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네르바의 구속을 바라보며 문득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생각납니다.
영화는 백수십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명문기숙형 사립학교에서 전통의 가치로 포장한 학교측의 권위주의에 대항하는,자율과 창의성을 갈구하는 학생들,그리고 그 학생들의 캡틴인 '키팅'선생님간의 관계가 주요 구도입니다.
어쩌면 매우 부적절한 비유나 연상작용일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명박정권은 별로 전통적이지도 일관되지도 못한 '좌충우돌'과 '기억상실'성향이이서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도 잘 못하고 똑같은 말을 한 사람을 야단쳤다가, 그 다음 날은 야단쳤던 사람이 했던 말을 자기 입으로 되뇌이곤 했으니까요.'경제위기'와 관련된 언급이 대표적입니다.다만 이명박정권과 영화속 학교와의 확실한 공통점은 '권위주의'입니다.이를테면 이명박식 권위주의란 그 권위를 부여했던 사람들이 짜증을 내며 부여했던 권위를 회수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게 만드는 '짜증나는'권위주의입니다.
지금 구속된 미네르바라는 시민이 원조냐 아니냐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아닙니다.
이명박대통령 집권하 꿋꿋하게 밀어부친 강만수경제팀이 낳은 '시장의 불신'이 문제의 본질입니다.시장의 신뢰가 존재했더라면 미네르바와 같은 '신드롬'이 생길 수 없었습니다.10년전과 같이 나라전체가 위기의식을 '공감'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금부치를 모을 수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이명박정권은 오히려 외부의 경제위기를 핑계로 모든 국민들이 죽어서 관속으로 들어갔다고 믿었던 한반도대운하라는 유령을 불러들입니다.집권자와 국민간에 형성되어야 마땅한 '신뢰'가 바닥부터 집권자에 의해 무너져버렸습니다.당연히 국민들은 경제의 어려움에 대해 집권자가 하는 얘기를 안믿게 된 것입니다.입따로 행동따로 하는데 순진하게 그 말을 믿었다가는 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두려운 것이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입니다.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명박정권은 대한민국을 '불신과 갈등의 왕국'으로 학습시켰으며 스스로를 지지율 30%미만의 '식물대통령'으로 전락시켰습니다.2003년 당시 최시중 한국갤럽회장이 어느 자리에서 언급했던 기준을 똑같이 적용한다면 '정권말기적 상황'인 것입니다.(그는 당시 노무현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지지율 40%미만이면 걱정스러운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은 자긍심이 드높습니다.'한류'로 대표되는 한국의 문화컨텐츠가 동남아를 넘어서 문화산업의 강대국들에 진출합니다.지구상 어느 곳에 정착하던 우리민족은 모두가 그 근면성과 더불어 투쟁심과 적극성으로 남다른 능력을 과시합니다.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월드컵의 뜨거운 경험을 통해 전지구촌이 주목할 만한 '자긍심'이 넘쳐나는 국민임이 드러났습니다.그리고 그러한 키워드는 바로 '자율과 창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이후 고도경제성장기를 지나서 지금처럼 고용없는 성장에 머물고 있는 대기업위주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와 임금경쟁력에 따른 전통제조업의 공동화현상은 이제 대한민국도 소프트웨어 중심 지식경제산업으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습니다.그리고 지구촌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교육열'은 그 명암을 떠나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에 강력한 물적인 토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간단히 국민들은 몸풀고 새로운 사회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요이~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이는 과거 10년간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사회가 이해와 협동과 의사소통을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열린사회'가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국민은 '자율과 창의성'을 국력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원했던 것입니다.그리고 그러한 국민의 염원에 맞는 지도자와 정치세력이 집권했어야 했습니다.그런데 이명박정권은 그렇게 잘 교육되고 세계를 향해 뻗어나갈 준비가 확실하고 자긍심이 드높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삽을 한자루씩 쥐어주려 하고 있습니다.그리고는 이미 국민들의 생활속에 상식처럼 자리잡은 자율과 창조성과 의사소통능력을 억압하는 '사이버모욕죄'같은 입법을 통해 권위주의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습니다.정당한 권위가 없다보니 권위주의를 불러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미네르바'를 영화속의 '키팅'선생님에 비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는 어쩌면 점점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집권측과 국민간의 '의사소통의 괴리=의사불통'의 거리만큼에 해당되는 우리사회의 또 다른 의미의 희생자일 것입니다.누군가가 치워야할 똥을 싸놓았는데 애초에 그 똥을 싼 사람이 그걸 치우기를 거부하고 둘러대고 딴말하니 그는 단지 누가 똥을 쌌었고 그 똥의 실상에 대해 그가 가진 남다른 지식과 판단으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극사실주의적'기법으로 많은 사람들한테 알리려는 노력을 했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미네르바라는 네티즌의 글이 그리도 호응을 받았던 이유는 이명박정부의 경제팀이 집권후 보여주었던 연속적인 실기와 시장혼란성 발언,초기의 외환개입 등이 뭉쳐진 하나의 작품인 '시장의 불신'이 빚어낸 것이지,만일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살리려는' 정부와 경제팀에 대한 국민적인 신뢰가 강고했더라면 결코 미네르바가 아니고 '할아버지 미네르바'가 와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솝 우화에 보면 '벌거벗은 임금님'이 있습니다.
