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일하라는 기별이 이렇게 설렐 줄이야

땀을 흘려야 돈을 벌지

등록|2009.01.30 16:40 수정|2009.01.30 20:22

▲ 아흐마 솔레 ⓒ 고기복


요즘 아흐마 솔레(Ahma Sole·27)는 시간이 너무 더디 간다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런지 회사에 들고 갈 가방을 하루에도 몇 번씩 들쳐보며 싱글벙글입니다. 설을 며칠 앞두고 회사로부터 2월부터 일을 시작하라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아흐마는 작년 10월 외국인고용허가제로 입국하여 국내 적응훈련을 마치고 경기도 안성에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에 배정을 받았었습니다. 하지만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복막염으로 수술을 받아야 했고, 이어진 40일 동안의 입원 치료와 회복을 위해 요양을 해야 했습니다. 요양 기간 동안 회사측으로부터 경기가 좋지 않아 '회사 복귀를 장담할 수 없다'고 들어왔던 터라, 일하라는 기별이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습니다.

사실 아흐마는 일을 시작한다고 해도 앞으로 반 년 가까이 돈을 구경하기가 쉽지 않을 거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퇴원할 때 500만원이 넘는 병원비를 회사에서 내줬기 때문에, 경기가 좋지 않아 잔업이 없는 지금 그 돈을 갚으려면 앞으로 몇 달을 일해야 갚을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시작하게 된 아흐마는 요즘 기가 살았습니다. 오늘은 도금 공장에서 일하다가 피부염으로 그만두고 다른 일자리를 찾고 있던 친구 수겅(Sugeng)이 천일염 포장 공장에 하루 갔다가 온 것을 두고 이렇게 타박을 하더군요.

"땀을 흘려야 돈을 벌지."
"아이고, 니가 일해 봐라, 하루 종일 삽질이 쉬운가"
"나도 말레이시아에서 이 일 저 일 다 해 봤어. 하루 일하고 나온 적은 없다고."

아흐마는 아마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는지 모릅니다. "돈 벌기가 그렇게 쉽냐. 하루 일하고 그만두게. 아직 덜 배고프지?"

그런 아흐마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왔습니다.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수술 경과가 좋지 않아 생사를 가늠하지 못했었고, 퇴원 이후에도 뼈만 앙상하게 남아 어깨를 잡으면 통증을 느낀다고 했던 사람의 입에서 그런 농담이 나올 거라고 상상이나 했겠습니까?

그러고 보니, 퇴원 당시의 사진과 비교해 보니 볼 살이 참 많이 붙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퇴원 당시에는 너무 야위어서 회사에서 당장 일하라고 해도 탈이 날 것 같을 정도로 보기에도 안쓰러웠었는데, 지금은 마른 체형이라고 하지만, 눈빛도 반짝반짝하고 생기가 도는 게, 일을 한다는 사실에 불안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니 여간 다행이 아닙니다.

아흐마는 쉼터에서 생활하는 동안 직장이 없어 귀국하거나 귀국을 결심한 사람들을 여럿 만났습니다. 골프장에서 잔디 관리와 풀 베는 작업을 하던 중국 출신 이씨, 고용허가제로 들어 와 두 달 넘게 월급을 못 받고 귀국을 결심한 캄보디아인, 삼년간 일했지만 회사에서 감원하며 재계약을 하지 못해 귀국한 인도네시아인 나나 등등. 그런 이들을 보며 아흐마는 실직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었고, 자신 역시 일 한 번 제대로 못해 보고, 빚만 지고 귀국해야 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해야 했었습니다.

그런 그가 이제 각오를 다부지게 하나 봅니다. 땀 흘릴 각오를. 지금 그 각오가 변치 않기를 바라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