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책 하나로 몇시간 버티는 분, 어디 계세요?
내 마음대로 만든 '명곡175선', 어느새 타임머신 타고...
갖고 있는 민중가요 책을 뒤적이며, 이 노래 저 노래 들어 보면서 고른 노래는 <아하 사람이> <노래만큼 좋은 세상> <전화카드 한 장> 이렇게 세 곡. 쉽고 밝으면서도 언니들이 좋아할 만한 노랫말을 담은 것으로 고르고 또 고른 결과물이었다.
▲ 내 삶에서 처음 만난 민중가요 책‘민중가요'의 '민'자도 몰랐던 스무 살 그 때, 조국통일, 학원자주라는 불순(?)한 말로 도배된 표지에, 아는 노래라곤 하나도 없던 저 파란 책이 나는 왜 그렇게 좋았을까? ⓒ 조혜원
95학번 새내기, 민중가요에 뻑 가다
그렇게 애써 노래 연습을 준비하다 보니 저절로 민중가요와 얽힌 내 삶을 더듬거리게 됐다. 비상 언니들처럼 낯선 민중가요와 맨 처음 만난 시간들, 나도 모르게 그 노래들에 온전히 나를 맡겨버린 추억들, 그 추억을 여전히 잊지 못하고 살아가는 지금 내 모습들까지. 나는 어느새 행복하고도 가슴 시릿한 '민중가요 타임머신'을 타고 있었다.
<95 새내기 새로 배움터 노래책>. 1995년 2월에 떠났던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받았던 책이다. 내 삶에서 제일 먼저 만난 민중가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민중가요의 '민' 자도 몰랐던 스무 살 그때, '조국통일' '학원자주'라는 불순(?)한 말로 도배된 표지에 <나는 문제없어> 말고는 아는 노래라곤 하나도 없던 저 파란 책이 나는 왜 그렇게 좋았을까?
입시에서 해방됐다는 기쁨이 무턱대고 마음을 열게 만든 것인지, 내 마음 어딘가에 도사리고 있던 끼가 불쑥 튀어나온 것인지 지금도 그 까닭은 정말 모르겠다. 내가 아는 건 저 파란 책을 그때부터 십여 년 지난 지금까지 그 어떤 책보다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 그뿐이다.
새내기 새로 배움터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보고 뻑 가서, 저 노래책 뒤표지에 나오는 '노래문화연구회 맥박'이라는 동아리에 들어가서는 대학생활 전부를 그 공간에서 보냈다는 것까지도.
▲ 내 손을 가장 많이 타는 노래책들 십여 년 전 동아리방에서 그랬듯, 집에서도 기타를 들고 저 노래책들을 죽 훑으면서 한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노래를 부르곤 한다. ⓒ 조혜원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은 순간부터 동아리 활동은 무조건 노래 쪽으로 하겠다고 마음먹은 나한테, 오디션을 보지 않는 '맥박'은 생각할 필요도 없이 내가 가야할 길이었다. 민중가요 쇠퇴기랄 수 있는 90년대 중반, 민중가요가 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한 그 길. 무척 험난했지만 무척 아름답기도 했다. '시리도록 아름답다'는 말은 이럴 때 쓰면 딱 맞을 듯.
가끔은 궁금해진다. 나를 민중가요로 이끈 첫 징검다리인 저 얇고 지저분한 파란 책을 지금까지 갖고 있는 선후배가 몇이나 될지. 아니 단 한 명이라도 있기나 할는지.
학교 졸업한 뒤 사거나 얻어서 갖고 있는 민중가요 책들을 죽 모아봤다. 내 책상에는 저것들 말고도 대중가요·팝송·영화 음악을 담은 책들이 여러 권 꽂혀 있다. 하지만 늘 내 손을 타는 건 바로 이 책들이다.
십여 년 전 동아리방에서 그랬듯, 집에서도 기타를 들고 저 노래책들을 죽 훑으면서 한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노래를 부르곤 한다. 한 번 흥이 오르면 멈추지 못하는 건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다. 달라진 게 있다면 그때보다 기타는 좀 더 잘 치지만, 대학 졸업하고 피기 시작한 담배 때문에 목소리가 많이 탁해졌다는 것.