임금님이 벌거벗고 행진하는데 아무도 임금님의 '누드'를 지적하지 않습니다.임금님의 누드란 결코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경제를 살리겠다는 임금님이 있습니다.그런데 경제가 죽어갑니다.외부의 위기가 문제의 본질이 아닙니다.문제의 본질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그 분이 '누드'라는데 있습니다.그리고 미네르바라는 시민은 단지 그가 누드라고 외쳤을 따름이지요...
해결책은 간단합니다.이명박정권은 미네르바를 구속시킬 것이 아니고 바로 국민과의 '의사불통'의 상징적 희생자인 그의 얘기에 귀기울여야 합니다.그럼으로서 비로서 국민과의 '의사소통'이 시작되고 폭풍전야의 냉랭한 국민과의 '소통전선'에 훈풍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별로 시간도 없어보입니다.외부발 경제쓰나미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은 '명박산성'과 '지하벙커'를 뛰쳐나와 환하고 넓은 광장으로 나와서 귀로 먼저 듣는 '국민과의 대화'를 해야만 합니다.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고 듣는 것이 먼저입니다.하루에도 15곳 이상이 도산한다는 중소기업의 외침과 대학 졸업장을 받아놓고도 자신의 피끓는 청춘을 불사를 직장을 찾지 못해 울부짖는 젊은이들의 아우성이 들리지도 않나요?
영화는 백수십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의 명문기숙형 사립학교에서 전통의 가치로 포장한 학교측의 권위주의에 대항하는,자율과 창의성을 갈구하는 학생들,그리고 그 학생들의 캡틴인 '키팅'선생님간의 관계가 주요 구도입니다.
어쩌면 매우 부적절한 비유나 연상작용일 수도 있겠습니다.
왜냐하면 이명박정권은 별로 전통적이지도 일관되지도 못한 '좌충우돌'과 '기억상실'성향이이서 자신이 했던 말을 기억도 잘 못하고 똑같은 말을 한 사람을 야단쳤다가, 그 다음 날은 야단쳤던 사람이 했던 말을 자기 입으로 되뇌이곤 했으니까요.'경제위기'와 관련된 언급이 대표적입니다.다만 이명박정권과 영화속 학교와의 확실한 공통점은 '권위주의'입니다.이를테면 이명박식 권위주의란 그 권위를 부여했던 사람들이 짜증을 내며 부여했던 권위를 회수해버리고 싶은 욕망이 일어나게 만드는 '짜증나는'권위주의입니다.
지금 구속된 미네르바라는 시민이 원조냐 아니냐가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있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아닙니다.
이명박대통령 집권하 꿋꿋하게 밀어부친 강만수경제팀이 낳은 '시장의 불신'이 문제의 본질입니다.시장의 신뢰가 존재했더라면 미네르바와 같은 '신드롬'이 생길 수 없었습니다.10년전과 같이 나라전체가 위기의식을 '공감'하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금부치를 모을 수도 있었습니다.그러나 이명박정권은 오히려 외부의 경제위기를 핑계로 모든 국민들이 죽어서 관속으로 들어갔다고 믿었던 한반도대운하라는 유령을 불러들입니다.집권자와 국민간에 형성되어야 마땅한 '신뢰'가 바닥부터 집권자에 의해 무너져버렸습니다.당연히 국민들은 경제의 어려움에 대해 집권자가 하는 얘기를 안믿게 된 것입니다.입따로 행동따로 하는데 순진하게 그 말을 믿었다가는 또 어떤 봉변을 당할지 두려운 것이 국민들의 솔직한 심정입니다.비교적 짧은 기간에 이명박정권은 대한민국을 '불신과 갈등의 왕국'으로 학습시켰으며 스스로를 지지율 30%미만의 '식물대통령'으로 전락시켰습니다.2003년 당시 최시중 한국갤럽회장이 어느 자리에서 언급했던 기준을 똑같이 적용한다면 '정권말기적 상황'인 것입니다.(그는 당시 노무현대통령을 직접 거론하며 지지율 40%미만이면 걱정스러운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21세기 대한민국 국민은 자긍심이 드높습니다.'한류'로 대표되는 한국의 문화컨텐츠가 동남아를 넘어서 문화산업의 강대국들에 진출합니다.지구상 어느 곳에 정착하던 우리민족은 모두가 그 근면성과 더불어 투쟁심과 적극성으로 남다른 능력을 과시합니다.우리 대한민국은 이미 월드컵의 뜨거운 경험을 통해 전지구촌이 주목할 만한 '자긍심'이 넘쳐나는 국민임이 드러났습니다.그리고 그러한 키워드는 바로 '자율과 창의성'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전쟁이후 고도경제성장기를 지나서 지금처럼 고용없는 성장에 머물고 있는 대기업위주 수출주도형 경제체제와 임금경쟁력에 따른 전통제조업의 공동화현상은 이제 대한민국도 소프트웨어 중심 지식경제산업으로의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받고 있습니다.