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설정과 노하우를 알려주는 단편들
[서평]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 책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 ⓒ 문학동네
이 소설, 마르셀 에메의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는 풍자소설 같기도 하고 철학동화 같기도 하다.
읽고난 느낌이 아주 알짜배기 간식을 먹고난 뒷맛이랑 비슷하다. 우연히 손에 들어온 거라 무심코 읽었는데 이런 대어라니! 무식하게도 난 여태 이 작가 마르셀 에메란 이름을 들은 적도 본 적도 없었다. 해서, 도대체 누군데 일케 소설을 맛깔나게 쓰는 거야, 찾아봤더니 다음과 같이 소개되어 있다.
대표작은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초록 망아지>, <하늘을 나는 장화>, <착한고양이 알퐁소> 등이고. 이 유명한 동화를 쓴 작가 이름을 몰랐다니, 이러고도 동화와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입네 했다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건 그렇고 하여간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가 표제작인 이 단편집에는 총 다섯 편이 소개되어 있다. 한 편 한 편이 다 괜찮지만 특히 <생존시간 카드>, 이 작품은 완전히 살 떨린다.
소설 서두에서 '설정'이 뭔지 아는 순간 입에 침이 고여왔다. 그리고 미친듯 일독한 후의 감전된 듯한 충격이라니…. 그래 바로 이런 소설, 더도 덜도 말고 나도 딱 이런 소설 한 편 써보고 싶다는 간만에 느껴본 욕심으로 회가 동해 본 작품이다.
아, 그리고 <칠십리 장화>에서 작가가 소품을 활용한 수법(?) 역시 괜찮은 노하우구나 싶다. 동화나 우화를 패러디한 작가가 어디 한둘이겠느냐마는 이런 식으로 살려낸 작품은 처음 본 거 같다.
작가는 페로의 동화 <엄지동자>에서 이야깃거리의 주변부에 머물러 있던 별 것 아닌 것, 장화를 소설 속으로 끌어 들이는데, 등장인물들로 하여금 스스로 상징을 부여하게 하고 그 상징을 현실 속에서 '사실적으로' 살려낸다. 이로 인해 동화적인 요소로 채워진 <칠십리 장화>가 동화의 범주에서 소설로 건너온 게 아닌가 싶다. 한마디로 환상적인 요소가 어떻게 현실 속에 알맞추 들어앉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표제작인 <벽으로 드나드는 남자>도 환상적 요소가 위에 두 작품 못지 않다. 어리석고 고집 세고 뒤틀리고 탐욕스럽고 심술 궂은 인물이 등장하고, 때문에 인물과 사회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보다 더 시니컬한 어른동화 같은 소설이랄까. 세상과 인간과 사회 조직에 대해 피곤한 느낌이 묻어나는데, 이상한 건 읽고난 뒤의 느낌이 무겁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어이없고 황당하고 비현실적이어서 기분 나쁘게 환상적이기까지 한 우리 사는 세상에서 잠시 눈을 돌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일독 바란다. 지병이 될 거 같은 우울을 살짝 날려보낼 수 있을 거라는 걸 보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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