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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시] 슬픈 다비식

전사 12 - 산화해간 용산 철대위 동지들을 기리며

등록|2009.01.21 13:37 수정|2009.01.21 13:37
- 전사 12 - 산화해간 용산 철대위 동지들

불 들어오는 구나
참나무 장작더미 눈 지그시 감고 누워
때를 기다리는 큰 스님에게
스님 불 들어갑니다.
소리 들리고

그래
들어오는 구나 불이
번지며 사방으로 꽃 춤을 추며
소리를 지르며 타오르는 구나
뛰어 내릴까 도망이라도 칠까
갈등 할 찰나도 주질 않는 불
들어오는 구나


방한 비닐 포장을 대번에 뚫고
라면 박스 페인트 통 어지러이 널려있는
짝 없이 뒹구는 신발 덮치는 구나
한꺼번에 삼키려 달려드는 구나
어차피 숯 가슴은
타고나도 시커먼 숯 검댕이 일 뿐
도망치는 용역깡패 미주알 춤은
마지막까지 불꽃 속으로 숨어들고

뛰어가는 전투화
사슬소리 짧은 명령소리
시시각각 조여 오는 시계소리
황급히 망루 꼭두로부터
잠시 뒤에 칠거라는 소식을 듣고
분주하던 대책위는 또 정적에 휩싸인다. 
타는 가슴 저마다 불을 지피고.

그래 그랫었지
푸른 하늘 높았던 운동회 날
달리기 순서를 기다릴 때
공안 칼날이 서슬 퍼렇던 날
붉은 전등 가득한 지하실에서
옆방 비명소리 간간히 들릴 때

이제 곧 칠 테지
국가가 폭력을 자행하는 사이
또 철거민들이 생떼를 부린다며
온 나라가 한바탕 난리겠지.
그래 분명히 말해 둘게 있지
무자비한 폭력배 용역 깡패보다
방관하던 경찰이 더 무서웠지

아 머릿속이 하얗게 되었구나.
늘 술꾼이었고 못난 아비였지
맛난 거 먹고픈 너희들에게
하지만 기억해 다오 이 순간만은
끝내 망루를 버리지 못한
마지막 주인이었음을.



그리고 사랑한다.  아이들아
미안하구나. 지독히 사랑한다.
먼저 머리카락을 핥으며
불이 막  드는 구나
뜨거운 불
그래 뜨겁게 사랑한다.
사랑한다. 아내여
아니 밝은 불꽃 속
왜 이리도 깜깜한가 이제
안녕
또 안녕
모든이여 사물이여 
안녕

2009.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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