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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늘껍질 벗기고 갈기, 정말 힘드네

마늘 간 다음날 입술이 부르트다

등록|2009.01.31 14:55 수정|2009.01.31 14:55

빤 마늘.. ⓒ 정현순


"너 마늘 빻은 거 없으면 이거 몇 개 가지고 가."
"아직 남아 있어. 떨어지면 가지고 갈게. 그런데 웬 마늘이 이렇게 많아?"
"이거 말고 저쪽 냉동실에 10개는 더 있다." 
"그렇게나 많아?"

딸아이는 냉동실에 있는 마늘을 확인한다. 그렇게 설 명절 3일 전에 마늘껍질 벗기고 기계에 가느라 정신이 없었다.

▲ 새싹이 나오는 마늘 ⓒ 정현순


지난 해에 마늘을 두 군데 심었는데 한 군데에 심은 마늘은 몽땅 도둑 맞았다. 다행히 다른 곳에 있는 마늘밭은 그대로 남아있었다. 한곳은 사람들이 운동을 하러 자주 왕래가 있는 곳이고 다른 곳은 인적이 드문 곳이라 그런가 보다. 한군데에서 수확한 마늘은 정말 많았다. 남편이 농사에 소질이 있다는것을 마늘농사를 지은 것을 보고 더 확실히 알게 되었다.

상상 외로 마늘농사가 잘 되어 형제들과 딸아이한테도 넉넉히 나누어 주었다. 마늘을 그렇게 푸짐하게 주고 나니 모두들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는 우리 부부의 마음은 그들보다  더 좋았다.

어쨌든 그렇게 풍년이 든 마늘을 김장 때에도 넉넉히 넣어서 김치가 맛있다고 할 정도다. 김장을 끝내고 나머지 마늘을 깐다는 것이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설 명절을 남겨놓은 일주일 전쯤이가? 베란다에 보관되어 있는 마늘을 보니 새싹이 거의 나있었다.

▲ 껍질 벗긴 마늘 ⓒ 정현순


▲ 새싹이 예쁜 마늘 ⓒ 정현순


어느것은 너무 길어 마늘을 휘휘 감고 있기도 했다. 하여 예쁘게 새싹이 난 것은 물컵에 화초처럼 담가 놓으니 마치 난처럼 쭉쭉 위로 올라가고 있다. 그런 반면 싹이 난 마늘은 머지 않아 썩는다는 신호를 보내는듯 했다.

시간이 나는 대로 마늘껍질을 벗겼지만  끝이 보이려면 멀기만 했다. 아예 다른 일은 뒤로 미루고 본격적으로 마늘껍질을 벗겼다. 명절 안에 모두 끝낼 생각으로. 아침저녁으로 껍질을 벗기니 조금씩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문제는 마늘을 빻는 것이었다. 집에 있는 카터기로는 어림도 없었다. 아는 놈이 도둑질 한다는 말이 정말 맞다. 언젠가 바쁜 올케가 마늘을 갈아 달라면서 마늘 가는 기계를 내놓은 기억이 난 것이다. 올케네에서 본 마늘 가는 기계를 빌려왔다.

▲ 마늘빻기 ⓒ 정현순


마늘.. ⓒ 정현순


드디어 마늘을 다 갈았다. 그리고 비닐팩에 꺼내 먹기 좋게 담았다. 무려 20개가 되었다. 어쩌면 올 김장도 이번에 간 마늘로 해야 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어쨌든 냉동실에 마늘이 많아서 아끼지 말고 듬뿍듬뿍 넣어서 먹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을 뿐이다. 힘은 들었지만 마무리가 잘된 마늘을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편한 마음으로 잠을 자고 다음날이었다. 괜스레 윗입술이 열이 나면서 부풀어 오르는듯 했다. 난 그때까지도 그것이 입술이 부르트는 신호라는 것을 전혀 짐작도 하지 못했다. 다음날 오후가 되니깐 윗입술에 물집같은 것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입술 반 정도가 부르트고 말았다. 물론 마늘 사건 때문에 입술이 부르튼 것은 아닐 것이다.

여러 가지 일이 겹쳐서 생긴 일이지만 결정적인 것은 마늘 때문인 것이 분명했다. 그 전날 하루 종일 서서 마늘을 갈거나, 갈아야 할 마늘이 떨어지면 마늘 껍질을 벗겼으니. 하지만 마늘 껍질을 벗기는 것을 남편도 도와 주었으니 더이상  할 말은 없었다. 남편이 부르튼 내 입술을 보고 어이없는 웃음을 웃는다. 10일이 지났지만 아직도 부르튼 입술이 불편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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