그리고 지구촌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교육열'은 그 명암을 떠나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전환에 강력한 물적인 토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간단히 국민들은 몸풀고 새로운 사회의 패러다임을 받아들이고 '요이~땅!'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그리고 이는 과거 10년간 권위주의가 사라지고 사회가 이해와 협동과 의사소통을 중요한 가치로 받아들이는 '열린사회'가 되었다는 반증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국민은 '자율과 창의성'을 국력으로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원했던 것입니다.그리고 그러한 국민의 염원에 맞는 지도자와 정치세력이 집권했어야 했습니다.그런데 이명박정권은 그렇게 잘 교육되고 세계를 향해 뻗어나갈 준비가 확실하고 자긍심이 드높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삽을 한자루씩 쥐어주려 하고 있습니다.그리고는 이미 국민들의 생활속에 상식처럼 자리잡은 자율과 창조성과 의사소통능력을 억압하는 '사이버모욕죄'같은 입법을 통해 권위주의를 부활시키려 하고 있습니다.정당한 권위가 없다보니 권위주의를 불러오려고 하는 것입니다.
'미네르바'를 영화속의 '키팅'선생님에 비유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는 어쩌면 점점 간극이 벌어지고 있는 집권측과 국민간의 '의사소통의 괴리=의사불통'의 거리만큼에 해당되는 우리사회의 또 다른 의미의 희생자일 것입니다.누군가가 치워야할 똥을 싸놓았는데 애초에 그 똥을 싼 사람이 그걸 치우기를 거부하고 둘러대고 딴말하니 그는 단지 누가 똥을 쌌었고 그 똥의 실상에 대해 그가 가진 남다른 지식과 판단으로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극사실주의적'기법으로 많은 사람들한테 알리려는 노력을 했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미네르바라는 네티즌의 글이 그리도 호응을 받았던 이유는 이명박정부의 경제팀이 집권후 보여주었던 연속적인 실기와 시장혼란성 발언,초기의 외환개입 등이 뭉쳐진 하나의 작품인 '시장의 불신'이 빚어낸 것이지,만일 갖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살리려는' 정부와 경제팀에 대한 국민적인 신뢰가 강고했더라면 결코 미네르바가 아니고 '할아버지 미네르바'가 와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그와 같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이솝 우화에 보면 '벌거벗은 임금님'이 있습니다.
임금님이 벌거벗고 행진하는데 아무도 임금님의 '누드'를 지적하지 않습니다.임금님의 누드란 결코 '있어서도 안되고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경제를 살리겠다는 임금님이 있습니다.그런데 경제가 죽어갑니다.외부의 위기가 문제의 본질이 아닙니다.문제의 본질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그 분이 '누드'라는데 있습니다.그리고 미네르바라는 시민은 단지 그가 누드라고 외쳤을 따름이지요...
해결책은 간단합니다.이명박정권은 미네르바를 구속시킬 것이 아니고 바로 국민과의 '의사불통'의 상징적 희생자인 그의 얘기에 귀기울여야 합니다.그럼으로서 비로서 국민과의 '의사소통'이 시작되고 폭풍전야의 냉랭한 국민과의 '소통전선'에 훈풍을 불어넣을 수 있습니다.별로 시간도 없어보입니다.외부발 경제쓰나미가 코앞에 다가왔습니다.
이명박대통령은 '명박산성'과 '지하벙커'를 뛰쳐나와 환하고 넓은 광장으로 나와서 귀로 먼저 듣는 '국민과의 대화'를 해야만 합니다.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고 듣는 것이 먼저입니다.하루에도 15곳 이상이 도산한다는 중소기업의 외침과 대학 졸업장을 받아놓고도 자신의 피끓는 청춘을 불사를 직장을 찾지 못해 울부짖는 젊은이들의 아우성이 들리지도 않나요?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아고라 '네티즌과의 대화'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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