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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

[서평] 박광수의 카툰 에세이 <참 서툰 사람들>

등록|2009.01.25 13:58 수정|2009.01.25 13:58
어떤 사람은 사랑에 서투르고, 어떤 사람은 대화에 서툴다.
어떤 사람은 화해에 서투르고, 어떤 사람은 이별에 서툴다.
어떤 사람은 일에 서투르고, 어떤 사람은 젓가락질이 서툴다.
- 박광수의 <참 서툰 사람들> 중에서

그럼 나는? 모든 게 서툴다. 근데, 과연 세상에 서투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세상 일이 원래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법인데, 잘 풀리는가 싶다가도 꼬이기 일쑤인데, 그게 인생인데 말이다.

어쨌든 우리는 '서툴다'는 이유 하나로 불특정다수에게 놀림을 당하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그래서 괜히 스스로 못났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자괴감 때문이다. 하긴 ‘서투르다’라는 말을 기분 좋게 들을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되겠는가.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서투르지 않다는 것을 자신한다. 아무튼 정글의 법칙이 상존하는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많은 것을 빨리 능숙하게 익혀야 한다. 그게 또한 복잡다기한 21세기를 사는 생존법칙이다.

세상에 서투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난 지독한 왼손잡이다. 그래서 코맹맹이 때는 오른손으로 젓가락질이 서툴다는 이유로 집안 어른들로부터 핀잔을 받았다. 심지어는 '병신 새끼'라는 천덕꾸러기라 푸대접을 받기도 했다. 좀더 커서 개구쟁이 때는 왼손으로 글씨를 쓴다고 우스갯거리가 되기도 했다. 그러고 사춘기 성징을 알았을 때는 낫질호미질이 서툴러 논일밭일을 못한 까닭에 '밥버러지' 신세를 면치 못했다.

하물며 오뉴월, 보리타작과 모심기를 한창 농사일로 바쁠 때는 부엌 부지깽이도 거든다고 했거늘 농투성이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쓸모 있는 일꾼이 되지 못한다는 것 하나만으로 서툰 존재가 되어야 했다. 남의 집 아이처럼 보리를 벨 줄 아나, 낭창낭창 모심기를 잘하나. 소 꼴 베는 것 하나도 탐탁케 해내지 못했으니 어른들 말마따나 '평생 밥값'을 못할 놈이었다. 왼손잡이의 비애였다.
     
그런데 여기 나와 비슷한 유년의 기억을 가진 사람이 있다



<참 서툰 사람들> 표지<참 서툰 사람들>은 <광수생각>의 저자 박광수가 5년 만에 쓴 카툰 에세이다.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모든 일에 서투르다고 고백하고 있다. ⓒ 갤리온



그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서야 한글을 간신히 떼었고(아마 중학 때 이력을 밝히지 않은 것을 보면 그때는 '범생이'였는지도 모른다), 고등학교 때 좋지 못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파출소를 드나들었고, 대학입시에 낙방해 재수를 해야 했다.

언젠가는 예비군 훈련에 불참했다는 이유로 9시 뉴스에 실렸고, 첫 번째 결혼에 실패해 아이들에게 큰 상처를 주었으며, 어설프게 사업을 벌였다가 젊은 나이에 꽤 많은 빚을 진 사람.

게다가 늘 뚱뚱하고 변변치 못한 콤플렉스 덩어리였다고 자신을 밝히는 한 사람. 그는 바로 이 책 <참 서툰 사람들>의 저자 박광수다.


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을 했다. 뜨악했다. 어쩜 나와 이렇게도 닮은꼴이 있었을까 싶어서다(물론 그렇다고 지금의 내 형편은 박광수가 신발을 벗어놔도 못 따라간다).

그렇지만 동병상련하는 심정이랄까. 역지사지하는 입장에서 일맥상통하는 굶이 너무나 비슷하다. 그런 나도 이제 지지리 못난 놈의 테를 벗고 곰이 재주 부리듯 글께나 쓰고, 선생입네 하고 아이들 앞에서 제법 허세도 부리고 산다.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난 백전백패다. 돌이켜 보건대 나는 늘 패자였다. 어떤 경기나 승부에서 이기려면 능숙함이 필요한 법인데, 내게는 그런 능숙함이 많이 부족했다. 그리고 만일 오늘이 어제와 똑같이 반복되는 하루라면 이렇게든 저렇게든 다르게 해 봐야지, 하는 생각이 들겠지만 내게 오늘이라는 하루는 늘 생경한 출발이었다. 그러다 보니 그제의 나도 서툴렀고, 어제의 나도 서툴렀고, 오늘의 나도 서툴다."

그렇다. 지금의 나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게 없다. 남들처럼 아득바득 돈을 벌어놨나 승진을 했나 문단 말석에 겨우 빌을 디밀고 있을 뿐 이도저도 아니다. 가정애사도 그렇다. 어느 것 하나 말끔하게 맞아들어진 게 없다. 나 또한 백전백패다. 그런데 섭섭하지 않다. 실로 오랜만에 케케묵은 내면의 응어리들을 퉤퉤 벗어난 시원한 동지를 만나서 그럴까? 아무튼 그의 솔직한 토로는 맑은 하늘에 바람처럼 비 개인 후 달처럼 가슴이 확 트이고 시원하다.

