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보톡스' 맞으니 "첫 데이트보다 설레"
[온고을 사람들 27] '할머니 공방'의 세여자 이야기
▲ 할머니공방은 시골외할머니네 아랫목처럼 훈훈하고 살뜰한 곳이다 ⓒ 할머니공방
전북 전주 남부시장 하늘정원 한 편에서는 도란도란 정다운 이야기꽃이 피어난다. 자분자분한 이야기 소리는 끊길듯 말듯 들렸다가 까르르 웃는 소리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 웃음꽃의 근원지는 '할머니 공방'이다. 한땀 한땀 바느질을 하고 수를 놓으면서 이야기꽃도 더불어 피어난다.
'할머니 공방'은 공공작업소 심심과 G마켓이 공동지원한 사업으로 오래된 물건이나 버려진 물건을 리폼하여 할머니들이 전통디자인 수공예품을 만들어 판매한다.
#1 '이 나이에도 뭔가 할 수 있구나' 감격
▲ 한번 보면 금방 터득하는 이인자 할머니는 '눈썰미 내공 일인자' ⓒ 할머니공방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공방교육 광고를 보게 되었어. 그냥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정말 정말 재미있는 거야.
뭐가 제일 기뻤냐면 '내가 이 나이에 무언가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날 것 같았어. 여태 모르고 살았는데, 모르고 살았어도 어떻게든 살았겠지. 그런데 이걸 모르고 죽었다면 얼마나 억울했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
전시회 앞두고 다포나 가방같은 걸 만들고 있으면 가슴이 얼마나 두근거리는지…. 아마 처음 데이트했을 때도 이렇게 설레지는 않았을 걸. 가방을 이렇게 만들면 좋을까, 저렇게 만드는 것이 좋을까 궁리하고 있다보면 시간 가는 줄도 몰라."
#2 내가 번 돈으로 손자손녀 용돈 주는 재미, 쏠쏠해
송순덕 할머니(71) : "사람들은 내가 재봉틀질하는 걸 보면 깜짝 놀라. 이 나이에 안경도 안 쓰고 어떻게 바느질을 할 수 있느냐고(웃음).
자식들은 내가 여기(공방)에 나가는 거 반대해. 어깨도 아프고 눈도 아픈데 뭐하러 나가서 고생하느냐고. 그런데 아프기는커녕 얼마나 재미있고 살맛나는데…. 뭘 모르고 하는 소리지. 내 걱정해주는 거야 잘 알겠지만 정말 건강을 생각한다면 노인들에게 일거리를 줘야 하거든. 아침밥 먹고 버스 타고 여기 오면 9시정도 되거든. 점심먹기전까지 부지런히 만들다보면 정말 밥맛도 나고 몸도 더 건강해지는 것 같아.
▲ 안경없이도 바느질을 할 수 있는 송순덕할머니는 '맵씨 내공 일인자' ⓒ 할머니공방
돈도 벌어서 좋지. 돈 싫다는 사람 어딨어. 자식들이 용돈 주지만 내가 직접 번 돈하고 어디 같겠어? 내가 번 돈으로 손주들 과자라도 하나 사주고 용돈이라도 주는 재미가 얼마나 쏠쏠한데."
#3 "일 욕심? 할머니들도 만만찮아"
박영예 할머니(69) : "우연히 어르신 일자리 취업센터에서 강좌를 보았지. 처음엔 동화구연을 했는데 나하고는 영 맞질 않아서 그만두었어. 나중에 보니까 공방 교육이 있더라고. 예전에 남편하고 양복점을 한 경험이 있어서 이 편이 훨씬 낫겠다 싶어서 신청을 했지.
재밌지. 이 재미를 뭐하고 바꿀 수 있겠어. 시간은 남아돌고 할 일은 없는데 이렇게 뭔가 집중해서 만들어내고 창작할 수 있다는데 다시 태어난 것처럼 기쁘고 즐거워. 아침에 눈떴을때 '오늘도 내가 출근할 곳이 있구나' 생각을 해봐. 그것처럼 고마운 일이 또 있는지.
▲ 왕년에 양복점을 운영한 박영예할머니는 '솜씨내공 일인자' ⓒ 할머니공방
이런 자리가 더 많이 늘어났으면 좋겠어. 주위에 손끝 야물고 솜씨좋은 할머니들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분들에게 이런 자리를 주면 일자리도 제공하고, 할머니들 솜씨도 대대로 이어가고 일석이조 아니겠어?
이래봬도 할머니들이 얼마나 욕심이 많은 줄 알아? 자신들이 만든 작품들 남에게 뒤처지지 않아보일려고 얼마나 노력한다구. 그리고 할머니들이 만든 작품이라 허술하다는 말 듣지 않으려고 악착같이 애쓰고 있어. 그런 할머니들의 열정·욕심에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 알록달록한 천의 어울림이 마치 우리 사는 세상과 비슷하죠. 어느 누구도 예쁘지않고 쓸모없는 삶은 없나봅니다. Made in 할머니공방 ⓒ 할머니공방
▲ 할머니 공방에서 만든 다포 ⓒ 할머니공방
또한 많지 않은 급여이긴 하지만 자신들이 스스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이 굉장한 자부심과 긍지를 갖게 만든다고 했다. 그리고 이 나이에도 이렇게 일욕심이 많다는 것에 대해 자신들도 새삼 놀랐다고 했다.
그들은 인터뷰 끝에 노인들에게도 이러한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말만은 꼭 써달라고 몇번이고 당부했다. 할머니 공방에서 만들어진 손지갑·가방·커튼·다포 등 생활공예품은 오픈마켓을 통해 판매된다. 어르신들의 솜씨와 연륜도 살릴 수 있고, 낡은 용품을 재활용할 수도 있고, 노인들의 일자리도 제공하고 일석삼조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여담이지만 처음에는 '할머니 공방'이라는 이름대신 '언니공방'이라고 하자는 의견도 있었단다. '할머니'라는 어감이 왠지 너무 구식이라는 것. 하지만 언니공방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이 할머니공방에는 있다. 연륜, 세월, 추억이다. 그리고 한가지 더 보태면 '일에 대한 감사함'이다.
덧붙이는 글
선샤인뉴스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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