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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마야 유적을 향해 정글을 가른 자전거

[자전거 세계일주 92] 멕시코 팔렝케(Palenque)

등록|2009.02.06 09:26 수정|2009.02.06 09:26

정글로 전진!마야 유적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 문종성


온 몸이 땀에 젖어든다. 하나로 나 있는 길은 자꾸만 더 깊은 녹음지대로 빨려간다. 두 바퀴가 가르는 길을 헤칠수록 시간은 뒤로 거슬러 간다. 언덕 오르는 길에 소매로 땀을 훔치고, 거친 숨을 뱉는 틈에 살짝 곁눈질을 해보니 온통 초록의 향연으로 물든 대지가 눈앞에 펼쳐진다. 저 멀리에는 푸른 물이라는 뜻의 ‘아구아 아술(Agua Azul)’이 언뜻 보이는 듯하다. 당장 뛰어 들어가 멱이라도 감고 싶지만 오랜 기간 폭포에 침식된 깊은 웅덩이에서 소용돌이치는 물이라 대단히 위험하다. 사실 잔잔하다 해도 이 몸 속절없이 ‘꼬로락’ 침잠하는 맥주병이라 할 말 없지만.

국립공원 입장료와 유적지 입장료를 상냥한 심술로 따로 징수하는 통에 그렇지 않아도 불난 아스팔트 길 위에 서 있는 내 속은 열불이 나 온몸이 타들어간다. 당연히 마야 유적을 보러 가려는 이들에게 국립공원 입장이란 명목으로 더블 징수를 감행하다니. 그저 여행자가 ‘봉’이다.

▲ 팔렝케 전경. ⓒ 문종성


‘울타리로 둘러싸인 성채’ 팔렝케(Palenque) 때문이다. 내 땀과 두 번의 입장료의 대가로 달려간 그 곳. B.C 300년 경 군락이 형성되어 7세기 파칼 왕에 이르러 전성기를 구가했던 정글의 도시 팔렝케. 마야문명의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는 이 신전을 보기 위해 나는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려왔던 것이다.

푸른 향기 속에서 피라미드 신전이 속살을 드러낼 때 동시에 나는 이 고대도시의 시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무성한 잎가지를 스친 바람이 피라미드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 듯 나도 한 걸음 더 내딛어 마야의 숨결을 깊이 들이마시며 그들의 자취를 더듬어보기로 했다.

비명의 신전(Templo de las Inscripciones)피라미드 높이는 22m로 69단의 급한 계단을 올라가면 천장이 마야 아치로 된 신전이 있다. ⓒ 문종성


묘실로 가는 길비명의 신전에 있다. 여기에는 20톤의 바위를 깎아내어 만든 석관이 있다. 그 석관에는 파칼 왕의 미라가 있으며 뚜껑에는 마야 문자가 조각되어 있다. ⓒ 문종성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60년 전, 멕시코 고고학자 알베르토 루스는 대체 어떤 직감을 가지고 이곳을 발굴했던 걸까. 그가 이곳에 발을 들여놓기 전까지 선배들이 일부 발굴한 자료까지 토대로 본래 마야 문명은 이집트 문명과는 전혀 다른 독자적 문화라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졌고, 멕시코의 자부심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길고도 지루한 작업 끝에 견고하면서도 용의주도하게 지어진 신전 바닥 아래 이전 마야문명에서 볼 수 없었던 복잡한 구조를 가진 통로와 왕의 분묘, 진귀한 보물과 벽면에 새겨진 6백여 개의 알 수 없는 마야 상형문자, 그리고 화려하게 치장된 신화적 그림 등이 발견되었다. 팔렝케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비명의 신전(Templo de las Inscripciones)에서 일어난 일이다.

