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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19) 실소(失笑)

[우리 말에 마음쓰기 523] ‘은사(恩師)’란, 또 ‘만삭(滿朔)’이란

등록|2009.01.14 15:58 수정|2009.01.14 15:58

ㄱ. 실소(失笑)

.. 어느 분인가 저에게 이런 질문을 했을 때 그만 저는 실소(失笑)를 했읍니다 ..  《고 마태오-아, 조국과 민족은 하나인데》(중원문화,1988) 87쪽

 “이런 질문(質問)을 했을 때”는 “이렇게 물었을 때”로 손봅니다.

 ┌ 실소(失笑) : 어처구니가 없어 저도 모르게 웃음이 툭 터져 나옴
 │   - 그의 이야기를 한참 듣다가 나도 모르게 그만 실소를 하였다 /
 │     나는 이날의 장면을 상기할 때마다 혼자 실소를 금치 못한다
 │
 ├ 그만 저는 실소(失笑)를 했읍니다
 │→ 그만 저는 피식 웃고 말았습니다
 │→ 그만 저는 웃고 말았습니다
 │→ 그만 저는 웃음이 나오더군요
 │→ 그만 저는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 그만 저는 허허 웃었습니다
 └ …

 자기도 모르게 피식 터져나오는 웃음, ‘피식웃음’이라고 하면 어떨까 생각해 봅니다. ‘너털웃음’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해도 되고, ‘헛웃음’과 닮았다고 여겨도 되겠군요. ‘허허 하고 웃는 웃음’이니 ‘허허웃음’으로 적으면 어떠할는지요. 때로는 씁쓸하게 웃는 웃음이라 할 수 있으니 ‘씁쓸웃음’으로 적어도 나쁘지 않네요.

 ┌ 그만 실소를 하였다 → 그만 웃음이 터져나왔다
 └ 실소를 금치 못한다 → 터져나오는 웃음을 막지 못한다

 낱말뜻대로 한다면, ‘웃음이 터져나온다’라 적거나 ‘웃음을 막지 못한다’라 적으면 됩니다. ‘웃음이 새어나온다’라 적어도 괜찮고, ‘웃음을 막을 길이 없다’라 적어도 괜찮습니다. 이런 뜻을 살리면서 ‘웃음이 와하하 나왔다’라 적어도 되고, ‘웃음을 어찌할 수 없다’라 적어도 됩니다.


ㄴ. 은사(恩師)

.. 첫째날은 1일 선생님 날이었고 다음날인 7일은 은사(恩師)에게 편지 쓰는 날이었다 ..  《김제동-라일락 향기》(한국교육공사,1978) 196쪽

 ‘제일일(第一日)’이나 ‘익일(翌日)’이라 하지 않고, ‘첫째날’과 ‘다음날’이라고 적은 낱말이 반갑습니다.

 ┌ 은사(恩師) : 가르침을 받은 은혜로운 스승
 │   - 여고 때의 은사를 찾아뵈러 학교에 갔다
 │
 ├ 은사(恩師)에게 편지 쓰는 날
 │→ 스승한테 편지 쓰는 날
 │→ 옛 스승한테 편지 쓰는 날
 │→ 고마운 스승한테 편지 쓰는 날
 │→ 그리운 스승한테 편지 쓰는 날
 │→ 생각나는 스승한테 편지 쓰는 날
 └ …

 우리 말 ‘스승’이 있습니다. 스승 가운데에도 자기한테 은혜를 베풀어 준 분이라면, “은혜로운 스승”이라 하면 됩니다. 은혜를 베풀어 준 분은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고마운 스승”이라 할 수 있어요. 학생들이 편지를 쓰는 스승이라 한다면, ‘고맙다’나 ‘은혜롭다’ 같은 말을 넣어도 되지만, “그리운 스승”이나 “떠오르는 스승”이나 “생각나는 스승”쯤으로 적어도 잘 어울립니다.

 ┌ 여고 때의 은사를
 │
 │→ 여고 때 스승님을
 │→ 여고 때 고마웠던 스승을
 │→ 여고 때 잘 가르쳐 주었던 스승을
 └ …

 ‘고마운스승’이나 ‘고마운분’이나 ‘고마운사람’이나 ‘고마운님’처럼 ‘고마운-’을 앞가지로 삼아서 새 낱말을 빚어내 보면 어떠할까 생각합니다. ‘恩師’라는 한자말이 ‘고마움(恩)’과 ‘스승(師)’을 뜻하는 한자를 더해서 지었듯, 우리도 우리 토박이말로 ‘고마움 + 스승’으로 적어 보아도 괜찮겠지요.


ㄷ. 만삭(滿朔)

.. 2차 대전에서 일본이 점점 밀리기 시작하던 8월 초, 아내는 만삭(滿朔)이 된 배를 안고 고향 시골집으로 해산의 길을 떠났고 ..  《김제동-라일락 향기》(한국교육공사,1978) 55쪽

 ‘점점(漸漸)’은 ‘조금씩’으로 손보고, “밀리기 시작(始作)하던”은 ‘밀리던’으로 손봅니다. “8월 초(初)”는 “8월 첫머리”로 고쳐쓰고, “해산(解産)의 길을 떠났고”는 “아이를 낳으러 떠났고”로 고쳐 줍니다.

 ┌ 만삭(滿朔) : 아이 낳을 달이 다 참. 또는 달이 차서 배가 몹시 부름
 │   - 만삭의 몸 / 만삭의 아내 / 내 아내는 만삭까지는 아니더라도
 │
 ├ 만삭(滿朔)이 된 배를 안고
 │→ 잔뜩 부른 배를 안고
 │→ 달이 거의 찬 배를 안고
 └ …

 ‘만삭’이라고만 쓰지 않고 ‘만삭(滿朔)’으로 적으면, 배가 부른 어머니들 모습을 좀더 잘 알거나 느낄 수 있을까요. 글쎄. 어떠할는지요.

 ┌ 만삭의 몸 →배부른 몸 / 아이 낳을 달이 찬 몸 / 아이 낳을 때가 된 몸
 ├ 만삭의 아내 →배부른 아내 / 아이 낳을 때가 된 아내
 └ 만삭까지는 아니더라도 →아이 낳을 달이 다 차지 않았더라도

 아이를 밴 어머니 모습 가운데 ‘배가 부른’ 모습을 힘주어 말하고 싶으면, “(잔뜩) 부른 배를 안고”로 적으면 되고, 달이 거의 차서 곧 아이가 나올 듯한 느낌을 나타내고 싶으면, “달이 (거의) 찬 배를 안고”로 적으면 됩니다. 알아듣기 좋은 말투로나, 뜻을 나타내기 알맞는 말투로나, 이와 같이 할 때가 한결 낫습니다. 아이를 낳으니 ‘아이낳기’이고, 아이를 기르니 ‘아이기르기’나 ‘아이키우기’입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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