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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너머 산이 아니라 사막건너 사막이다

[우즈베키스탄 도보횡단기 23] 도보여행 22일(밥켄트 -> 키질테파)

등록|2009.01.09 11:00 수정|2009.01.09 11:00

작은 도시 밥켄트시내의 모습 ⓒ 김준희


"10분만 더."

알리는 이렇게 말하더니 다시 자리에 눕는다. 시간은 오전 7시. 아침에 늦잠자는 버릇은 여기나 한국이나 마찬가지다. 탁자에는 어제 마시다 남긴 맥주가 있다. 피같은 술을 남기다니, 한국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나도 이불 속에 누워서 뒤척이다가 7시 20분 경에 일어나서 화장실을 다녀오고 씼었다. 다리의 통증이 무척 심해졌다. 평소에 걸을때는 잘 모르는데, 쉬려고 앉을때 또는 앉았다가 일어설때 통증이 심하다.

최악의 통증은 화장실에서 발생한다. 이곳의 화장실에는 걸터앉는 좌변기가 없다. 대변을 보려면 쪼그려 앉는 자세를 취해야하는데, 그럴때마다 양쪽 허벅지에 엄청난 통증이 밀려온다. 자세를 제대로 잡기가 어려울 정도로. 그 아픔 때문에 화장실 특유의 악취를 느끼지 못할 정도니, 이거 하나는 그래도 좋은 점이다.

알리와 함께 탁자에 앉아서 꿀을 섞은 뜨거운 차를 마시고 빵도 조금 먹었다. 알리는 승용차로 나를 큰길까지 데려다주고, 그 다음에 자녀들을 차에 태우고 학교에 보내준단다. 그리고나서야 자신의 공장으로 출근하는 것이다. 나는 차를 두잔 마시고 일어섰다. 오늘도 열심히 걸어가야 한다.

"우즈베키스탄에 오면 언제든지 우리집으로 와요."

알리의 어머니가 나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고맙다고 인사하고는 알리의 승용차에 짐을 실었다. 승용차가 집의 대문을 빠져나오자 알리의 어린 딸들이 웃으면서 나에게 손을 흔든다. 참 고마운 사람들이다.

"이쪽으로 쭉 걸어가면 나보이가 나와요!"

큰길로 나온 알리가 나한테 이렇게 알려준다. 나보이는 다음 목적지인 큰 도시다. 오늘 중으로 도착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아마 그곳까지 2-3일 정도 걸릴 것이다. 나는 친절을 베풀어준 알리를 끌어안고 작별인사를 했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남자들끼리도 조금 친해지면 꼭 이런 식으로 포옹을 한다. 만날때나 헤어질때나 마찬가지다. 좀 더 친한 사이끼리는 뺨에 입을 맞추는 경우도 많다.

알리와 큰길에서 작별인사를 하고

키질테파 가는 길타쉬켄트까지 500킬로미터 가량이 남았다 ⓒ 김준희


알리와 헤어진 나는 나보이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걷기 시작했다. 알리는 30대의 중후반을 한국에서 보냈다. 돈을 벌기위해서 낯설고 말도 안통하는 곳으로 자청해서 떠난 것이다. 어머니와 부인, 세 자녀를 고향에 두고. 그렇게 결정을 하고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때 얼마나 불안하고 두려웠을까. 한국의 기업들이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항상 관대한것 만은 아닐텐데.

알리는 그 두려움을 희망으로 극복했을 것이다. 돈을 벌 수 있다는 희망, 한국에서 몇년 고생하고 돌아오면 잘 살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그리고 지금은 보란듯이 잘 살고 있으니 그 꿈도 이루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식의 불법취업은 나쁘다'라는 잣대는 일단 접어두자. 많은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에게 한국은 기회의 땅이다. 우즈베키스탄 현지인들의 한달 수입은 보통 100-150달러 정도다. 한국에 와서 열심히 일하면 그 수입의 10배가 되는 돈을 만질 수 있다. 그러니 한국에 와서 일하는 꿈을 꾸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거기다가 알리는 운도 좋았다.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정식으로 취업비자를 주었으니 이런 행운도 드물다. 불법취업자로 낙인찍혀서 그동안 벌어놓은 돈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쫓겨나는 외국인 노동자들도 많은데. 알리의 성공은 용기와 성실함, 행운이 합쳐진 경우다. 알리는 6년동안 딴 생각없이 일만 했으니 꽤 많은 돈을 모았을 것이 분명하다. 밥켄트에는 알리처럼 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도 아마 많을 것이다.

12시 경에 작은 도시 기지드반에 도착했다. 나는 거리에 있는 큰 식당으로 들어갔다. 키질쿰 사막에서 만났던 한 친구가 '기지드반 꼬치구이가 최고다!'라고 권해줬던 것이 기억난다. 뭐가 최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고라는데 한 점 먹어줘야 하지 않을까.

식당에 앉아서 음식을 주문했다. 꼬치구이 4개와 토마토 샐러드 그리고 녹차. 이렇게 주문하면 총 5000숨(1숨은 한화 약 1원)이다. 잠시후에 음식이 나왔다. 다른 곳에서 먹던 꼬치구이와 비교해서 고기가 큼직하다. 맛은 비슷비슷하다.

꼬치구이로 점심식사를 하고

기지드반 도착꼬치구이가 최고다! ⓒ 김준희


먹고나서 다시 걷는다. 작은 마을이 계속 나오고, 마을의 현지인들은 언제나 걸어가는 나한테 관심을 갖는다. 사막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침부터 시작해서 몇시간 동안 걷다보면 지치고 힘도 든다. 그래서 사람들이 다가오면 일단 짜증부터 생길때가 있다. 사람들이 뭐라고 말을 붙여도 힘들고 귀찮으니까 손을 흔들면서 무시하고 갈때도 있다.

