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대변인의 굴욕... "내가 오버했다"
오전 청와대 "정치인 입각없다"더니... 오후 한나라당 '이달곤 의원 내정' 발설
▲ 행정안전부 장관에 내정된 이달곤 한나라당 의원이 30일 국회에서 열린 중점처리법안 설명회에서 동료의원들의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 남소연
정작 '입각 해결사'는 청와대가 아니라 여당이었다.
박 대표가 내정 사실을 발설하자, 이 대변인은 오후 브리핑에서 "제가 오버했던 것 같다"고 실수를 자인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를 속인 '양치기 소년'이 됐다"고 비꼬고 있다.
박희태 대표의 '발설'... "청와대 요청으로 이달곤 의원 추천"
박 대표는 이날 오후 1시 30분께 국회 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당에서 행정안전부 장관 후임에 이달곤 의원을 추천했다"며 "훌륭한 인품과 지방행정의 전문성 등을 참각해 조금 전에 청와대 건의했다"고 전했다.
박 대표는 "(당이) 최종적인 결정권자는 아니지만 (이 의원이) 대통령으로부터 장관 임명을 받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이제서야 답을 하게 돼 죄송스럽다"고 말했다.
이는 사실상 이달곤 의원이 행정안전부장관에 내정됐음을 확인해주는 발언이다. 이후 청와대도 이 의원의 내정 사실을 시인했다.
행정안전부장관으로 내정된 이달곤(56) 의원은 동아고와 서울대 공대를 졸업하고 미 하버드대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지방행정연구원장, 서울대 행정대학원장, 한국행정학회·협상학회 회장을 거쳐 지난해 대통령직 인수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런데 이동관 대변인은 "솔직히 결정의 흐름이 좀 빨라졌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며 이 의원의 내정이 갑작스럽게 결정된 일이라는 뉘앙스를 보였다.
하지만 박 대표의 설명은 이 대변인과 많이 달랐다. 박 대표는 "며칠 전부터 깊이 논의했다"며 "(청와대와) 계속 교감하면서 몇몇 분들 중에서 당이 선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청와대가) 행정안전부장관 후보로 여러 사람을 물색한 것 같은데 잘 안되고 시간이 가니까 최종적으로 당에서 논의해서 결정했으면 좋겠다고 의논이 돼서 당에서 결정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즉 청와대가 당에 '입각할 정치인'을 추천하라고 요청했다는 얘기다. 이는 청와대가 정치인 입각을 며칠 전부터 검토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4시간여 만에 '양치기 소년' 되다... "내가 오버한 것 같다"
▲ 이달곤 의원 행정안전부장관 내정과 관련 곤욕을 치른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 사진은 지난 19일 오후 춘추관에서 개각내용을 발표하는 이동관 대변인. ⓒ 연합뉴스 조보희
그런데도 이동관 대변인은 이날 오전 9시 20분께 기자실을 찾아와 "여러 차례 결정된 것이 없다고 말씀드렸는데도 자천타천형 기사가 난무하고 있어 정리를 해드리는 게 좋겠다"며 이렇게 말했다.
"이번에는 정치인 입각은 없다. 지난번 박희태 대표와 만날 때 이번에는 개각폭도 적고 지금 경제부처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을 이미 밝히신 바가 있다. 물론 행정안전부장관 인사가 다시 유턴하는 바람에 그런 의견개진도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어쨌건 현재로서는 그 원칙과 방침에 변함이 없다는 점을 거듭 밝힌다."
단호한 어투였다. 하지만 박 대표의 '발설'로 인해 이 대변인은 4시간여 만에 '양치기 소년'이 되는 굴욕을 당해야 했다.
이 대변인은 이와 관련 "어디 보니 (내가) 허언했다고 비판했는데 비판한다면 겸허히 받겠다"며 "본뜻은 그런 게 아니었으니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또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말한 것과 관련) 내가 오버한 것 같다"고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이 대변인은 "솔직히 말하면 오전까지 (김무성 의원 등 박근혜계) 특정 인물을 두고 혼선이 계속돼서 '정치인 입각은 없다'고 얘기한 것"이라며 "국회의원 신분을 갖고 있지만 당내 최고의 행정전문가의 성격이 강하다"고 해명했다.
'이달곤 내정자가 행정전문가이지 정치인은 아니다'라는 변명인데, 이는 '눈가리고 아웅하기'에 불과하다.
특히 이 대변인은 '박 대표가 행정안전부장관의 내정 사실을 발표한 것은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그 의미는 설명 안해도 다 알텐데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쓰면 되는 것 아니냐"고 우회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이 대변인은 '어떻게 장관 내정자를 당에서 발표하나, 앞으로도 그럴 수 있나'라는 추가 질문에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니까…"라고 말을 얼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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