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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 의원님, 지금 편히 주무십니까"

'굴뚝농성' 이영도씨 쓴 글 공개... 인권위 "경찰에 신체 위해 없도록" 요청

등록|2009.01.13 16:40 수정|2009.01.13 18:08
"당신은 지금 편안히 주무시고 계십니까?"
울산 현대중공업 소각장 굴뚝 꼭대기에서 21일째 고공농성 중인 노동자가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에게 보낸 글이 공개됐다.

13일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이영도 전 수석부본부장이 지난 11일자로 쓴 글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이영도(48)씨는 현대미포조선 조합원 김순진씨와 함께 지난해 12월 24일부터 70m 높이에서 고공농성 중이다. 이들은 현대미포조선의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고 있는데,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의 최대주주다.

▲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자료사진). ⓒ 유성호


이영도씨는 글에서 "용감하기로 유명한 현대중공업 경비대가 굴뚝농성 진압을 목적으로 이곳에 오르지 않을까 염려되어 경계를 늦출 수 없어서, 단 무엇보다 너무 춥고 배가 고파서 잠을 청할 수가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회사 측은 생수와 약간의 초콜릿 외에는 일체의 음식 제공을 불허하고 있고, 겉옷 주머니와 사타구니에 의지할 수 있는 손은 그나마 괜찮은데 발가락은 모두 동상에 걸려 심각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우리가 굴뚝 난간에 진을 치고 있어 심적으론 좀 불편하기는 하겠으나 소각장 가동에 실제로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소각장이 가동되면 굴뚝 외벽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좋다"고 밝혔다.

이씨는 "당신이 보시기엔 어떤지 몰라도 제가 보기엔 참으로 뜻깊고 아름다운 투쟁"이라며 "부당한 해고로 오랜 세월 고통 받는 비정규노동자들의 고난에 정규직조합원이 함께하고, 또 그 힘겨운 투쟁에 지역의 노동자들이 기꺼이 연대하고 있는 것이 지금 투쟁의 모습"이라고 밝혔다.

그는 "회사측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에 대하여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도록 해 달라"며 "분쟁 당사자들의 책임지는 자세가 만날 때 비로소 사태의 바람직한 해결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국가인권위, "경찰은 신체적 안전에 위해 없도록"

한편 국가인권위원회는 고공농성과 관련해 경찰에 공문을 보내 농성자들의 신체적 안전에 위해가 없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6일 울산을 방문해 현장조사를 벌인 인권위는 "민노총 울산본부가 낸 긴급구제조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했다"면서 "2명에게 방한복과 침낭, 따뜻한 식수, 일부 음식물이 공급되고 있어 긴급구제조치 요건에는 해당하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인권위는 "지난 9일 관할 동부경찰서에 공문을 보내 농성자의 신체 안전에 위해가 없도록 지속적인 조처를 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다음은 이영도씨가 '정몽준 의원한테 보내는 글' 전문.

▲ 현대미포조선 조합원 김순진(37)씨와 민주노총 울산본부 수석부본부장(본부장 직무대행) 이영도(48)씨는 지난해 12월 24일부터 울산 현대중공업 소각장 굴뚝 꼭대기에서 농성 중이다. ⓒ 민주노총 울산본부

정몽준 의원님께! 당신은 지금 편안히 주무시고 계십니까? 저는 당신께서 최대 주주로 있는 현대중공업이 운영하는 소각장 100m 높이의 굴뚝 난간에서 벌벌 떨면서 19일째 새벽을 맞고 있습니다. 용감하기로 유명한 현대중공업 경비대가 굴뚝농성 진압을 목적으로 이곳에 오르지 않을까 염려되어 경계를 늦출 수 없어서, 단 무엇보다 너무 춥고 배가 고파서 잠을 청할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회사 측은 생수와 약간의 초콜릿 외에는 일체의 음식제공을 불허하고 있습니다. 겉옷 주머니와 사타구니에 의지할 수 있는 손은 그나마 괜찮은데 발가락은 모두 동상에 걸려 심각한 통증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걱정하는 가족과 동료들 생각에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당신께선들 편안한 밤이겠습니까만은 적어도 이토록 춥고 배고프지는 않겠지요. 당신 소유의 시설 일부가 점거 당하여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느끼는 불안감 같은 것은 없을 테지요. 며칠 전 저의 처한테서 연락이 오기를 현대중공업이 우리들로 인하여 소각장 가동을 못하게 되어 5억2천여만 원의 손해가 발생했다며 법원에 저를 피고로 삼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고 하더군요. 소장 접수 당시 8일간 가동이 중단되어 발생한 손해액이 5억2천여만 원이었다고 하니 20일이 다되어가는 지금은 그 손해액이 십수억원에 이르겠군요.