문제는 거리에 앉아서 쉴때다. 걷는 도중에는 현지인들도 나한테 적극적으로 다가오지 못한다. 대신에 다리가 아파서 쉬려고 한쪽에 앉으면 어김없이 주변 사람들이 접근한다. 그리고 똑같은 질문들을 던진다. 어디에서 왔냐? 어디 가냐? 왜 걸어가냐?

제대로 쉬지를 못할 정도다. 이들은 자신들의 호기심이 나의 휴식을 방해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내가 별로 힘들어보이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호기심을 채워주려면 많은 인내심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걷다가 4시 30분 경에 키질테파로 들어가는 갈림길에 섰다. 갈림길이 나오면 항상 갈등이 된다. 키질테파에 들어갈까 아니면 그냥 나보이 가는 길로 계속 갈까. 조금 생각하다가 나보이로 방향을 잡았다. 키질테파 시내에 호텔이 있는지도 정확히 모르겠고, 굳이 시내에 들어갈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5시가 가까워졌으니 이제부터 잘 곳을 찾아야 한다. 오늘은 어디서 자야하나. 저 앞에 보이는 모퉁이를 돌아보고 본격적으로 찾아보자. 저 모퉁이를 돌면 현지인들의 집이나 아니면 식당이 나올테니까.

그런데 모퉁이를 돌자 난데없이 사막이 나타났다. 이게 웬일?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나보이 가는 길이 사막구간 이었던가? 길가에 서있는 나를 보고 현지인들이 다가온다. 이들의 도움을 받아야한다. 아까는 짜증의 대상이던 현지인들이 지금은 이렇게 반가울수가. 그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중년 남성에게 물었다.

"길 저쪽에 식당있어요?"
"저쪽에는 식당도 없고 집도 없어요."

그럴리가 없는데. 도로 멀리 무슨 건물이 하나 보인다. 그곳을 가리키며 다시 물었다.

"그럼 저 건물은 뭐에요?"
"그건 주유소에요."

그러더니 자기네 집에서 하룻밤 재워주겠다고 한다. 역시 오늘도 행운이 따르는 군. 그는 올해 43세의 나디르다. 길가에 위치한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가더니 커다란 방 하나를 내준다. 그리고 볶음밥을 만들고 있으니까 보드카와 함께 먹자고 한다.

현지인의 집에서 하룻밤을 신세지고

나보이 가는 길사막이 나타났다. ⓒ 김준희


나디르와 그의 가족들오른쪽이 막내아들 루스탐 ⓒ 김준희


아무튼 오늘도 무사히 목적지까지 오고 공짜로 잠잘 곳도 찾았으니 다행이다. 집 안쪽의 평상에 앉아서 차를 마셨다. 나디르는 20대 초반에 구소련의 도시 칼린그라드에서 군생활을 했다고 한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꺼내오더니 나에게 보여준다.

나디르의 막내아들 루스탐은 나에게 한국돈을 보여달라고 한다. 내가 가지고 있던 천원짜리 지폐하고 백원짜리 동전을 보여주니까, 루스탐은 열심히 들여다보더니 동전을 자기한테 기념품으로 달라고 한다. 그래서 백원짜리 동전을 건네주었다. 루스탐은 신이 나서 그 돈을 들고 뛰어 나간다.

나디르의 부인은 곧 볶음밥을 내오고, 나디르는 보드카를 한병 꺼내왔다. 새빨간 고추를 나한테 주면서 조금씩만 먹으라고 권한다. 어린 시절부터 고추를 먹고자란 한국인한테 이런 작은 고추쯤이야.

나는 멋모르고 한입 덥썩 베어물었다가 죽는줄 알았다. 목으로 넘어가는 엄청난 열기. 무슨 고추가 이렇게 매운가. 우리나라의 청양고추 못지않게 맵다. 혀가 얼얼하고 목구멍이 타는 듯하다. 그 매운 기운을 없애기 위해서 보드카를 들이키고 볶음밥을 먹었다. 나디르가 조금만 먹으라고 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고추를 한입 먹었을뿐인데 옆머리에서 땀이 흐른다. 매운 음식을 먹으면 땀을 흘리는 이 습관은 여기와서도 변하지 않았다. 텔레비젼에서는 또 축구경기를 한다. 우즈베키스탄에도 프로축구 팀이 있는지, 타쉬켄트 팀인 '빡따꼴'과 부하라 팀이 경기를 하고 있다. 상대가 안된다. 타쉬켄트가 부하라를 가볍게 3대0으로 제압했다.

"밥켄트에는 포도가 많고 기지드반은 꼬치구이가 좋아요!"

내가 기지드반에서 꼬치구이를 먹었다니까 나디르가 말한다. 볶음밥을 안주삼아서 나디르와 나는 보드카를 한병 다 마셨다. 술기운을 좀 없애기 위해서 나는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도로 앞에 펼쳐진 사막의 어둠을 묵묵히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다시 사막을 만날거라고는 정말 상상도 못했다. 이 사막은 어디까지 이어지는 걸까. 나보이에 도착할때까지 계속 사막이면 어떡하나. 내일 아침에는 단단히 준비해서 길을 떠나야겠다. 부하라에 도착해서 사막을 빠져나왔다고 안심한 것이 고작 며칠전인데, 또 사막이 나타나다니. 무슨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산너머 산이 아니라 사막건너 사막이다. 젠장, 이런 젠장.

볶음밥과 보드카빨간 고추가 엄청나게 맵다 ⓒ 김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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