불러가며 배우는 노래, 듣는 맛도 좋네
▲ 먼지 가득한 오래된 민중가요 테이프작은 상자에 보관해 놓은, 오래된 저 테이프들에 담긴 노래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노래를 담은 껍데기는 낡았지만, 노래에 담긴 내용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아픈 현실’들이기 때문에. ⓒ 조혜원
노래패 활동을 할 땐 민중가요 테이프를 거의 듣지 못했다. 민중가요는 들어서 배우는 게 아니라, 부르면서 알아가야 한다는 선배들 가르침 때문이었다. 선배들 몰래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듣는 맛은 그래서 더 각별했다.
이젠 테이프들을 일이 없기에 작은 상자에 보관해 놓은, 먼지 가득한 오래된 저 테이프들에 담긴 노래만큼은 생생하게 기억한다. 아니 지금도 부르고 있다. 노래를 담은 껍데기는 낡았지만, 노래에 담긴 내용은 여전히 우리 앞에 놓인 아픈 현실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유치한 다짐도 해본다. '다른 어떤 음반 백만장을 준다 해도 절대 이것들하고 바꾸지 않을 거야. 이 테이프들은 내가 노래와 함께한 시간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노래를 사랑했는지 증명해줄 가장 확실한 증거물이니까.'
▲ 차곡차곡 싸이는 민중가요 음반들저렇게 쌓이는 앨범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흐뭇해진다. 누군가 계속 민중가요라 할 수 있는 노래들을 만들어낸다는 건, 민중가요가 여전히 우리들 삶 속에서 꿈틀대고 있다는 증거니까. ⓒ 조혜원
끝도 없이 빠져들던 민중가요 타임머신을 현재로 돌려놓을 시간이 된 것 같다. 내가 지금 갖고 있는 민중가요 앨범을 모아보니 무려 50개 가까이에 이른다. 듣고 싶어서 산 것도 있지만, 어떤 노래들이 새롭게 만들어지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산 것도 많다. 그러다 보니 모두 다 내 마음에 차는 건 아니어서, 자주 듣는 앨범은 따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저렇게 하나하나 쌓이는 앨범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은 흐뭇해진다. 누군가 계속 민중가요를 만들어낸다는 건, 민중가요가 여전히 우리들 삶 속에서 꿈틀대고 있다는 증거니까.
내 나이 마흔이 넘었을 때, 저 깨끗한 음반들은 또 어떤 소중함으로 내 안에 남아있게 될까? 오래된 민중가요 테이프처럼, 역시나 먼지가 가득 쌓여있을 테지만 그 어떤 음반들하고도 바꾸지 못할 존재가 되어 있으면 좋겠다. 아니 그럴 수 있을 거다. 민중가요가 필요 없는 세상이 그렇게 빨리 올 리는 없을 테니까.
▲ 음악이 전 세계 공통 언어라는 말을 믿게 만들어 준, 다른 나라 민중가수들 앨범. ⓒ 조혜원
언어에 좀 약해서 그런가, 다른 나라 말이라면 그 좋아하는 노래조차도 별로 안 듣는 편인 나. 요즘엔 저렇게 외국 민중가수 앨범을 듣고 있다. 음악이 전 세계 공통언어라는 말, 잘 안 믿었는데 저 음반들을 만나면서는 조금씩 믿게 된다.
그래서 앞으로도 'LOVE'를 뛰어넘는 세상 이야기들을 담아 낸 다른 나라 노래를 꾸준히 들어 볼 생각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맞서는, 인간다운 삶을 노래한 노래라면 어떤 앨범이든 환영!
처음으로 돌아가서. 십여 년 동안 나름대로는 민중가요로 갈고 닦은 내 아우라에서 골라낸 새로운 노래 세 곡을 평균 나이 사십대 중반인 '비상' 언니들은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전화카드 한 장>을 맨 처음 불렀을 땐 "에이 어려워!" 하고 투정하던 언니들, 가수 명인씨 지도 아래 어느새 노랫말과 음에 조금씩 젖어들고 있었다. 더구나, <노래만큼 좋은 세상>이나 <아하 사람이>는 한 번 듣자마자 "이 노래 좋다!"고 바로 감탄까지 해주어서 내 마음을 한껏 기쁘게 해주셨다.
