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묶음표에 갇힌 한자말 (20) 부정(不淨)

[우리 말에 마음쓰기 533] '전지(全知)와 다 앎', '초지(草地)와 풀숲'

등록|2009.01.27 15:17 수정|2009.01.27 15:17
ㄱ. 부정(不淨)

.. 추정컨대 유아기의 성이라는 부정(不淨)한 오점을 지워버리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아리엘 도르프만,아르망 마텔라르/김성오 옮김, 새물결, 2003) 70쪽

‘추정(推定)컨대’는 ‘생각하건대’나 ‘미루어보건대’로 다듬습니다. ‘유아기’라 하면 ‘幼兒期’인지 ‘乳兒期’인지 알 수 없으니, ‘어릴 때’나 ‘어릴 적’이나 ‘젖먹이 때’나 ‘아기 때’로 손질합니다. ‘오점(汚點)’은 ‘더러움’이나 ‘아쉬움’이나 ‘티끌’이나 ‘때’로 다듬습니다.

 ┌ 부정(不淨)
 │  (1) 깨끗하지 못함. 또는 더러운 것
 │   - 부정한 물건 / 임신 중에 부정한 것을 멀리하다
 │  (2) 사람이 죽는 따위의 불길한 일
 │   - 부정이 나다 / 부정이 들다
 │
 ├ 부정(不淨)한 오점을 지워버리는
 │→ 안 좋은 점을 지워버리는
 │→ 깨끗하지 못한 점을 지워버리는
 │→ 지저분한 점을 지워버리는
 │→ 더러운 점을 지워버리는
 │→ 더러움을 지워버리는
 │→ 지저분함을 지워버리는
 └ …

‘부정’이란 ‘깨끗하지 못한 것’, ‘오점’이란 ‘더러워진 것’입니다. 어, 그러고 보니 두 낱말 뜻이 거의 같군요. 쓰임새도 비슷하고요. 그렇다면 이 자리에서는 ‘부정’이든지 ‘오점’이든지 어느 하나만 써야 알맞겠어요.

 ┌ 부정한 물건 → 깨끗하지 못한 물건 / 더러운 물건
 └ 임신 중에 부정한 것을 멀리하다 → 아이를 뱄을 때는 나쁜 것을 멀리하다

한편, 두 가지로 쓰인 말씨를 살려 주고 싶다면, ‘부정’과 ‘오점’ 자리에 다른 알맞을 낱말을 넣어 줍니다. 먼저, ‘부정’은 ‘안 좋은’이나 ‘깨끗하지 못한’ 같은 말로 다듬습니다. 다음으로, ‘오점’은 ‘지저분한’이나 ‘더러운’이나 ‘얄궂은’이나 ‘안타까운’ 같은 낱말로 다듬습니다. 이러면서 “안 좋고 지저분한 모습을 지워버리는”이나 “깨끗하지 못한데다 얄궂은 모습을 지워버리는”으로 고쳐씁니다.

ㄴ. 전지(全知)

.. 그의 권한은 전지(全知)하다는 데 그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특히 강대하다. 모든 것을 다 알기 위해서 그는 무엇이든지 물을 권리가 있는 것이다  ..  <군중과 권력>(엘리아스 카네티/반성완 옮김, 한길사, 1982) 338쪽

“그의 권한(權限)”은 “그가 누리는 힘”이나 “그가 가진 힘”이나 “그한테 주어진 힘”이나 “그가 뻗치는 힘”으로 손질합니다. ‘기초(基礎)’는 ‘바탕’이나 ‘기틀’로 손보고, ‘특(特)히’는 ‘더욱’이나 ‘무엇보다’로 손보며 ‘강대(强大)하다’는 ‘컸다’나 ‘대단했다’로 손봅니다. “알기 위(爲)해서”는 “알려고”로 손질하고, “있는 것이다”는 “있다”나 “있다고 하겠다”로 손질해 줍니다.

 ┌ 전지(全知)
 │  (1) 신불(神佛)이 그 지닌 능력으로 모든 것을 다 앎
 │  (2) 하느님의 적극적 품성의 하나
 │
 ├ 전지(全知)하다는 데 기초를 둔다
 │→ 다 안다는 데 밑바탕을 둔다
 │→ 모두를 안다는 데 밑바탕을 둔다
 └ …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하니 ‘다 안다’고 하면 됩니다. 사람을 두고 모두를 다 안다고 한다면 ‘똑똑이’라 하거나 ‘똑똑하다’고 하면 됩니다. ‘모르는 것이 없다’고 해도 어울립니다.

‘전지하다’라 적으면 말뜻을 헤아릴 수 없다고 느끼며 ‘全知’를 묶음표로 덧달았을 텐데, ‘전지’뿐 아니라 ‘全知’를 모르는 사람한테는 어떻게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할까요. ‘전지하다’라 적을 때 알아듣지 못할 사람을 생각한다면, 묶음표에는 손쉬운 풀이말을 달거나, ‘전지’를 털어내고 누구나 손쉽게 알아들을 우리 토박이 낱말을 넣어 주어야 올바르다고 봅니다.

ㄷ. 초지(草地)

.. 콘크리트를 모두 초지(草地)로 바꾸면 낮 동안에도 기온이 1도 떨어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  <원자력과 환경>(나카무라 마사오/김경민 옮김, 엔북, 2006) 73쪽

‘확인(確認)할’은 ‘알’이나 ‘알아볼’로 고쳐 줍니다. “낮 동안에도”는 그대로 두어도 나쁘지 않으나 “낮에도”라고만 적을 때가 한결 낫지 않으랴 싶습니다. “떨어진다는 것을”은 “떨어짐을”로 손봅니다.

 ┌ 초지(草地) : 풀이 나 있는 땅
 │   - 초지를 조성하다 / 산을 초지로 일구다
 │
 ├ 콘크리트를 모두 초지(草地)로 바꾸면
 │→ 콘크리트를 모두 풀밭으로 바꾸면
 │→ 콘크리트를 모두 풀숲으로 바꾸면
 │→ 콘크리트를 모두 수풀로 바꾸면
 └ …

풀이 나 있는 땅은 ‘풀밭’이나 ‘풀숲’입니다. 이 말을 한자로 옮겨 ‘草地’라 적는 분이 틀림없이 있습니다만, 우리들은 말뜻 그대로, 또 있는 그대로 ‘풀밭’과 ‘풀숲’으로 적을 때가 가장 알맞고 손쉽고 싱그럽고 수수하며 아름답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 초지를 조성하다 → 풀숲을 가꾸다
 └ 산을 초지로 일구다 → 산을 풀숲으로 일구다

쉽게 하면 될 말은 쉽게 하면 끝입니다. 쉽게 해 주면 넉넉하고 사랑스럽고 믿음직합니다. 쉽게 할 말을 쉽게 하지 않으면 자꾸 엉기거나 꼬이고 말아요. 넉넉함도 사랑도 믿음도 깃들지 못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 인터넷방이 있습니다.

[우리 말과 헌책방 이야기] http://hbooks.cyworld.com
[인천 골목길 사진 찍기] http://cafe.naver.com/ingol
[작은자전거 : 인천+부천+수원 자전거 사랑이] http://cafe.naver.com/inbus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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