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의 빛 바랜 사진을 복원했습니다
꿈에서만 그리던 부모님의 모습, 다시 만나게 돼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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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의 오래된 사진이 모두 빛 바래 사진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하게 된 것이 안타까워 스캔 작업으로 복원했다. ⓒ 윤도균
▲ 부모님 생존하셨을 때 두 분이 함께 찍은 딱 한 장의 사진입니다. ⓒ 윤도균
어머니와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처럼 일상적인 대화만 몇 마디 나누다 보면, 그새 잠에서 깬다. 비몽사몽간에 다시 눈을 감고 꿈속에서 뵌 부모님 모습을 상상해 보지만 쉬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럴 때면 마음 한 켠이 텅빈 것처럼 허전하고 안타깝다. 사진이라도 한 장 있으면 좀 덜 서운하고 덜 그리우련만, 문갑 속에 깊이 처박아둔 몇 권의 빛 바랜 사진첩을 뒤져봐도 부모님 사진을 찾을 수가 없다.
그럴 때마다 난 '내가 이러고도 부모님을 그리워할 자격이 있는 놈일까'라고 자책한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때 손에서 카메라를 놓지 않았던 나였건만, 왜 부모님 모습은 단 한 컷도 카메라에 담지 않았는지….
지난 설 명절을 며칠 앞둔 어느날, 그렇게 반성에 반성을 거듭하며 문갑 속 흑백앨범을 보다 문득 '대부분 사진들이 30~40여년 지나 이대로 뒀다간 얼마 안 돼 그나마 보관하고 있는 사진들도 모두 폐기해야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 늦기 전에 이 사진들만이라도 스캔작업으로 복원해 우리 가족 인터넷 카페에 올려놔야 겠다고 생각하곤 실행에 옮겼다. 그렇게 작업을 하던 중 형이 부모님 사진을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큰형수에게 전화를 했다.
"형수님, 혹시 형님 댁에 부모님 흑백사진이나 가족들 오래된 사진들이 남아 있는 것 있어요?"
"아마 몇 십 장은 있을 거예요."
"형수님 바쁘시지만 그 옛날 흑백 사진들 좀 챙겨 두셨다가 이번 설 명절 때 제가 달라면 주세요. 제가 부모님 사진과 가족들 빛 바랜 오래된 사진들을 스캔작업으로 복원한 뒤에 돌려드리겠습니다."
▲ 아버지 사진을 아무리 찾아 보아도 아버지의 독사진은 딱 이 사진 한 장 뿐이다. 비록 사진은 빛바래고 볼품이 없지만 우리 자식들에겐 그 어떤 작품 사진 못지않게 중요하다. ⓒ 윤도균
집으로 돌아와 빛이 바랜 부모님과 가족사진을 일일이 스캔해 복원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작업을 진행하며, '왜 진작 포토샵을 배우지 않았을까'라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랬으면 부모님의 빛 바랜 사진을 좀 더 원형에 가깝게 복원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나름대로 정성을 다해 사진 복원을 모두 마쳤다. 그리고 우리 가족 인터넷 카페에 포토앨범으로 편집해 올려놓았다. 이렇게 올려 놓으면, 그동안 나 못지 않게 늘 부모님을 그리워하던 우리 형제·자매들과 뿔뿔히 흩어져 살고 있는 조카들도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사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부모님 사진 복원 기념으로 하늘에 계신 어머니와 아버지께 편지를 써본다.
아버지·어머니!
우리 가정은 두 분께서 돌아가신 후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첫째는 자식들이 모두 고향을 떠나 객지에서 생활한다는 것입니다. 또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우리 가족이 피난 나와 살던 제2고향마을(지금의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법흥리) 우리집 밭 한편에 묘를 모셨습니다.
그 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를 아버지 곁에 합장이 아닌 분묘로 모셨습니다. 그러다 우리가 살던 고향마을 전체가 통일동산 조성계획으로 개발 대상이 되어 부득이 아버지 어머니의 묘소를 다시 아버지의 본 고향이신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용산동 선영 양지바른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곳엔 우리가족 납골묘(48기용)도 조성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고향 종중산 이 골짝 저 골짝에 산재되어 매장으로 모셨던 조상님들의 묘를 모두 개장 후 화장한 뒤 우리가족 납골 묘에 합동 안장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6대조 할아버지부터 아버지, 어머니, 큰형님, 작은형님을 포함, 13분의 납골이 한 곳에 모셔져 있습니다.
▲ 아마도 아버지 고희 때 방문하신 가족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은 것 같다. ⓒ 윤도균
우리 가족납골묘를 조성하는 현장을 지켜보시던 고향 어르신들 그리고 인근 주민들은 우리 형제들이 추진하는 납골 묘 조성 과정을 일일이 지켜보시면서 어떤 분은 격려를, 어떤 분은 '조상 묘는 함부로 건드리는 것이 아니'라는 충고를 해주셨습니다.
하지만 우리 형제들은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한결같은 뜻으로 우리 가문 합장납골묘(48기용)를 조성했습니다. 그 후 돌아가신 두 분 형님들도 부모님 곁에 모셨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그동안 고향 선산 이 골짝 저 골짝 곳곳에 산재돼 있던 조상님들의 묘소 관리가 사실상 쉽지 않았는데, 지금은 매년 (설명절, 추석, 한식 춘향제, 벌초, 기일) 때면 늘 온 가족이 납골 묘를 찾아 부모님과 조상님들께 성묘를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어머니.
오늘 두 분의 생존하셨을 때 찍은 빛 바랜 사진들을 다시 복원해 먼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우리 가족들이 쉽게 볼 수 있도록 해놓았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이젠 하늘나라에 두 분 더욱 다정다감하신 모습으로 고이 잠드소…. 아버지 어머니의 자식 됨을 거듭 거듭 기쁘게 행복하게 생각을 합니다. 아버지·어머니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 현재 모두 13분의 납골이 안장된 우리가족 납골묘이다. ⓒ 윤도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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