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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천만 음주 운전 레이스, 모두 미쳤다

[2008 수가다이라 트레일 레이스 참가기 ①]

등록|2009.01.29 17:10 수정|2009.01.29 17:13
트레일 레이스는 여행이다


평상시 훈련을 거의 안 하는 나에게 있어 대회는 곧 훈련이자 여행이다. 물론 처음부터 아무런 준비 없이 대회를 나간다면, 자신의 인간성을 다시 한번 생각할 수 있을 욕지거리 시간이 될 것이다. 분명 처음 대회 참가는 힘들고 어려운 고행의 길이다. 하지만 1등할 욕심만 없다면 대략 5개월 정도의 시간 투자만으로 누구나 트레일 레이스에서 제한 시간 안에 완주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당근, 선두권에서 순위를 다툴 정도의 기량을 원한다면 좀더 많은 훈련과 철저한 자기 관리가 필요하다. 하지만 일반적인 아마추어에게 있어 대회는 여행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면 편안한 마음이 될 수 있다. 남의 도움 없이 오로지 자신의 두발로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먼 거리를 여행 할 수 있다는 즐거움은 대 자연과 친구가 되는 낭만적인 일상탈출이다.

나의 트레일 레이스 여행은 이제부터 시작이다. 나와 같이 앞으로도 많은 이들이 자유를 찾아 떠나는 즐거움에 도전하기 바란다. 사막의 아들 from Tokyo

▲ 환상적인 코스의 수가다이라 트레일 레이스 ⓒ 유지성



트레일 레이스의 묘미는? 알코올 로딩

달리는 사람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 두 가지 유형은 마라톤이건 오지레이스건, 트레일 레이스건 어느 정도 비슷하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유형을 정리하자면, 나와 상관없는 Serious runner(시리어스 러너)와 내가 항상 추구하는 tourist(투어리스트)다.

먼저, Serious runner는 정말 정말 열심히 그리고 미친 듯이 달린다. 나도 달리기를 하는 입장이지만 가끔은 저 사람들은 왜 저렇게 달리는지 이해가 안 갈 때도 있다. 그에 비해서 tourist는 제한시간을 최대한 이용하여 틈나면 먹고 사진 찍고 풍경 감상 하며 자투리 시간을 이용한 잠자기 등의 휴식과 에너지 보충을 통해 경쟁과 기록 보다는 즐겁고 안전한 완주를 우선시 한다.

나의 경우 처음 시작이 사하라 사막을 달리는 대회였기에 기록보다는 완주가 목표인 철저한 tourist가 되었고, 그것이 나의 스타일로 정착이 되었다.

물론 나도 여러 가지 종류의 대회 참가를 많이 해보면서 기록이나 순위에 욕심이 생길 수도 있었겠지만, 다행히 아직까지 우승을 해보겠다는 욕구와 충동이 생기지 않고 있으며, 뭐, 앞으로도 커다란 변화 없이 이대로 흘러 갈 것 같다.

▲ 투어리스트 버전 ⓒ 유지성




그건 그렇고 이제 대회 참가로 돌아가서, 이번 ‘수가다이라 트레일 레이스’는 일본 사막 레이스 친구들과 한국 사막 레이스 팀이 처음으로 함께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나의 경우, 일본을 자주 가는 편이라 그 동안 꾸준하게 일본 친구들과 함께 광란(?)의 시간을 보냈지만, 함께 동행한 2명은 작년 고비사막 레이스 이후 처음으로 만나기에 반가움이 더해졌다.

그 만남의 반가움을 극대화 시키기 위한 우리들만의 파티는 도착한 첫날부터 시작되었다. 도쿄에서 제일 신선하고 맛있는 회를 먹을 수 있다는 ‘긴자’의 한 횟집부터 출발한 우리의 음주와 가무는 대회 바로 전까지 이어져, 출발 시간을 코 앞에 둔 새벽까지 한국식 폭탄주의 대책 없는 융단 폭격이 계속됐다.

보통 달리기 대회를 앞두고는 워터 로딩이라 하여 체내에 수분을 축척 시키는 이상한 작업을 한다. 워터 로딩은 대회 전날 또는 그 이전부터 시간 날 때마다 수시로 물을 마셔 대회에서 소진될 수분을 미리 보충하는 일이다. 격렬한 운동은 그 만큼 몸 안의 수분을 고갈시켜 탈수를 일으키게 된다. 그 사전 방지 장치가 워터 로딩인데, 우리는 대회 전 3일 동안 알코올 섭취에 정신이 없었으니 이건 완전 무개념에 대책 없는 사이비 대회 참가자들이다. 그러니까 소위 말하는 워터로딩 대신 ‘알코올 로딩’, 즉 우리는 음주 운전을 한 것이다.

▲ 수가다이라 전경 ⓒ 유지성



긴장감 가득 대회 전야, 하지만...

