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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일 같지 않아"-"'꾼'들 때문"

[현장] 사고 원인에 대해 의견 엇갈리는 용산 주민들... "부동산 투기가 원인" 주장도

등록|2009.01.20 22:14 수정|2009.01.21 08:18

▲ 20일 새벽 서울 용산구 한강로 2가 재개발지역에서 대형 주상복합아파트 배경으로 철거민들이 농성중이던 가건물이 불길에 휩싸인 채 무너지고 있다. ⓒ 권우성


"안타깝네요. 전문 시위꾼들만 아니었어도…."
"심란해요. 저희도 곧 그런 일을 당할지 모르죠."

20일 오전, '참사'가 벌어진 서울 용산구 한강로2가 재개발 4구역 현장. 많은 시민들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여섯 생명이 스러져간 건물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했다. 시민들은 안타까운 한숨을 내쉬며 다양한 반응을 내놓았다.

많은 이들은 "어떤 이유로든 사람이 죽어서는 안 된다"며 경찰의 무리한 진압을 비판했다. 그런 와중에 누군가는 세입자를 생각하지 않는 철거정책과 낮은 보상비에 대해 분통을 터트렸고, 또 다른 이들은 조심스럽게 '전문 시위꾼'의 존재를 언급했다.

이러한 목소리는 재개발 4구역을 둘러싼 공간만큼이나 엇갈렸다. 4구역 동쪽에는 재개발을 끝낸 40층대 주상복합 아파트가 우뚝 서있고, 4구역 서쪽의 재개발 2구역은 올 봄 철거를 기다리고 있다.

재개발 4구역이 꿈꾸는 미래는?

▲ 한때 쪽방촌이었던 재개발 4구역 인근 지역에는 현재 대규모 주상복합아파트가 들어섰다. 사진은 파크타워 전경. ⓒ 선대식

왕복 4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부서진 집들이 가득한 재개발 4구역과 주상복합아파트단지 시티파크(지상33∼43층 5개동)·파크타워(지상34~40층 6개 동)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2000여 세대의 거대한 아파트 단지 모습은 보는 이의 시선을 압도했다.

이 중 파크타워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재개발 4구역보다 더 낙후한 곳이었다. 수십 년 된 낡은 가옥들이 따닥따닥 붙어있는 '쪽방촌'이었다. 2003년 11월 재개발 사업인가를 얻은 후, 1년 동안 철거가 이뤄졌다. 현재는 대규모 주상복합아파트 단지로 변모해 지난 10월 입주가 시작됐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에 따르면, 파크타워의 3.3㎡당 가격은 3500만원~4000만원이다. A공인중개사무소 김태형(가명) 실장은 "323㎡(98평)형 가격은 3.3㎡당 6000만원"이라고 말했다.

조합원 분양가가 3.3㎡당 2000만원 내외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조합원들은 수억원의 시세차익을 거둔 셈이다. 앞으로 용산 개발이 가속될 경우, 아파트 가격은 앞으로 천정부지로 오를 가능성이 높다. 김 실장은 "곧 강남을 능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파크타워는 재개발 4구역이 꿈꾸는 미래다. 하지만 철거 과정에서 벌어진 참사로 재개발 4구역의 미래는 흔들리고 있다. 이에 대해 파크타워를 세운 용산공원남측 재개발 조합은 "오늘 사고는 안타깝지만, 무리한 보상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떼쓰는 사람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안 된다"

재개발 조합은 "우리도 철거 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오전 조합사무실에서 만난 한 관계자는 "세입자 500여 세대에 대해 4인 가족 기준으로 주거이전비 800만원에 300만원을 더 얹어줬다"며 "그래서 조합원 원망을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임시거주처를 만들어달라는 등 무리한 부탁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최근까지도 아파트 앞에서 시위를 했다"며 "이들은 순수한 세입자가 아니라, 연대 투쟁에 나선 전국철거민연합회 전문시위꾼"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그들을 겨우 설득했다"며 "마지막까지 시위하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면 안 된다, 떼쓰는 이들의 요구를 하나씩 들어주기 시작하면, 개발을 할 수 없다"고 전했다.

