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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모악 갤러리, 김영갑 그 사람

등록|2009.01.30 15:48 수정|2009.01.30 15:48
제주공항을 나섰을 때 맨 처음 우리를 환영해 준 것은 몸뚱이를 통째로 날려버릴 것만 같은 매서운 강풍이었다. 돌, 바람, 여자. 제주를 상징하는 3다에서 대충 존재가 희미해진 돌과 여자 빼고 마치 “바람이란 이런 것이니라” 진수를 보여주는 퍼포먼스 같았다.

제주를 생각할 때마다 우선순위에서 마음을 끌었던 ‘두모악 갤러리’ 그동안 가슴에 꿍쳐 두었던 두모악 ‘김영갑’ 그 사람을 만나러 발길을 서둘렀다.

언제쯤이었을까? 사진에 별 관심도 없었을 때였는데도 제주 산간에 매료된 육지 사람이 아예 제주에 눌러앉아 제주 사계를 담다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단신이 이상하게 잊혀지질 않았다.

▲ 김영갑의 두모악 갤러리 ⓒ 조명자


단지 제주를 사랑하다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난 사진작가라는 것만 알다가 인터넷 서핑을 통해 그 사람 이름이 ‘김영갑’이며 유작을 모아 둔 갤러리가 서귀포시 성산읍 삼달리에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묻고 묻는 대신 두부 모 크기만 한 ‘네비’라는 신통한 놈이 가르쳐 준대로 갤러리 주차장까지는 잘 왔다만 입구를 찾는 데는 허둥지둥했다. 마치 숨겨진 비밀의 정원인양 60년 세월을 허옇게 머리에 인 육지 ‘하르방’과 쪼글쪼글 쉰일곱 세월을 입가에 부어 담은 ‘할망’의 정신을 빼놓은 두모악 얕은 돌담. 그 돌담 곁 소담스런 수선화의 함박웃음이 마냥 흐드러졌다.

▲ 두모악 앞마당, 얕으막한 돌담 아래 함박웃음을 머금은 수선화 ⓒ 조명자


사진 특히 풍경사진을 떠올릴 때면 어김없이 달력이 생각난다. 풍경사진에 대한 내 고정관념이 그러했듯이 “풍경을 찍은 사진이 뭐 거기서 거기겠지”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라면 김영갑의 두모악 갤러리를 가보라.

차가운 렌즈를 통해 엿본 평면의 종이쪽에 수많은 사연과 세월의 편린, 삶의 철학까지 담아낼 수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김영갑은 그런 사람이었다. 제주에 흩어진 돌덩이, 억새, 바람과 구름, 오름을 통해 세상에 불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깨쳐줬다.

▲ 두모악의 토우들 ⓒ 조명자


무상(無常), 제행무상(諸行無常) 절집에 드나들기 시작하면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던 말씀이다. 우주의 모든 사물은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평범한 진리가 지금처럼 정신이 번쩍 들게 파고 든 적은 없었다.

아스라한 파노라마 영상으로 그 자리의 억새밭이, 물빛이, 구름이 시시각각 어떻게 변해 가는지. 햇빛 창창한 맑은 날, 바람 부는 날, 습한 날. 안개, 바람, 눈비에 젖은 자연까지 김영갑은 그때그때의 순간을 숨 막히게 선사하고 있었다.

제주의 바람에 온 몸을 내맡긴 도라지 꽃밭의 광란의 춤판을 본 적이 있는가? 끝없는 억새구릉이 황혼에 붉게 물들어 또는 바람에 휩쓸려 스러져가는 정경. 한 장의 사진 앞에 느낄 수 있는 감동은 젊은 가슴, 늙은 가슴이 따로 없었다.

▲ 삼달리, 어느 농가 돌담 아래 핀 들국화 ⓒ 조명자


설날을 이틀 앞둔 갤러리 풍경은 고즈넉했다. 관람객으론 모자와 배낭으로 중무장한 차림이 아마도 요즘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제주 올레 순례꾼 아닌가 싶은 젊은이 둘과 우리 네 식구가 전부였다.

57년 부여에서 태어나 손재주 여문 자신의 적성이 인문계보다는 공고에 맞을 것 같아 진학한 공고 졸업이 학력의 전부인 사람. 월남 파병에서 돌아온 형님이 갖고 온 카메라에 빠져 대학은 사진학부를 가고 싶었으나 전공 교수들을 보고 대학진학을 포기했다는 당돌한 청년.

아마도 김영갑은 여드름 송송 날 때부터 평범함을 거부한 되바라진 아이였던 것 같다. 그런 오기와 직심이 있었기에 모범답안을 무시하고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고집스럽게 천착해 빼어난 작품성을 독자적으로 이뤄낼 수 있었을 것이고 남들 다 하는 안락한 결혼생활을 포기하면서까지 20여년 긴긴 세월을 추위와 배고픔을 견뎌가며 제주의 오름과 들판을 누빌 수 있었을 것이다.

‘소탐대실’에 집착하다 번번이 좋은 꼴 못 본 나다. 이번에도 역시나, 3000원 곱하기 4. 만 이천 원이 못내 아까워 “뭔 관람료가 이리도 비싸냐?”고 구시렁거리며 들어섰는데 웬걸. 감동에 못 이겨 김영갑의 일생이 진솔하게 그려진 수필집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책값 만 삼천 원을 더 그으면서도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그 책에 이렇게 쓰여 있다.

“내가 사진에 붙잡아두려는 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있는 그대로의 풍경이 아니다. 시시각각 변하는 들판의 빛과 바람, 구름, 비, 안개이다. 최고로 황홀한 순간은 순간에 사라지고 만다.”

근육이 소실되는 루게릭이란 불치병을 앓으면서 김영갑은 한탄했다.

“나는 먹을 복이 없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이제는 먹을 수가 없다. 섬에서 사는 동안 끼니 문제는 나를 내내 괴롭혔다. 건강할 땐 없어서 못 먹었고 지금은 있어도 먹지 못 한다….”

2005년, 그가 그토록 사랑한 제주 땅 그것도 한라산의 옛 이름을 딴 두모악 갤러리 뒷마당 감나무 밑에 한줌 재로 돌아갔다는 김영갑의 영혼. 그 영혼에 평화와 안식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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