렇게 하늘을 본다.
친구, 벗, 죽마고우...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이가 바로 그가 아닐까 싶을 만큼, ‘친구’를 부르는 내 목소리엔 언제나 나를 찾는 소리가 더 많다. 내게 친구란, 나와 너라는 서로 다른 사람이 아니라 서로 비추는 거울 같은 그런 관계다.

솔직한 말을 좀 더 덧붙이자면, 나는 그런 친구를 평생 곁에 두고 싶다. 가까이 있든 멀리 떨어져 있든 그리고 자주 만나든 몇 해 만에 어렵게 만나든, 언제든 내 진짜 모습을 비춰주는 신기한 거울일 것만 같은 그런 친구 말이다. 그래 있다. 오래 멀찍이 두어도 결코 멀어지지 않는 친구, 그런 친구들이 분명 내게도 있는 듯하다.

"우리 우정은 죽지 않아"

<친구에게 가는 길>(푸른숲 펴냄, 2008)은 ‘두 남자의 평생 우정 이야기’(한글판 부제)를 그리고 있다. 다섯 살배기 유치원 시절에 처음 만나 쉰 해 넘는 우정을 쌓아온 밥 그린은 급한 일 없으면서도 먼저 ‘돌아간’ 잭을 추억하며 이 책을 짓게 되었다. 이 책은 먼저 ‘돌아간’ 잭에게 바치는 헌사이기도 하며 이 세상 모든 이름 모를 ‘벗들’에게 보내는 편지이기도 하다. 잭을 그리워해달라는, 아니 이 세상 누구에게나 있을 ‘잭’과 쌓은 우정을 다들 다시 돌아보라는 뜻에서 말이다.

책을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잭과 함께 한 세월이며 추억들이 책 한 권은 족히 채우고도 남을 만했다. 무엇보다 그들 사이에 쌓인 우정이 세상 모든 사람들과 나눌만했다. 특별한 우정이어서가 아니라 (밥과 잭에게는 물론 특별한 우정이다) 모든 이들이 아무 말 하지 않고도 같이 느낄 수 있는 그런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사실, 서로 다른 줄기를 타고 태어나 서로 같은 줄기를 만들어가는 깊은 행복이란 부부 이전에 친구에게서 먼저 느끼는 일이지 않나 싶다. 부부도 오래 살다 보면 친구 같은 우정으로 살아간다고들 하지 않는가. 우정이란 참 신기한 할 만큼 끈끈하면서 무엇도 무서울 것 없을 만큼 단단하다. 그것이 친구 사이는 물론 부부, 이웃 간에도 필요한 진짜 삶이 아닐까 싶을 만큼.

잭이 서둘러 먼저 삶을 거두어들이려 하자 서둘러 잭을 찾아온 이가 밥 혼자만은 아니었다. 정확히 말해서 이 책은 이름 첫 글자를 순서대로 따서 만든 'ABCDJ'라는 애칭으로 불린 다섯 친구들(앨런, 밥, 척, 댄, 잭) 우정을 그리고 있다. 다만, 그 끈끈한 다섯 사람 우정을 그려낸 이가 밥이고 그 무대를 마련해준 이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잭이었을 뿐이다.

친구 잭이 사라지고 없을 그 때를 상상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상황을 겪으면서 밥은 친구, 우정이란 무엇인지를 새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말하고 싶었다. 그게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를. 책으로 남기고 싶었다. 잭을 기억하고 싶기도 했고, 밥이 새삼 다시 느낀 우정의 깊은 맛을 다른 이들과도 함께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밥은 예전에는 잭이 자기 곁에서 다섯 살배기 첫 모습 그대로 늘 있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갑자기 찾아든 소식은 그 모든 믿음을 흔들었고 밥은 삶에 대한 믿음을 다시 발견해야 했다. 다섯 친구가 되기 전에 밥은 잭을, 잭은 밥을 알았다. 그것은 둘 만이 지닌 굉장한 특권처럼 보였고 가끔은 다른 세 친구들이 약간 시샘할 정도였다. 둘은 서로 ‘베스트 프렌드’라는 애칭으로 통하기도 했으니까. 실은 늘 다섯 친구들이 어울려 놀았으면서도. 그들은 그랬다.

