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환관벌(宦官閥)과 검찰(檢察)

검사의 양심에 고함

등록|2009.01.13 10:55 수정|2009.01.14 08:24
동창 이야기-사유화된 공권력의 종말

유권무죄 무권유죄의 시대라고 한다. 권력 앞에서는 굴욕적인 저자세로 일관해온 검찰이 야당 인사나 누리꾼에게는 권한 남용 시비를 불사하면서까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여 '법 앞에서 만민의 평등'이라는 법치주의의 근간을 앞장서서 훼손하고 있는 까닭이다.

사회의 부조리를 척결하여 정의사회를 구현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검찰이 권력의 시녀 역할에만 충실하여 오히려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는 개탄해 마땅한 현실을 토로하면서 한 친구는 (검찰을) '공공의 적'이라고 지칭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그는 “검찰 개혁 없이는 사회 발전도 없다”고 목청을 높였다.

검찰 혹은 검사는 형사재판 과정에서 정부를 대리하여 원고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말이다. 즉 국가를 대리하여 법질서를 문란케 한 사범들을 재판에 회부하여 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이 고유 업무이며, 국가는 이들이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기소독점권과 수사권 같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국가로부터 막강한 권한을 부여받은 권력기관이 국가나 국민이 아닌 특정 세력의 이익을 위해 권한을 남용하게 된다면 그 피해는 사건 당사자 뿐 아니라 국가의 존립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심각한 지경까지 이를 수도 있는데, 중국 명(明)나라 시대의 정보기관인 동창(東廠)의 타락은 권부가 타락하여 나라를 멸망시킨 대표적인 사례이다.

동창(東廠)은 명나라 3대 영락제가 선대 황제의 잔당을 색출하고 민정을 살피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한 기관으로 특이한 점은 환관(宦官; 내시)을 제독(提督)으로 두었다. 황제는 동창 외에도 서창과 대내위창 그리고 금의위를 두고 각 기관이 서로의 전횡을 견제할 수 있도록 했지만 제6대 황제인 정통제 시대에 이르러서는 동창 제독의 권한이 황제의 위세를 넘어설 만큼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였다.

환관(宦官; 내시) 출신인 왕진(王振)은 어린 황제를 대신하여 황권을 공공연히 행사하였고 동창은 황실이 아닌 왕진의 수족으로 전락하여 충신을 색출하여 처형하고 왕진의 정적을 제거했으며 왕진을 비방하는 백성들을 별 다른 절차 없이 체포 주살하였다. 환관들을 자신들에 충성하는 부패한 관리들과 함께 환관벌(宦官閥)로 자리 잡았고 명나라를 장악하였다. 동창의 득세는 충신세력의 몰락과 황권의 약화 그리고 민심이반으로 이어졌으며, 이때부터 한(漢)족의 마지막 왕조인 명나라는 급격하게 쇠락하기 시작하여 결국에는 그들이 오랑캐라고 업신여기던 만주족이 세운 청(淸)에 의해 멸망당하게 된다.

환관(내시)과 검사들의 공통점

동창이 서창과 대내위창, 그리고 황족으로 구성된 금의위를 압도하고 환관벌(宦官閥)을 구성하여 명나라를 장악하게 되기까지에는 환관 특유의 동족의식이 크게 작용하였다. 생식기능을 거세당한 그들은 자신의 2세를 생산할 수 없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동질감을 느꼈다. 그들은 거세를 당한 그 순간부터 혈족 이상의 유대감을 느꼈고 동족애를 느꼈다. 이러한 환관 특유의 동족애는 국가에 대한 충성이나 정치적 이념을 넘어서는 강한 결집력을 발휘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동창을 위해 희생하는 것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과 같았으니 황족으로 구성된 금의위조차도 이들의 응집력을 당해 낼 수 없었다. 왕진이나 왕직, 유근, 위충헌 등은 모두가 내시 출신인 사례태감이면서도 황족들로 이루어진 금의위를 장악할 만큼 환관 조직은 강한 동족애와 결집력을 발휘했던 것이다.

이러한 환관들의 동족애는 조직에 대한 충성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한국 검사들의 생리와 비슷한 행태를 띠고 있는 것이다. 광우병 보도와 관련하여 소위 'PD수첩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임수빈 부장검사가 검찰 수뇌부와 관계자의 기소 여부를 놓고 마찰을 빚어 퇴직하게 된 일이나 과거 현직 검찰총장에 대한 항명 파문으로 면직되었던 심재륜 전 대구 고검장의 사례(심 전 고검장은 면직이 부당하다는 소송을 냈고 대법원으로부터 복직 판결을 받아 사상 최초로 후배 법무장관과 검찰 총장의 지휘를 받은 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등은 한국의 검사들이 사건을 판단하는 데 있어서 법과 양심보다 상관의 지시가 우선하며 조직의 지침이 우선한다는 것을 반증한다.

국가기관인 검찰청의 소속 검사들이 국가 보다 조직 자체에 더 충성하게 되는 기현상을 보이는 사실을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검찰 특유의 문화’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검사가 법과 양심에 앞서 상부의 지시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폐쇄적인 문화를 조성하게 된 데는 검찰관계법도 크게 일조하고 있다.

우리 헌법은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하여 법관의 재판권 독립에 대해 헌법 조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검찰관계법 어디에도 사건 담당 검사의 독립적 판단을 보장한 조항은 없다. 54조로 구성된 검찰청법 곳곳에 '상급자의 지휘 감독에 따라...'라는 상명하복에 대한 규정이 등장하지만 '법과 양심에 의한 소신 있는 판단'을 보장한 조항은 단 한 곳도 없다.

단지 제4조 검사의 직무와 권한을 규정하는 조항에서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국민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며 부여된 권한을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며 정치적 중립과 권한남용에 대해 애매모호하게 거론하고 있을 뿐이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시도됐던 검찰 개혁이 결과적으로 실패한 이유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수십 년간 이어져 온 법률상 제도상의 문제점은 전혀 개선하지 않은 채, 인사서열을 파괴하는 등 수박 겉 핧기식의 충격요법으로만 쉽게 가려고한 때문일 것이다.

명예로운 법조인의 길

이유가 어떠하던 간에 국가와 국민전체에 대해 봉사해야할 책임이 있는 검찰이 정권의 시녀로 타락한 가장 큰 책임은 직무에 임하는 담당 검사 스스로가 져야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사법살인 행위로 역사에 기록된 세칭 '인혁당 사건'과 관련하여 "관련자들이 북괴의 지령을 받고 불온단체를 조직했다는 혐의는 하나도 없다"며 "양심상 도저히 기소할 수 없었으며 공소를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는 이유를 들어 기소를 거부한 이용훈, 김병리, 장위찬, 최대현 검사들은 결국 검찰복을 벗게 되었지만, 그들은 이 일로 사법살인 행위의 공범자에서 벗어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참 법조인으로서의 명예까지 얻게 되었다.

PD수첩 수사와 관련하여 검찰에서 퇴직하게 된 임수빈 부장 검사의 선택 또한 불의와 영합하지 않은 의로운 일이다. 사회정의를 구현해야 할 주체에서 법치를 교란시키는 주범으로 전락한 한국의 검사들에게 고한다. 당신은 역사에 명예로운 법조인으로 기억되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환관의 무리처럼 망국의 주범으로 지탄받길 원하는가?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한겨레와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