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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으로 돌아가 시를 모시다

시집 <흙의 경전> 펴낸 홍일선 시인

등록|2009.01.24 20:18 수정|2009.01.24 20:18
 서울을 훌쩍 떠나 여주군 점동면 도리 여강 가에 흙집을 짓고 논 두마지기와 밭 이 천 평을 일구며 살고 있는 홍일선 시인이 십 수 년 만에 새 시집을 펴냈다. 도서출판 화남(대표 방남수)에서 출간한 그의 세 번째 시집 <흙의 경전>은 그가 처음부터 천착해온 흙과 농사와 자연과 환경에 관항 절규라 하는 편이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모른다.

시집<흙의 경전> 표지 그림은 유연복 화백의 <빈들 생명>이다 ⓒ 정용국

1980년 ‘창작과 비평’으로 등단한 이래 황지우, 나종영, 김용택, 김사인 등과 (시와 경제) 동인으로 활동하였고, 1984년 자유실천문인협회의 간사로 그 후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하며 문단의 숨은 공이 컸던 그였다. 특히 여주로 거처를 옮긴 뒤 작년 대운하 문제로 전국이 시끄럽고 강가의 물류기지 땅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던 때, 그가 터 잡은 곳에도 선착장이 들어온다는 정부의 발표를 듣고 그는 애면글면 하며 문단과 예술인들을 모아 한국작가회의 도종환 사무총장과 대운하반대 문화예술인 공동연대 운영위원장을 맡아 동분서주 하였다.

그의 논과 밭에는 농약냄새가 나지 않는다. 논에는 우렁이를 넣어 잡초를 없애고 땡볕에 벌레잡고 김매느라 몸무게가 많이 줄었다. 요즘에는 아예 ‘시’ 보다 ‘건강한 섭생과 환경‘을 위한 거대한 화두를 잡고 고민 중이다.

<흙의 경전>은 이미 그가 수년 전부터 다듬어온 시들이다. 더구나 직접 호미를 들고 땅을 가꾸는 농자로서의 말씀이 들어 있기 때문에 값진 글이라 할 수 있다. 사람들은 지금 같은 시대에 무슨 농사 이야기냐 할이지 모른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다르다. 이 땅이 외국산 농산물과 농약으로 얼룩지고, 세상의 모든 일이 경제의 논리로 계산된다면 지구의 미래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은 시인은 기자와 그가 새해 첫날 놓아기르는 닭과 오리가 낳은 유정란 스무 알을 들고 인사하러 간 자리에서 그것을 받아들고 마주 절하며 그의 공덕을 기려주었다. “시인과 농사꾼은 한 가지야. 말을 다루는 것과 땅을 모시는 것이 일맥상통 하니까. 내가 당신 시집 한 숨에 다 읽었어. 聖시화호까지 말이야 대단해! 장시인(장석주시인) 이런 작품들 귀하게 잘 다루어주게” 하였다.

삶은 대자대비한 땅
홀로 찾아가는 외로운 농업
그믐달이 강물의 영혼을 더 푸르게 해주어
별빛이 먼 길 인도하여 주시면
그대 근원을 향한 발걸음
아무데서 함부로 멈출 수 없으리니

                                - ‘흙의 경전’ 부분-

‘홀로 찾아가는’ ‘근원을 향한 발걸음’ 에서 우리 농업의 현주소와 우리 농업이 지향해야 할 목표를 강하게 제시하고 있다. 농업이 당장 먹고 사는 방책이 아니라 우리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근본적 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홍일선의 생각인 것이다. 그는 아침밥으로 감자즙과 찐 고구마 두 알을 시래기 된장국과 함께 먹는다. 그리고 야채만 올라오는 하루 두 끼니로 도시에서 다치고 병든 몸을 어루만져 주고 있다.

그는 강가를 산책하며 강물과 고라니와 매와 물고기, 그리고 하늘과 대화한다. 그에게 모든 자연이 스승이고 애인이다. 자연과 가까운 생활을 하다 보니 시화호의 아픔과 대운하의 폐해에 가장 먼저 아파하고 우려하는 사람이 되었다. 표사에서 장석주 시인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성시화호는 노래가 아니라 이야기를 품고 있다. 그 이야기 속에는 상처받은 생명들의 울음과 죽어가는 생명들이 내지르는 비명이 새긴 무늬가 들어 있다. 마침내 시인은 울음으로 비명으로 다양한 생물 종들의 멸종과 그 죽임의 미친 역사를 증언한다>

백무산 시인의 말에는 더 진한 느낌이 와 닿는다. <시인의 첫 마음으로의 회귀는 가난하고 작지만 가장자리에 서는 일이다. 그곳에는 위계와 척도와 부와 지배의 힘을 파괴하는 빈자의 혁명의 역사가 있다. 그래서 그 가장자리에는 눈물 그렁그렁한 사람들이 있고,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시인이 있고, 눈물 많은 어머니가 있고, 읽어도 읽어도 다 읽을 수 없는 흙의 경전이 있다. 붉은 밑줄 그어 표해 두었으나 오랫동안 잃어버렸던 그 구절로 나도 이제 돌아가련다 ‘가난 아닌 것 다 거짓이다’>

홍시인의 거실에 주렁주렁 걸려있는 메주 덩어리들과 잘 패서 쌓아 둔 장작을 보면 이제 석농자(홍일선 시인의 자호)는 진짜 농투사니가 되었고 흙의 시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농사가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농사꾼이 기가 죽어 무너진 자리에서 시집 <흙의 경전>을 통하여 다시 우리 농업을 생각하고 중요성을 곱씹어 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경제가 제일이라는 망언은 죄악이다’ 라고 역설하는 도법스님의 말씀을 되새겨 볼 일이다.

여주생협에서 인사말 하고 있는 홍일선시인그의 화두는 시를 넘어 자연으로 가고 있다 ⓒ 정용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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