제게는 너무 많은 돈이고 제 스스로 소장에서 한 회사측 주장을 모두 수용하여 배상의지를 갖는다고 하더라도 당신께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노동자들 삶이 그런 것처럼 저 역시 성실히 일해 왔지만 모아둔 돈이 한 푼도 없을 정도로 가난합니다. 가난을 불편이라고만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그것이 이렇게 크게 위안이 되고 방패가 될 때도 있다는 걸 이번 일로 새삼 배우게 되었습니다. 당신 소유의 회사가 준 가르침입니다. 감사할 따름입니다.

우리가 굴뚝 난간에 진을 치고 있어 심적으론 좀 불편하기는 하겠으나 소각장 가동에 실제로 방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소각장이 가동되면 굴뚝 외벽에서 온기를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회사는 더 발생할 수 있는 손해를 줄일 수 있어 좋고, 또 소각시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일감이 제공되어 불안하지 않아도 되니 이렇게 모두에게 좋은 일을 중단하고 받을 수도 없는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불합리한 태도를 저는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혹시 저희들의 특별한 의지를 춥고 배고프게 하여 꺾어 보겠다는 심사는 아니겠지요. 다른 것은 몰라도 그것만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심사라면 이제라도 거두어들이십시오. 부디 소각장이 가동되게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의원님! 굴뚝 농성장이 위치한 이곳 울산 동구는 88년부터 내리 다섯 번이나 당신을 국회의원으로 당선시켜 집권 한나라당의 최고위원이 되는 걸 돕고 대권의 꿈까지 가질 수 있도록 한 정치적 고향입니다. 이곳은 당신에게 돈과 권력을 안겨준 은혜로운 땅입니다. 당신에겐 이토록 은혜로운 땅이 노동자들에겐 참으로 서럽고 억울한 곳입니다. 당신의 소유라고 할 수 있는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울산과학대까지 이곳의 노사관계는 외양상 평온한 듯 보이지만 그것은 상생의 관계에서 연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배후는 통제와 차별로 인한 불신과 대립의 활화산입니다.

당신도 생생히 기억할 겁니다. 2007년 당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울산과학대 청소용역 여성노동자들은 파리 목숨같은 비정규직 설움에 도전해 볼 요량으로 노조에 가입했다가 재계약을 거부당하는 방식으로 하루아침에 모두 해고되어 울산과학대 노사 모두 홍역을 치렀던 사태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당신이 최대 주주로 있는 회사에선 과반수가 비정규직으로 일하고 있고, 무권리 상태에서 심각한 차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회사는 이들의 권리행사를 인정하기는커녕 권리를 꿈꾸는 것 자체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회사의 감시와 탄압이 두려워 굴욕스런 삶을 강요받고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노동자가 일하다 다쳐도 법의 보호를 받을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고 부당한 처사에 항의할 엄두조차 내지 못합니다. 이런 피도 눈물도 없는 노사관계, 이젠 좀 바꿔야하지 않겠습니까? 당신께선 그럴 힘을 가지고 있음을 세상이 다 압니다.

당신 지배하에 있는 회사에 따뜻한 노사관계, 인간적인 노사관계를 기대해도 되겠습니까? 사회적 갈등이 조정되어 화해에 이르도록 돕는 일,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이 등 따습고 배부르게 하는 일, 그것이야말로 정치의 목적일겁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당신의 막강한 영향력 하에 있는 회사에서 분쟁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당신은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의 침묵은 책임 있는 정치인의 태도가 아닙니다. 당신은 말씀하셔야합니다. 현대미포조선 관련한 이 분쟁을 당신은 어떻게 보고 있으며, 처방은 무엇인지 말입니다. 사실상 현대중공업그룹의 사용자이면서 국회의원이기도 하신 당신의 온당한 답변을 기다리겠습니다.

의원님! 혹, 굴뚝 농성의 상세한 배경을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그래도 혹시나 싶어 전합니다. 권오균 등 30명의 노동자들은 외양상 현대미포조선의 위장 도급업체인 용인기업이라는 하청업체에 적을 두고 이십여 년씩을 근무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오늘날과 같은 사태를 예견한 회사가 이를 미리 예방할 목적으로 이들에게 진짜 하청노동자가 될 것(이를 회사는 ‘외주 하청화’라고 말함)을 요구하였고, 해당 노동자들이 당연히 거부하자 권리를 주장하는 하청노동자를 짜를 때 흔히 동원되는 수법(원청회사가 하청업체와 맺은 도급계약 해지)으로 이들을 모두 해고했습니다.

