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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이스라엘의 가자 침공을 보며 한국의 '골수 유대인'을 생각한다

등록|2009.01.13 16:39 수정|2009.01.13 16:39

하늘바라기해를 바라보며 팔을 벌린 조형 ⓒ 김동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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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에 <예수의 고난(The Passion Of The Christ)>이란 종교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었다. 십자가에 달리기 전, 12시간 동안 예수 그리스도가 받은 고난을 적나라할 만큼 생생하게 묘사해서 일대 충격파를 던진 작품이었다.

멜 깁슨이란 영화배우 출신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 인기와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특이한 현상이 하나 있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전 세계의 유대인들이 극렬하게 이 영화를 비판했다는 점이다.

그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오랫동안 애를 써서 선의적 이미지로 포장시킨, 감추고만 싶었던 유대민족의 어떤 정체를 이 영화가 여지없이 폭로했기 때문이다. 로스차일드로 대표되는 영미 거대 금융 자본은 물론이거니와, 할리우드가 유태계 손아귀에 장악되어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다 안다. 제작자, 감독, 영화배우 등 수많은 실력자들이 유대인들이다. <영광의 탈출>이니 <쉰들러리스트>와 같은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 영화가 끊임없이 제작되고 방영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 할리우드 영화의 영향을 받아 유대인들은 <홀로코스트>로 상징되는 역사의 희생자일뿐이요, 핍박을 견뎌내고 마침내 응당 천부적 권리를 되찾아 본향으로 귀환한 괜챦은 민족이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특히 극단 개신교의 세례를 크게 받은 한국사람들이 그렇다.)

과연 그러한가. 총독 빌라도는 내심으로 예수를 풀어주려 했다 기록되었다. 예수 대신 강도 바라빠를 대신 내어주면 어떨까 제안했다 거절당한 빌라도는, 예수를 죽이라는 유대 군중들의 집요한 요구에 이렇게 답하면서 손을 씻었다 한다.

"도대체 그 사람의 잘못이 무엇이냐… 너희가 맡아서 처리하여라.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해서 책임이 없다."

마태복음을 펼쳐 보니 이때 모여든 유대 군중이 다음과 같이 무서운 맹세를 하고 있다.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바로 이 유대인들인 것이다. 사정이 그러하니 이같은 자기들 정체를 송두리째 폭로하는 영화에 마음이 편할리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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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2009년 겨울, 이스라엘은 전 세계 양심세력의 부릅 뜬 눈 앞에서 하마스의 정치적 기반을 무너뜨리기 위해 고성능 폭격기와 탱크와 총탄으로 가자지구를 초토화시키고 있다. 1월 6일에는 유엔학교에 포격을 퍼부어 일시에 무려 40여 명을 죽이기도 했다. 강도가 어린아이 손 비틀듯 무방비의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는 것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외신에 등장하는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의 처참한 시신을 보면서 내 입에서는 저절로 "오, 하느님!"이란 비명이 터져나온다. 2차대전 종전 이후 반세기 이상 골수까지 쪽쪽 빨며 '유대인 대학살'을 우려먹은 이스라엘이다. 바로 그들이, 마치 영사기를 되돌리듯 스스로 경험한 지옥의 악몽을 다른 민족에게 되돌리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그토록 사랑했기에 자기 목숨까지 바친 예수가 평생을 두고 결코 용서하지도 타협하지도 않은 족속들이 있는 걸로 안다. 바로 율법학자와 바리새인들이다. 소위 골수 유대인들이다. 그리고 이들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들이, 민간인에게 대포를 쏘고, 아이들을 학살하고, 압도적 무력으로 지금 가자지구를 초토화시키는 자들이다.

예수 당대의 골수 유대인들이 누구였던가? 율법 지키는 것을 목숨으로 알고, 세상에서 자기만이 가장 도덕적이라 믿고 자기만이 올바로 하느님을 알고 따른다고 확신했던 사람들이다. 스스로의 지극히 선(善)함으로 다른 영혼을 숨막히게 하고 자기와 다른 믿음, 자기와 다른 삶, 자기와 다른 평화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로 스스럼없이 말과 행동의 폭력을 가했던 족속들이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는 23장 거의 전부를 통털어 이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계신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아. 너희같은 위선자들은 화를 입을 것이다… 이 뱀같은 자들아. 독사의 족속들아! 너희가 어찌 지옥의 형벌을 피하랴? 나는 예언자들과 현인들과 학자들을 너희에게 보내겠다. 그러나 너희는 그들을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십자가에 매달고 또 더러는 회당에서 채찍질하며 이 동네 저 동네로 잡으러 다닐 것이다."

원수를 사랑하고 한쪽 뺨을 때린 자에게 다른 뺨까지 내주라 말씀하신 사람이 예수였다. 33년 전생애를 걸쳐 행하셨던 평화와 용서와 화해의 행적에 비춰보면 도저히 그의 입에서 나올 수 없는 처절한 저주다. 왜 예수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었을까. 왜 그처럼 분노하셨을까?

그것은 이들 골수 유대인들이 예수 자신을 조롱하고 침뱉고 채찍질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일 존재들임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홀로 거룩하며 홀로 선하고 홀로 옳으므로 서슴없이 타인을 핍박하는 이 자들이 바로 자신의 원수이며, 또한 앞으로 부활할 자신에 대한 끊임없는 원수가 될 존재임을 예수 스스로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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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나는 오늘 이 같은 '골수 유대인'들의 모습을 이 땅에서 자주, 그리고 숱하게 본다. 하늘을 향해 수십미터 십자가 첨탑을 세우고, (생명은 죽고 붉게 녹슨 뼈다귀만 남은, 십자가의 허망함이여) 시청 광장에서 성조기를 흔들며 찬송가 부르고, 그러면서도 오직 성경말씀대로만 산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죄없는 하느님의 아들딸로 자랑스러워하고, 곧 임하실 나라에서 자기만이 영생을 얻을 것이며 자기와 다른 주장, 다른 안식을 향해 온갖 저주와 경멸을 퍼붓는 소위 '믿는 자'들이 이 땅에는 너무나 많은 것이다.

곰곰이 눈을 감고 묵상해본다. 오늘 한국 땅에 다시 예수가 오신다면 (밤이면 여관 네온사인만큼이나 많이 켜진 붉은 십자가 네온사인 아래서) 오 주여, 오 주여! 소리 높여 외치며 자기만이 성경 말씀대로 사는 자들이니 자기와 자기 혈족을 영화롭게 해달라고 간구하는 이 족속들을 향해 무어라 말씀하실까를.

뼛속 깊이까지 선민사상에 물들어있으니, 율법이 아니고 성경이 아니면 오로지 이단으로 저주받아야 한다고 강변하는 이들 현대판 골수 유대인들에게 예수가 무슨 말씀을 하실까를. 과연 아흔아홉 마리 양과 길 잃은 한마리 양의 비유를 들면서 끝없는 용서와 격려를 보내실 것인가?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새로 오신 예수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이천년 전에 그랬듯이 이를 갈며 "그 사람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이 지겠습니다"라고 외치며 예수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을 자들이므로. 십자가에 몸소 못박힌 예수가
누구보다 그들의 정체를 잘 알고 계실 것이므로.

베드로가 형제의 잘못을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하는가 물었을 때, 일곱 번이면 되겠느냐고 물었을 때, 예수는 "일곱 번 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번이라도 용서해주어라"고 말씀하셨다. 그럼에도 그는 바리새인들과 사두가이파와 율법학자들만은 결코 용서해주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들은 길 잃은 어린 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이 예수를 죽인 자들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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