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강요된 교육현실, 소설에서 대안 찾는다

[서평] 김진경의 소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

등록|2009.01.25 19:58 수정|2009.01.26 12:15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이 소설은 우리 10대의 교육현실 '시계모자'라는 것을 통해 고발하면서 아울러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 문학동네





우리 교육현실의 통렬한 비판과 희망을 담은 소설이 눈길을 끈다. 강요된 시간과 공간을 뒤엎는 십대들의 통쾌한 반란을 주제로 한 김진경의 소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문학동네, 2009년 1월)는 우리 교육 현실에 대한 비판과 희망의 메시지를 동시에 담고 있다.

2008년 여름 십대들이 피어올린 촛불이 전국으로 번졌지만, 아직도 꺼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제 촛불의 의제는 더욱 다양해지고 있지만, 소통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김진경의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는 이런 암울한 현실에 대한 묵직하고 의미 있는 화두를 던지고 있다.

이 소설은 학교, 학원, 입시라는 세 개의 꼭짓점 안에 아이들을 가두고 삶의 열정과 기쁨을 앗아가는 교육제도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날을 세운다.

"낮에 잠을 자고 해가 기울 무렵이면 일어나 일상을 시작하는 이상한 나라가 있다. 이상한 나라의 대통령이 국제경쟁력을 강화한다는 목적으로 지구 반대쪽 나라의 시간에 맞춰 표준시를 변경해 하루 아침에 낮과 밤이 뒤바꿔 버렸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집중력을 강화시켜준다는 일명 '공부 잘하는 기계'로 불리는 '시계모자'를 쓰게 한다. 해가 지면 아이들이 투구처럼 생긴 시계모자를 쓰고 전쟁터에 출전하듯 학교에 간다.

하지만 시계 모자가 몰아가는 경쟁의 세계를 거부하는 기우, 신지, 지만, 인수, 세나는 시계모자 착용을 거부했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특수반으로 격리돼 교육현장 주변부로 밀려난다. 기우를 중심으로 특수반 아이들은 반시계모자 카페를 만들고 시민단체와 연대해, 시계모자 의무착용에 대한 국가인권위원회 제소와 헌법소원을 진행해 승리한다. 하지만 리더 격인 기우가 주변의 압력에 못 이겨 결국 시계모자를 쓰게 되고, 반시계모자 세력은 큰 타격을 입는다. 시계모자를 쓴 지 얼마 안 돼 기우는 집중력을 키워준다는 강화학교로 가게 되지만, 곧 탈출해 '지하도시'로 들어갔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본문 중에서-

이 소설은 에스에프 요소를 도입한 독특한 설정과 전편을 흐르는 긴장감, 속도감 있는 전개가 돋보인다. 지하도시 사수와 시계탑 파괴라는 두 사건을 축으로 작가는 다층적인 긴장의 결을 빗어낸다. 소설은 여러 인물들의 시선이 번갈아 가며 전개된다. 한 주인공의 독주가 아니라 여러 주인공들이 릴레이처럼 이야기를 이어 받아 이끌어 가는 서사구조다. 티격태격하면서도 똘똘 뭉쳐 문제를 헤쳐 나가는 아이들에게서 십대의 특유한 건강성과 힘을 느끼게 된다. 당당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그들에게서 우리는 작가의 영감이 된 우리 시대의 촛불소녀들을 보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우리 교육현실이 시계모자로 섬뜩한 모습을 드러낸다. 시계모자로 뇌의 전파를 조작하면서까지 아이들을 경쟁의 지옥으로 내모는 교육부, 그 무한경쟁에서의 도태가 정신분열보다 더 무서운 학부모 그리고 시계모자를 비판하는 선생님들이 가차 없이 교육현장에서 쫓겨나는 살벌하기 짝이 없는 소설 속의 세계는 우리 현실과 너무도 닮았다.

상위 10%를 위해 90%를 희생시키는 우리 교육의 실상이 얼마나 그로테스크한지, 작가는 시계모자를 쓰고 정신분열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통해, 최고급 시계모자를 향한 욕망과 질시를 낱낱이 그리고 있다. 0교시, 야간자율학습, 보충수업, 우열반이 다시 등장했고, 영어몰입교육의 전도사인 국제중학교 설립 등 현재와 미래를 옭아매고 있는 우리 교육현실을 뼈아프게 돌아보게 한다.

이 소설에서의 특이한 점은 어른들은 아이들의 조력자 역할을 하지만 결정적 영향력을 갖고 있지 못한다. 어른들은 그들이 취사선택할 정보의 소스이자 연대의 동등한 대상이다. 학생들이 맞이하는 승리는 온전한 그들의 몫이다. 비록 그 승리가 긴 투쟁의 시작에 불과할지라도, 노래하고 춤추며 외치는 그들의 신명난 마지막 모습이 거침없는 앞으로의 행보와 희망을 독자들의 마음에 심어준다.

소설 <우리들의 아름다운 나라>를 쓴 김진경은 서울대 국어교육과와 동대학원 국문과를 졸업했다. 국어교사 생활을 하며 시인이자 소설가로 이름을 알렸다. 1985년 교육개혁을 부르짖은 <민중교육>지 사건으로 옥고를 치렀다. 1989년에 초대 정책실장으로 전교조 창립을 주도했다. 15여년 해직기간에도 아이들에게 현실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한 출판, 저술 등의 교육민주화운동을 전개해 왔다. 최초의 판타지 연작동화 <고양이 학교>는 프랑스, 중국, 일본, 대만에서 번역 출간됐었으며, 프랑스 독자가 뽑는 아동청소년문학상 앵코륍터블상을 수상했다. 시집 <갈무리 아이들> <광화문을 지나며> <우리시대의 예수> 장편소설 <이리>와 청소년소설 <굿바이 미스터 하필> 등이 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