궁전(El Palacio)왕이 살았던 곳으로 추정되며 7세기 경에 건축이 시작되어 120여년에 걸쳐 완공되었다. 4개의 정원이 있으며 4개의 탑이 있다. ⓒ 문종성


피리 부는 사나이궁전 유적 안에서 한 여행자가 명상을 위해 피리를 부르고 있다. 피리는 인도여행 때 구입했다고. ⓒ 문종성


그 뿐만이 아니었다. 무려 4년에 걸쳐 흙과 모래를 제거한 바닥 아래 계단에서는 위장한 묘와 왕을 따라 순사한 6구의 유골이 곰팡이를 뒤집어쓴 채 발굴팀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것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엄청난 반전이었다. 이제까지 마야의 피라미드 지하에서 유골이 발견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후 발견한 아치형 동굴에서는 매끈하게 다듬어진 벽과 천장을 지나 방 중앙에 놓여있는 석관을 발견했는데 주위 벽에는 예스러운 복장을 한 아홉 사람이 스투코(장식 벽토) 조각 장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저승세계를 지배하는 신들인 ‘밤의 아홉 주님(Nine Lords of Night)’으로 동양식으로는 9개의 하늘 즉 구천(九天)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9신은 바로 주인을 안내하고 보호하기 위한 상징 체계였다.

그리고 드디어 대단원의 마지막을 장식할 석관 안. 거기에는 가면을 비롯해 온통 비취투성이의 미라가 놓여 있었다. 마야학자들이 신전에 새겨진 상형문자를 해독한 결과 ‘방패’라는 뜻을 가진 파칼 왕이었다. 마야시대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자가 영면한 곳이 20세기 한 고고학자의 4년간의 집념어린 도전으로 드디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15m의 탑탑의 벽면은 동서남북을 향해있어서 천체관측에 사용되었다고도 하며 테라스에는 금성을 나타내는 상형문자가 조각되어 있다. 맨 위층에는 별 관측을 위한 테이블이 있다. ⓒ 문종성


무덤 주변에 위치한 계단식 피라미드의 상층부에는 신전이 있고, 신전 지하로 연결된 복잡한 통로를 따라 왕의 유골이 안치됐음을 밝혀낸 성과는 마야문명의 독자성을 일관되게 주장한 마야학자들의 논거를 단번에 잠잠케 만들었다. 그때까지 이집트 피라미드와는 달리 멕시코의 피라미드에서는 매장된 유골이 나와서는 안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그것은 발굴 당사자인 루스도 전적으로 동의하던 학설이었다.

그리하여 기존 학설을 뒤집고 팔렝케 유적이 마야문명의 최고의 발굴성과로 인정받는 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물론 빛을 잃은 마야문명 독자론은 더 이상 거론되지 않았다. 실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팔렝케는 이 밖에도 궁전과 태양의 신전, 십자가의 신전, 그리고 잎사귀의 십자가 신전과 여러 작은 신전 등 저마다 독특한 목적으로 지어진 유적들이 무질서하게 정글 곳곳에 세워져 있다. 특히 십자가 위에는 태양신의 얼굴이, 그 위로는 다시 비의 신의 얼굴을 붙인 께쌀이 있는데 대지의 풍요로운 생성력의 상징으로 마야문명의 신을 섬기면서도 언젠간 내가 자연이 될 수도 있다는 자연과 합일하는 사상을 품었던 것을 추측해 볼 수 있다.

궁전 내부4개의 내부 공간과 지하 통로와 연결된 복잡한 모양의 건물로 건축 당시 깊이 3m의 수로가 있어서 수세식 화장실과 증기 욕실도 있었다고 한다. ⓒ 문종성


그렇다면 그들은 도대체 왜 정글에 들어와야만 했던 걸까? 일각에서는 우주인설을 흘리며 팔렝케의 신비함을 애써 포장하려고 하지만 대개는 정복자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으로 피해 왔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길을 따라 진격했을 정복자들이 미처 정글 깊숙한 도시까지 탐험할 생각은 못했으리라.

그리고 그들은 오래도록 누군가의 시선과 기억에서 멀어진 채 곤히 잠들었다. 마야의 정신이 잠들어 있는 안식처 팔렝케의 베일이 벗겨진 지금 나는 뿌옇게 바래진 뜻모를 그림 앞에서 원시와 과학이 공존했던 마야시대 생각에 잠겨 본다. 지금도 혹시 멕시코 땅 어딘가에 아직 발견되지 않아 잠들어 있는 무덤이 있지 않을까 적잖이 의심하며….
덧붙이는 글 기사의 사실과 관련된 내용은 http://cafe.daum.net/knewworld에서 인용했습니다.
필자는 현재 ‘광야’를 모토로 6년 간의 자전거 세계일주 중입니다.
저서 <라이딩 인 아메리카>(넥서스 출판)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 http://www.vision-trip.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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