마치 다섯 개 막으로 구성된 생생한 연극을 보는 것 같다. 책은 그리 크지 않은 동네 개울이 졸졸졸 정겨운 소리를 내면서 다섯 장을 여유롭게 굽이굽이 흘러간다. 제2막이라고 해야 할까, ‘함께한 추억을 생각하며’는 바로 그런 정겨운 추억들을 곱씹는 공간이다. 물론 1막부터 마지막 5막까지 (그래, 이젠 아예 한 편의 생생한 연극이라고 해두자) 밥은 때론 잭과 단둘이서, 결국에는 다섯 친구들에게 적절히 대사를 나누어주며 그들만이 알고 그들만이 할 수 있는 우정을 인생 무대에 다시 선보였다.

철없는 십대 시절 저지른 장난이며 추억들이 이 책에서도 보인다. 먹지도 못할 독한 술을 몰래 훔치고서는 어느 술집에 어른인척 전화해서 어찌해야 순한 술로 만들 수 있는지를 물었던 일을 기억하기도 한다. 초등학생 때야 당연히 그들 눈에 대단해 보였을 멋진 고교 야구선수가 길거리에서 자신들에게 눈인사를 해 준 것을 지금껏 기억하고 좋아라하는 모습도 있다.

폴란드에서 태어나 십대 시절을 그곳에서 보내다가 뒤늦게 미국에 있는 가족을 만나 낯설고 힘든 삶을 시작했던 잭 아버지 이야기도 있다. 남에게 신세 지기 싫어하는 자존심 강한 성격이면서도 장사 이윤을 챙길 줄도 단순한 거짓말도 할 줄 모르는 잭. 어떤 환경에서도 세상과 사람을 늘 밝게 보는 그런 그의 성격은 아마도 낯설고 힘든 이민 생활을 시작한 그의 할아버지,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인지 모른다.

잭이 마지막 숨을 쉬기까지 밥은 그리고 다른 세 친구들은 자기들 시간표를 시시각각 조정하면서 언제든 잭을 찾아온다. 친구들은 각자 잭과 함께 방에 앉아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모두 함께 모여 어린 시절 함께 자주 가던 장소들을 다니기도 한다. 가끔은 그저 한가롭게 TV를 시청하고 그러다가 또 하염없이 이야기 속 옛 세상을 거슬러 가기도 한다.

친구와 함께 시간 위를 걸어보셨나요

친구는 나 아닌 다른 사람들 중에 유일하게 늘 내 옆에 있을 것만 같은 유일한 대상이다. 친척도 이웃도 심지어는 함께 사는 가족도 모르는 내 ‘속살’을 아는 이가 어디 친구 말고 또 있을까. 언제 마지막 숨을 몰아쉴지 모를 잭 주변을 지키며 한없이 이야기를 기억해내고 또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내 나중에도 잭을 영원히 숨 쉬게 하는 그들 노력이 참 눈물겹고 정겹다.

그들이 남긴 책 속 모든 얘기들이 어디 예순 살 다 된 어르신들 이야기일 뿐일까. 어린 시절 드나들던 곳을 가리키면서 그곳에 있는 젊은이들이 자신들처럼 그 장소를 추억거리로 여길 날이 있을 거라고 말하는 모습이 어디 그분들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일까. 정말이지, 결코 낯설지 않은 참 오래고 또 친근한 풍경이다. 그리고 그건 아마도 나이, 장소, 서로 다른 삶을 단숨에 뛰어넘는 우정이란 것이 이 세상 어디서나 같기 때문일 게다.

추억 속 장면을, 추억 속 어린 친구를, 추억 속 우정을 찾아 떠나 여유롭게 시간 위를 오가는 이들 다섯 친구 이야기는 지금 우리에게 그 모습 그대로 다가온다. 그리고 이 다섯 친구 이야기가 끝날 때쯤 우리 이야기들도 이미 그 막을 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간은 앞으로만 가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고 둥그렇게 우정이란 원을 그리며 서로 메아리친다.

"내게 아무리 소중하다 해도 당신은 내 친구 잭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는 당신들의 삶에도 잭과 비슷한 존재가 있을 것이다. 그가 있어 이 땅에서 보낸 시간이 의미 있어지는 존재 말이다. 누군가가 아니라면…… 무언가라도. 이제 나는 그와 함께한 시간을 추억하려 한다.

이 글은 오랜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아무리 누추한 삶에도 가장 빛나는 우정은 있고, 누군가는 어쩌면 바로 지금 그런 우정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이 아니라면 앞으로 그런 멋진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같은 책, 16~17)
덧붙이는 글 <친구에게 가는 길-두 남자의 평생 우정 이야기> 밥 그린 지음. 강주헌 옮김. 푸른숲, 2008.
(원서) And you konw should be glad: A True Story of Lifelong Friendship by Bob Gree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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