▲ 조금씩 새 노래에 젖어드는 비상 언니들이십대 때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 노래들, 십여 년 지난 지금 사십대를 훌쩍 넘은 언니들한테도 와 닿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내 마음은 벅차올랐다. ⓒ 조혜원
내 마음대로 음반, <민중가요 명곡 175선>
이십대 때 내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 노래들, 십여 년 지난 지금 사십대를 훌쩍 넘은(삼십대 언니도 한 명 있지만) 언니들한테도 와닿을 수 있다는 그 사실에 내 마음은 벅차올랐다. 너무나 다행스럽고 또 행복해서.
내친김에 온갖 자료를 동원해서 내 마음대로 <민중가요 명곡 175선> 음반을 만들었다. 어디서 민중가요를 들을 수 있는지, 방법조차 잘 모르는 비상 언니들한테 다음 연습 때 드릴 작정으로. 언니들이 민중가요를 어려워하는 건 '낯섦'에서 오는 두려움이 가장 크다는 걸, 이제는 알겠기에. 그 낯섦을 익숙함으로 바꾸는 길은 자주 듣는 길이 가장 빠르다는 것도.
몇시간 넘게 이 음반에 담을 노래들을 고르면서 처음엔 걱정 반 기대 반인 마음이 컸다. 내 삶을 여기까지 이끌고 온 가장 큰 공신이자, 듣는 것만으로도 시리고 벅차오르는 마음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만드는 이 노래들을 언니들도 과연 좋아할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 민중가요 명곡 175선어디서 민중가요를 들을 수 있는지, 방법조차 잘 모르는 비상 언니들한테 다음 연습 때 드릴 작정으로 내가 직접 엮은 음반. ⓒ 조혜원
그러다가는 어느새 내가 고른 노래들에 푹 젖어든 나, 걱정은 어디로 가고 갑자기 정체 모를 자부심에 빠져 버린다. '내가 정말 많은 민중가요를 알고 있구나! 이 정도면 민중가요 마니아라고 불러도 충분하겠지?' 문득 세상에 대고 물어보고 싶어진다.
"민중가요 수백 곡을 아는 사람, 대중가요 책보다 민중가요 책을 훨씬 더 자주 만지는 사람, 민중가요 앨범만 60개 가까이 있는 사람, 몇 시간이고 기타랑 노래책 하나로 즐겁게 버틸 수 있는 사람, 저 말고 어디 또 계신가요?"
대학 노래패에서 정기 공연을 치를 때마다 만든 프로그램들은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잃어버린 노래를 찾아서, 그 삶의 노래들, 우리 큰 걸음으로…. 제목만 봐도 저 공연들을 준비했던 시간들이 애틋하게 떠오른다. 특히 오른쪽에 있는 <노래열차 1996- 대학 노래 문화 지금 어디로…>는 내가 회장을 맡던 때에 치른 것이라 더 애착이 간다. 회장일 때 치른 공연이란, 그 어느 때보다 고생이 심했다는 말이랑 같기에.
프로그램을 열어 보니 내가 이런 글을 다 남겼더라.
'지금 대학 노래 문화는 어떤 뚜렷한 형태가 없이 매우 혼란한 상태인 것 같다. 적어도 대학 노래 문화라고 특정 지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들 공연이 대학 노래 문화는 이래야 한다고 어떤 해답을 제시해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대학 노래 문화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 노래열차 2009_민중가요 지금 어디로...나는 이렇게 2009년 발 새로운 노래열차를 타고 있는 중이다. 설레는 마음과 열정은 그 때와 다를 게 없지만, 노래열차에 타는 마음가짐만은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 조혜원
대학에서 벗어난 지 십 년도 훨씬 넘은 지금, 저때보다는 '마음'을 넘어 '삶'과 맞닿는 민중가요들을 조금 더 많이 부르고 있는 지금, 저 글을 이렇게 바꿔 보고 싶다.
'지금 민중가요는 어떤 뚜렷한 형태가 없이 매우 혼란한 상태인 것 같다. 적어도 민중가요라고 특정 지을 수 있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상 언니들이랑 만들어가는 시간이 민중가요는 이래야 한다고 어떤 해답을 내밀어 주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올바른 민중가요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계기는 될 수 있으리라고 믿고 싶다.'
1996년에서 14년이 흐른 지금, 나는 이렇게 2009년 발 새로운 노래열차를 타고 있는 중이다. 설레는 마음과 열정은 그때와 다를 게 없지만, 노래열차에 타는 마음가짐만은 조금 더 성숙한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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