노동자들은 부당한 해고에 대하여 당연히 저항을 하였고, 천신만고 끝에 지난해 7월 해고된 지 6년여 만에 해고가 정당했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이 잘못되었으니 다시 재판하여 판결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았습니다. 대법원 판결 이후 당사자들은 매일 길거리에서, 또 이전한 당신 지역구(동작구)사무실과 국회를 오가며 대법판결 수용을 촉구하는 활동을 펼쳤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김순진 등 일부 정규직노조원들도 거리 캠페인을 지원하고, 사업장 내에선 자신의 점심시간을 쪼개가며 용인기업 해고자 복직을 촉구하는 활동을 했습니다. 그러자 회사 측은 이를 못마땅하게 여겨 탄압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측의 복직거부를 비판한 김순진 조합원에 대하여는 대법 판결이 확정판결이 아님에도 복직거부를 비난하는 것은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회사 명예훼손에 해당한다며 이것을 중한 징계사유로 삼아 정직 2월에 처하는 중징계를 단행했습니다. 그와 함께 활동한 동료들에게도 사규위반 통지를 날렸고 연장근로와 휴일 특근에서 이들을 배제하는 방식으로 탄압했습니다.

그간 노조활동에 적극적이었다는 이유로 탄압받아온 이홍우 조합원의 경우는 업무수행 중 사고로 다쳐 통증을 호소하며 치료받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묵살 당했고 “너 좋아하는 투쟁이나 열심히 해라”며 조롱까지 받아야 했습니다.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 이홍우 조합원은 자신의 목숨을 던져서라도 회사 측의 악랄한 탄압을 만천하에 고발해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지난해 11월 14일 아침 일찍 출근하여 목에 줄을 묶고 현장사무실 건물 4층 난간에서 뛰어내립니다. 그가 이렇게 목숨을 걸로 폭로하려고 했던 내용들은 그가 투신하기 전에 남긴 녹음기에 고스란히 녹취되어 있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김순진 등 용인기업 복직활동을 도와 온 정규직 조합원들은 퇴근 후 회사 정문 앞에서 철야농성에 돌입하게 됩니다. 농성용 천막은 경찰에 의해 첫날부터 철거당하였고, 추위를 피할 요량으로 버스승강장을 이용했는데 당신의 지지와 후원으로 당선된 정천석 동구청장은 발생하지도 않는 민원을 이유로 두 번씩이나 승강장에 모아둔 농성물품을 모두 수거해갔습니다. 동구청장은 한 달이 넘도록 분쟁 당사자들의 의견을 청취한 바 없고, 분쟁을 조정하려는 시도도 갖지 않았습니다. 회사 측 편들기로 일관한 야만적인 행정집행을 보일 뿐이었습니다. 회사 측은 연일 계속되는 촉구에도 불구하고 잘못은 인정하고 책임지려는 자세를 보이기는커녕 회사발행 공식홍보물을 통해 회사를 비판한 조합원들에게 엄중한 책임을 묻겠다며 목을 겨누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김순진 조합원과 제가 굴뚝에 오르기 전날 동시에 일어난 일입니다.

김순진 조합원은 회사 측의 적반하장식의 태도에 분개했고 보다 강력한 문제제기가 요구된다며 투지를 불태웠습니다. 저는 김순진 조합원의 분노가 이유가 충분하다고 보았고 그의 의지를 지켜주어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또다시 있어서는 안 될 불행한 사태도 막아야 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김순진 조합원과 함께 굴뚝에 오르게 된 배경입니다. 이젠 상세히 이해가 되셨으리라 봅니다.

의원님! 당신이 보시기엔 어떤지 몰라도 제가 보기엔 참으로 뜻 깊고 아름다운 투쟁입니다. 부당한 해고로 오랜 세월 고통 받는 비정규노동자들의 고난에 정규직조합원이 함께하고, 또 그 힘겨운 투쟁에 지역의 노동자들이 기꺼이 연대하고 있는 것이 지금 투쟁의 모습입니다. 이 아름다운 연대가 유종의 미를 걷을 수 있도록 결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제가 한 행동에 대하여 제가 부담할 수 있는 능력 범위 내에서 최대한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러니 회사 측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에 대하여 책임지는 태도를 보이도록 하여 주십시오. 분쟁 당사자들의 책임지는 자세가 만날 때 비로소 사태의 바람직한 해결이 가능해질 것입니다.

아침이 밝아오고 있습니다. 손이 너무 시렵습니다. 따뜻한 국물이 있는 라면 한 그릇을 먹고, 담배를 한 대 태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빨리 구치소에 수감되어 재판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이것도 사치라면 할 수 없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마음 내어 주시길 기대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9년 1월 11일 아침에. 이영도(민주노총울산지역본부 전 수석부본부장)가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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