파크타워 인근 공인중개사무소에서 만난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다. 한 재개발 4구역 조합원은 "사람들이 죽어 안타깝다"면서도 "세입자들은 지금까지 싼 임대료에 장사한 것을 고마워해야지, 보상비가 적다고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재개발 2구역 세입자들 "우리도 이대로 나갈 수 없다"

▲ 20일 오후 서울 용산역 앞 재개발 2구역에서 만난 건물 세입자들은 "우리도 같은 일을 당할까 걱정이 된다"고 밝혔다. ⓒ 선대식

재개발 4구역 동쪽에 있는 재개발 2구역 세입자들에게 이날 '참사'가 남 일 같지 않다. 이곳은 철거 준비가 사실상 완료됐다. 현재 집주인들로 이뤄진 재개발 조합이 세입자들을 상대로 점포를 비워달라는 명도소송을 건 상태다. 다음달 6일 판결이 난다.

이날 오후 이 구역의 한 군용물품 전문점을 찾았다. 29년째 한 자리에서 영업하고 있다는 최상열(가명·61)씨가 붉게 상기된 표정으로 TV를 보고 있었다. TV에서는 용산 재개발 철거민·경찰 사망 관련 보도가 나오고 있었다.

그에게 재개발에 대해 묻자, 최씨는 칼칼한 목소리로 "심란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진 그의 한숨은 군복으로 가득한 33㎡짜리 점포의 분위기를 더욱 무겁게 했다. 최씨는 "보상비가 너무 적다"며 말을 이었다.

"이 가게는 권리금만 7000만원을 받을 수 있는데, 보상비가 2200만원이다. 용산 개발이 시작된 후, 인근 임대료가 치솟고 있다. 권리금만 1억원이 넘는 곳이 많다. 보상금에 임대보증금 1700만원을 합치면 어디로 갈 수 있나."

그는 "군용품점 특성상, 용산역 앞을 떠날 수 없다, 사실상 폐업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대로는 절대 나갈 수 없다"며 "조합은 철거 준비를 끝냈다, 우리도 (오늘 사고와) 똑같은 일을 당할지 모른다,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인근 슈퍼마켓 주인 김동인(가명·64)씨는 "2002년에 들어올 때 권리금 5천만원에 시설비 3천만원이 들었지만, 보상비는 2900만원 나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그는 "돈 많이 달라는 것도 아니다, 먹고는 살아야 할 것 아니냐"고 말했다.

"사고의 진짜 원인은 부동산 투기 때문"

▲ 20일 오후 재개발 준비가 이뤄지고 있는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65번지의 한 주택 뒤로 대형 주상복합아파트가 눈에 띈다. ⓒ 선대식

"개발을 하긴 해야 하는데, 서민들 생각도 해야지…. 근데 내가 죽게 생겼어."

재개발 4구역 인근 한강로3가 '65번지'에서 만난 이경화(가명·59)씨에게 이날 사고에 대해 묻자 돌아온 대답이다. 그의 표정엔 근심이 가득했다. 이유를 물으니, "2007년 초 이곳 79㎡ 대지를 3.3㎡ 당 3천5백만원에 샀는데, 안 팔려 걱정이 크다"고 그는 말했다.

당시 재개발이 곧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빚을 내 투자했다는 이씨는 "부동산 시장 침체로 재개발 소식은 없고, 팔고 싶어도 팔리지도 않는다"며 "한 달에 수백만원 이자 때문에 빚을 내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최현자(가명·64)씨는 "'65번지'에 있는 집은 돈 있는 사람들이 다 샀고, 이 때문에 2007년 가을 3.3㎡당 가격이 6000만원까지 올랐다"고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이 몰려 땅값이 크게 올라, 재개발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곳 토박이라는 김형식(가명·35)씨는 이날 사고에 대해 "참사의 진짜 이유는 부동산 투기"라고 밝혔다.

"비싼 돈을 주고 재개발 지역에 투기를 한 사람들은 최대한 이익을 내기 위해 보상금을 줄인다. 세입자들은 보상 얼마 받지 못하고 쫓겨난다. 재개발된 아파트를 보면 누가 그 이익을 다 가져가는지 뻔히 보이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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