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오바마, 북한과 대담한 모개흥정 하라"
외신기자회견... '선북핵, 후이란핵' 해결방식 제안
▲ 김대중 전 대통령이 15일 낮 서울 중구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20일 취임하는 버락 오바마 차기 미국 대통령에게 이란 핵문제에 앞서 북한 핵문제를 우선 해결할 것을 권고했다. 김 전 대통령이 오바마 차기 대통령에게 '선북핵 후이란핵' 해결방식을 제안한 것은 처음이다.
김 전 대통령은 15일 오바마 정권 출범을 닷새 앞두고 연 서울외신기자클럽 초청 기자간담회에서 "북핵 문제가 이란 문제보다 해결하기 쉽다"고 전제하고, "북한 문제가 해결되면 그 모멘텀을 타고 이란 등에서의 비핵화 문제도 해결이 쉬워질 것으로 믿는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 권우성
김 전 대통령은 오바마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협상 방식에 대해서도 조언했다.
그는 "김정일 위원장은 통큰 협상을 선호한다"면서 "대담한 일괄타결의 모개흥정을 하는 것이 좋다"고 구체적인 협상 방식을 제시했다. 그는 "6자회담과 협력하면서 한꺼번에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자는 것"이라며 "그것이 북한과 같은 1인 지배의 통제된 국가와의 협상에는 유리하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이 이처럼 협상 우선순위와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공개 제안한 것은 클린턴 행정부의 대외정책을 입안 집행한 인사들이 포진한 오바마 행정부가 오바마 취임 이후 상당히 전향적으로 북한핵 협상에 나설 것이라는 전망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도 오바마 정부 출범에 거는 기대를 묻는 질문에 "오바마가 자신의 대외정책은 부시의 방향이 아니고 클린턴의 방향이라고 했고, 클린턴의 대외정책을 지켜본 힐러리 여사가 국무장관을 맡을 것"임을 거론하며 "오바마 정권이 클린턴 정권의 대북정책을 계승해 나갈 것이고 상당히 급템포로 나갈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김 전 대통령 측의 핵심 인사도 기자에게 "웬디 셔먼이 대북조정관(대북특사)이 되면 우리(DJ)한테도 찾아올 것"이라며 "그러면 자연스럽게 얘기를 주고받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미국을 방문해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와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웬디 셔먼 전 대북정책조정관 등을 만나 대화를 나눈 바 있다.
"북,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방 중지하라"
김정일 위원장에게는 "6·15공동선언과 10·4선언의 준수를 강조하는 북한이 그에 역행하는 비난을 일삼는 것은 지나치다"며 "남한 정부, 특히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비방을 중지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또 "남한 정부가 대북 대화 재개를 위한 기본 조치를 취하면 적극적으로 이를 수용해 대화 재개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그는 "남북은 6자회담이나 앞으로 있을 동북아 평화와 안보체제 구축과정에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도록 노력해야 한다"면서 "그래야만 우리 민족의 주체성을 지키면서 평화와 번영과 통일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통미봉남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런 일은 있어서도 안되고 가능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북한은 남북 간의 화해협력 속에 대미협상에 있어서 남한의 지원을 받는 그러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현명하다"고 밝혔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두 가지를 제안했다. 그는 기존에 밝힌 대로, 풍선을 이용한 대북 삐라 살포를 중지할 것과 6·15공동선언 및 10·4선언을 인정할 것을 제안했다.
"과거 저에게 베풀어준 성원을 이 대통령에게도 보내달라"
▲ 김대중 전 대통령이 15일 낮 서울 중구 외신기자클럽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권우성
그는 "94년 제네바 핵협정 당시 한국 정부가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가 철저히 소외되고 통미봉남의 상태에 빠진 쓰라린 역사가 있다"면서 "이번에 미국이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를 결정할 때, 일본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해제를 단행한 사실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국민들에게 "남북문제에 있어서 과거 저에게 베풀어주신 성원을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보내주시고, 이 대통령에 대해서 제가 앞에서 건의한 그런 방향으로 정부가 나아갈 수 있도록 감시하고, 성원하고, 편달해주시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주최측인 서울외신기자클럽의 임연숙 회장은 "2009년 첫 외신기자클럽 회견으로 오랫동안 외신기자들과 친한 특별한 분을 모셨다"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청와대 떠난 뒤로는 처음으로 오셨다"고 소개했다.
▲ 김대중 전 대통령. ⓒ 권우성
이날 회견에는 10명의 국내 언론 기자들과 100여 명의 외신 기자들이 참석해 김 전 대통령이 오바마 정권 출범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측에 어떤 메시지를 보낼지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한 외신기자는 "외신기자클럽에서 비정기적으로 중요 인사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하지만 최근 들어 이렇게 많은 외신기자들이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고 귀띔했다.
김 전 대통령 측에서는 박지원 의원과 임동원-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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