케케묵은 내면의 응어리들을 퉤퉤 벗어난 시원한 동지를 만나

하지만 그는 한없이 부족하고 서투른 자신을 부정하거나 외면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지랄 맞더라도 한결같이 지랄 맞게' 사는 자기 자신을 감히 사랑한다고 말한다. 공감한다. '삶이란 녀석은 내게 아주 조그마한 행복과 기쁨을 주었다가 금세 다시 빼앗아 간 뒤 고통만 잔뜩 안겨준다'고 읊조리면서도 결국 또 질지도 모르는 세상이라는 큰 적과의 싸움에 '기꺼이' 응하겠다고 말한다.

여태껏 밑 빠진 독에 물 붓듯 살았던 나, 내 못이 아닌 다른 일에 얽매여서 살다가 겨우 정신을 차려 나를 찾고자 했을 때의 그 난감함이란? 그러나 그는 알고 있다. '날씨야, 네가 암만 추워 봐라. 내가 옷 사 입나. 술 사 먹지'라고 엄포를 놓으면서 말이다.

그가 서툰 사람들에게 주는 마지막 한 마디!

생각해 보면 그동안 나는 참 서툴게 살았다. 물론 그렇다고 지금도 그 굶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지만. 애면글면 <참 서툰 사람들>을 읽으면 그렇게 모든 게 서투르지만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사람, 박광수. 그가 서툰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는 때로 한 줄의 글에, 때로는 한 컷의 사진에, 그리고 한 컷의 만화에 담아내고 있다. 유쾌하면서도 따뜻하게 가슴을 울린다.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숨 가쁜 일상 속에서 잊고 지냈던 소중한 유년의 기억들을 한번쯤 돌아보게 된다.

"서툰 이들이여, 서툰 지금을 창피해할 필요 없다. 아니 후일에는 절대 다시 느낄 수 없을 그 느낌을 지금 충분히 만끽하기를 바란다. 시간이 흐르고 흐르면 필시 서툰 오늘이 다시 그리워질 터이니 말이다."

이래저래 살다보니 어느덧 지천명에 턱걸이를 했다. 참 지난하게 살았다. 유년시절 코찔찔이라 놀림을 받았던 아이도 어엿한 회사의 대표이사가 됐었고, 가뭄에 콩 나듯 학교에 드나들던 아이도 대학교수로 유명해졌고,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구구단을 옳게 외우지 못했던 아이도 당당하게 사장노릇하며 제법 어깨 힘을 주고 산다(오해 마시라. 그렇다고 그 사람들의 분골쇄신했던 노력을 폄하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런데 나는 박광수씨 말마따나 어느 것 하나 되는 게 없다. 그런데 오늘에 이르러 서툰 게 창피했을 때가 더욱 그리워지는 것은 왜일까?

인생이라는 마라톤 경기에서 누구나 최고이기를 원한다. 또한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 원하는 대로 풀리기를 갈망한다. 그렇지만 그 종착점에 쉽게 다다르지 못한다. 아쉽고 안타깝다.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서투른 것이 있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사람들은 대부분 어떤 일이든 능숙하기를 원하지만, 모든 일에 완벽한 사람은 없다. 그래서 모든 게 참 서툰 사람들도 뭇 사람들 속에 묻혀서 제 잘난 멋에 사는 것이다.

서툰 사람들에게 들려주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

누구나 자기 삶의 원천이 지독하게 서툴다고 느끼거든 박광수의 신작 <참 서툰 사람>을 읽어보라. 단지 <광수생각>이 아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서 열심히 살면서도 나만 부족하고 나만 못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부추기고 있다. 그래서 천착하며 서툰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들을 따뜻한 감성이 묻어나는 만화와 사진, 그리고 유쾌하면서도 감수성이 돋보이는 글로 담아내었다.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그의 글들은 삶의 소중한 가치를 다시 되돌아보게 만들어줄 것이다. 단돈 만이천원이 결코 아깝지 않은 책이다. 

<참 서툰 사람들>은 <광수생각>의 저자 박광수가 5년 만에 쓴 카툰 에세이다.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지만 모든 일에 서투르다고 고백한다. 또 그는 세상에 서투르지 않은 사람은 없으며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고 이야기한다. 서툰 오늘은 만끽하며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교차하는 인생길에서 작지만 소소한 기쁨과 행복을 맛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자근자근 이야기하고 있다. 단지 '광수 생각일까'마는 나는 지천명의 나잇살을 가졌는데도 아직 서툴다.
덧붙이는 글 * 도서명 : 참 서툰 사람들
* 저자명 : 박광수
* 출판사 : 갤리온
* 책가격 : 1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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