일본의 지방 대회들은 도쿄 및 오사카 같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대부분 왕복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하지만 비싼 물가를 자랑하는 일본답게 1인당 요금이 보통 우리 돈으로 10~15만원 정도 한다. 한국 대회에서 운영하는 셔틀버스에 비하면 기본적으로 3~4배 비싼 수준이다. 소득이 높다는 일본도 개인으로서는 부담스러운지라 인원이 여럿이면 카풀을 이용해 단체로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다 함께 소풍 가는 즐거운 기분으로 셔틀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물론 버스 안에서도 우리들의 손에는 접착제로 발라 논 것 같이 항상 맥주 캔이 붙어 있었다.

처음 가보는 수가다이라. 수가다이라는 도쿄에서 고속버스로 약 3시간 동안 열심히 달리니 나타난 나가노현 초입에 있는 좌 비탈, 우비탈의 스키장과 온천으로 도배질된 환상의 동네다. 저 멀리 눈과 구름으로 뒤 덮인 일본 알프스가 보이는 자연 경관이 뛰어난 곳으로, 2004년 그리스 아테네 올림픽 여자 마라톤 금메달 리스트 ‘노구치 미즈키’의 전지 훈련 장소가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여기를 보나 저기를 보나 어디를 봐도 스키장이 지천에 널려있는 기본적으로 해발 1000m를 훌쩍 넘기는 고산지대이다.

일본 트레일 레이스는 대회 전날에 선수 등록을 마쳐야 하며, 주최측에서 준비한 코스 브리핑, 초청 선수 인터뷰 및 미팅 시간에 참가하는 일정으로 짜여있다. 출발 지점 인근에서는 소규모 용품 전시회가 열려 쇼핑 및 참관이 가능하다.

몇 시간의 사전 행사 시간이 후다닥 지나고 보니 어느덧 땅거미가 지는 저녁을 만났다. 그런데 이곳의 날씨, 뭔가 예사롭지 않다. 도쿄에서는 약간 덥다라는 느낌이었는데 이곳은 고산지대 특유의 바람이 몰아쳐 상당히 추웠다.

▲ 대회등록 ⓒ 유지성

▲ 코스브리핑 시간 ⓒ 유지성



▲ 용품 전시회 ⓒ 유지성




내일 대회 때 얼마나 추울지 불안하다. 괜시리 코스 브리핑 시간에 마지막 구간이 변경된 이유를 설명한 기억이 다시금 떠오른다. 며칠 전 비와 눈이 동반된 폭우가 마지막 코스 구간에 집중적으로 내렸단다. 그 후유증으로 최근의 코스답사에서까지 내리막 구역은 온통 진흙 밭 그 자체라고 한다. 그래서 안전사고를 대비해 어제 최종적으로 마지막 급경사 구간 약 3km를 완만한 경사 코스로 돌리는 작업을 마쳤다고 설명했다.

덕분에 진흙 밭에서 미끄러져 넘어지고 구를 걱정은 없어져서 다행이다. 하지만 날씨가 얼마나 추우면 눈이 내릴까라는 또 다른 걱정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사실 진흙 밭과 관련해서 나에게는 고약한 추억이 두 개 있다. 올해 2월에 참가한 베트남 정글, 산악 레이스와 6월의 노조리코 트레일 레이스. 베트남에서는 대회 내내 비속의 사투를 벌여야만 했는데, 폭우로 인해 길이 꾾겨 코스가 없어지고, 잠은 물속, 코스는 온통 진흙 밭이라 내리막은 굴러서 내려오는 게 일과였다.

노조리코 대회도 만만치 않은 지옥이었는데, 입산 통제가 될 정도의 폭우 속에 갇혀 뒹굴다 시간 보냈었다. 이전 두 개 대회에서 진흙 밭을 수도 없이 굴러봐 그 고통과 끔찍함의 진한 맛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주최측의 현명한 판단으로 그 난장판을 면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 베트남 레이스 사진 ⓒ 유지성



아무래도 대회 전날은 무언의 긴장감이 사람들과 동네 전체에 흐르고 넘친다. 그러다 보니 너무 민감한 사람들은 경기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긴장감이 심해져 막상 본 시합에선 제대로 된 실력 발휘를 못하는 일이 종종 발생된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긴장감을 풀고자 여러 가지 자신만의 비법을 동원해 최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자 한다. 우리들도 긴장감을 풀고 완주를 위한 격려의 시간을 갖고자 이제는 생활이 되어버린 음주와 가무의 시간으로 또 다시 빠져들었다. 오고 가는 맥주와 양주 속에 싹 트는 우정. 아무리 생각해도 모두 미친 것 같다…

▲ 므흣. 일본 언니들과의 알콜 로딩 ⓒ 유지성

덧붙이는 글 사막의 아들 유지성 / www.runxrun.com
사막, 트레일 레이스 및 오지 레이스 전문가. 칼럼니스트, 사하라, 고비, 아타카마 사막, 남극 레이스, 히말라야, 아마존 정글 마라톤, Rock and Ice 울트라 등의 한국 에이전트이며, 국내 유일의 어드벤처 레이스 기획자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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