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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 함께 푸는 실타래

무병장수를 비는 마음으로 실패를 감다

등록|2009.01.30 10:35 수정|2009.01.30 10:35
"저기 먹꼬? 실타래 아이가?"

컴퓨터 위에 올려 놓은 실타래를 발견하신 어머니가 반색을 하신다. 요즘 실들은 나일론 실이거나 명주실이라서 바늘귀에 꿰려고 실 끝을 손가락으로 부비면 끝이 더 풀어져서 꿸수가 없다며 투덜대던 어머니셨다.

"인저 바.(이리 줘 봐.)"
어머니는 굼실굼실 일어 나셨다.
"무명실이라야 춤(침)을 발라 사악 비비면 바늘 실 꿰기 좋지."

실타래두 발에 실타래를 걸고 흐뭇해 하시는 어머니 ⓒ 전희식


내가 내려 드린 무명실타래를 만지작거리며 어머니는 흐뭇해 하신다. 곧장 두 발에 실타래를 걸고 실 끝을 찾기 시작하셨다.

"바깥 실부텀 풀어야 돼야. 안에 실 붙잡고 풀믄 자꾸 홀치는기라."

실타래를 털털 털어 가지런히 하시더니 금세 바깥 실 끝을 찾아내셨다. 신문 한 장을 돌돌 말더니 실패대도 만드셨다. 실패를 왼손에 쥐고는 익숙한 솜씨로 8자 모양으로 태극을 그리며 실를 감기 시작하셨다. 이보다 더 한 치매 치유는 없다는 걸 안다. 평생 익숙했던 물건을 들고 뭔가 생산적인 일을 한다는 것이.

문제는 실타래가 팽팽하도록 두 다리를 쫙 벌려야 하는데 근력이 없으신 어머니 두 다리가 자꾸만 오그라 들어서 실타래가 축축 처지는 것이었다. 나는 슬며시 닥아앉아 모른 척 하고 한마디 끼어 들었다.

"어무이. 옛날에는 다 이렇게 다리에다 걸고 실타래 풀었어요?"
"아이라(아니다). 아아들이(애들이) 서로 요-리 조-리 두 손으로 벌리고 잡아 줬지."
"왜요?"
"실타래 잡아 주믄 홍시도 항개 주고 곶감도 항 개 주고 그랙꺼등(그랬거든)."
"어무이 저 한테도 곶감 항 개 줄래요?"
"곶감 오댄노(어디있냐)?"

실패감기내가 실패를 감고 어머니는 팽팽하게 실타래를 당겨 잡으셨다. ⓒ 전희식


어머니는 나 줄 한 개의 곶감이 없어선지 실타래를 잡으라 하지 않으셨다. 대신 실패를 내게 건네셨다. 그리고는 한쪽 발에 걸린 실타래를 벗겨서는 손으로 잡아당겨 팽팽하게 만드셨다. 나는 눈치를 채고 실패를 감기 시작했다. 곧 이어 옛날 상황으로 되돌아갔다. 그때 그 시절처럼 내가 실타래를 양 손에 활짝 걸치고 어머니가 실패를 감았다.

그랬더니 어머니 입에서 솔솔 실타래 풀리듯 옛날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명주실 잣던 이야기, 뽕 따서 누에 치던 이야기, 목화 심어서 미영실 뽑던 이야기 등.

실 감기옛날 방식 그대로 재현했다. ⓒ 전희식


아뿔싸.
'새노디끌'(고향동네 작은 냇가 구석진 빨래터) 삐뚜름한 바위에서 한 겨울 손빨래 하던 얘기 끝에 숨겨진 이야기 하나가 터져 나왔다.

"물 건너 홀애비 *** 놈 그놈. 빨래터에서 **댁을 옷도 다 안 벗기고 쑤셔가지고는 머시마 놔 갖고 다 키워 농게 지 새끼라고 빼뜨라 안 갔나."

나는 급히 공책에 연필을 들고 야금야금 어머니의 기억을 쫒아 들어갔다. 50~60년 전의 조선 땅 산골마을 비경 속으로.
덧붙이는 글 용산참사로 숨진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촛불집회에 참석하지 못해 늘 안타깝습니다. 내가 쓰는 이따위 글이 무슨 소용인가. 사람이 도축장 개 돼지만도 여겨지지 않는데 싶어서입니다. 한 켠에서 노골적으로 용산참사를 당연시하는 풍조가 있어 보여 더 마음이 아픕니다. 죽음의 기운, 어둠의 시대를 넘어 서는 날이 곧 닥아 오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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