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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내려올 산 왜 오르냐고? 그럼 어차피 죽을 인생은 왜 살아?

어느 도덕샘의 철학적 사색이 있는 히말라야 여행기 4

등록|2009.02.06 08:38 수정|2009.02.06 08:38
제2일(12.31)

① <네팔 짱>에서 눈을 뜬다(06:30)

추위에 일찍 눈을 떴다. 한 6~7시간 정도 눈을 붙였나? 졸린 눈을 비비며 밖으로 나오니 어제 함께 온 서울 부부가 진즉 일어나 서울에 있는 딸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신혼여행 후 8년 만에 떠나온 두 분의 모습과 서로 마주하는 눈빛에서 ‘행복’의 정체를 엿봤다. 나에게도 그 행복이 전염된다. 이렇듯 세상에는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선사하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모습에서 티베트 사람들의 삶의 염원이 담긴 격언이 생각났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 나는 울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기뻐했고 즐거워하였다.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때 나는 웃었고, 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은 슬피 울고 괴로워하였다.

울면서 태어나 웃으며 죽기를 바라는 삶! 소박해 보이지만 누구도 쉽게 이룰 수 없는 삶의 꿈이다. 웃으며 삶을 마감하는 부부를 그려본다. '당신이 있어 삶이 너무 행복했다고.' 속삭이는 그들! 풍요롭다.

② 네팔의 송년 파티인 타멜 페스티벌에 다녀왔다(23:00)

아침 식사로 된장과 김치찌개를 주문해 먹었다. 외국의 풍토를 생각해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거의 한국에서 먹는 맛과 흡사한 찬과 찌개, 그리고 일본쌀로 지은 찰진 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식사 후 달러를 네팔 루피로 환전하고 시내도 구경할 겸해서 타멜에 있는 히말라야 뱅크로 천천히 걸어갔다. 타멜은 외국인 관광객과 쇼핑 타운이 밀집한 곳으로, 한국의 명동과 같이 카트만두의 가장 큰 번화가다. 환율이 약 1달러당 70루피 정도였는데, 캐시보다 T/C(여행자수표)의 가격을 높게 쳐 주었다. 은행 밖에는 우리를 반갑게 기다리고 있는 한 무리의 네팔리들이 있었으니, 그들은 구걸하는 네팔리들이었다.

그들 외에도 민속공예품을 팔고 있는 노점상, 코브라의 목을 잡고 우리를 유혹하는 피리 노인, 릭샤 운전석에 앉아 나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내는 젊은 네팔리, 무법천지의 도로와 소음, 매연 그리고 네팔어로 쓰여진 무질서한 상점 간판들이 이곳이 네팔임을 증명하고 있었다.

히말라야 뱅크외다리 아저씨가 돈을 환전해 나오는 여행객을 기다리고 있다. ⓒ 윤인철


환전 후 숙소에 와 보니 머리가 하얗게 센 분이 앉아 계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쭈어 보니, 역시 인터넷 네팔 여행 사이트인 야크존에서 네팔 배낭여행에 대한 궁금증에 자세하고 정확하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답해 주시던 ID 백두산님이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니, 올해 마나슬루에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사정상 취소하고 안나푸르나를 다녀온다고 했다. 한국에서 네팔에 대한, 그리고 트레킹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동경을 갖고 있을 때, 갈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를 북돋아 주신 분이다.

오전에 등산 장비점에서 트레킹 용품을 구입할 계획이었는데, 웬만한 가게에 가서는 바가지를 쓸 것 같아 네팔짱 산적두목님께 함께 가기를 간곡히 청하였다. 운이 좋았는지 산적두목님과 백두산님이 동행해 침낭, 우모복, 고어텍스 재킷, 상의, 모자, 스틱 등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었는데, 용품 대부분이 유명메이커를 도용한 제품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부딪히는 큰 문제는 제품이 아니라 가격과 흥정이다. 워낙 바가지가 유명한 동네인지라 흥정을 잘못할 경우에는 2배 이상의 가격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낭패를 당할 수도 있게 된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에게는 먼저 적정 가격의 1.5~2배 정도의 가격을 부르는 것이 일상화되었고, 그에 비례해 관광객 또한 1/2로 깎아 내리는 것이 거래의 정석이었다. 모두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피해자가 되는 네팔 경제의 악순환 거래 문화이다.

예를 들어, 고어텍스 재킷의 경우 처음에 65,000루피를 불러 비싸다고 하니, 45,000루피에 준다고 한다. 내가 당신이 팔 수 있는 마지막 가격(Last price)을 제시해 달라고 하자, 36,000루피를 부른다. 이거 참. 옷을 입어보고 '비싸서 살 수 없다'고 점잖게 사양하자, 원하는 가격을 부르라고 한다. 3,000루피 이상은 안 된다고 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도 이것이 잘 성사된 거래인지 확인할 수 없다. 오직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현명한 선택은 다른 가게에서 비슷한 물건의 가격을 묻지 않는 것이다.

이 거리에서는 모든 물건과 가격이 가짜였다. 물건도 짝퉁! 가격도 짝퉁! 하지만 내가 느끼는 찜찜함만은 짝퉁이 아니었다.

타멜의 거리 풍경여행객을 위한 상점들이 밀집되어 있는 카트만두의 타멜 거리. 물건도 짝퉁! 가격도 짝퉁! ⓒ 윤인철


숙소에서 만난 사람들과 함께 기본 장비를 구입하고 백두산님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네팔 키친(Nepal kitchen)이라는 전통 네팔 식당을 방문했다. 네팔리의 주식인 '달밧'과 맥주(everest beer)를 한 잔씩 하였다. 여자들은 맥주 대신 커피를 주문했는데, 컵 위로 커피가 넘치자 주인이 걸레 닮은 행주를 가지고 와서 음식 사이를 거침없이 휘젓는다. 그걸 보고 있는 두 여자의 얼굴에 허탈한 바람이 '횡' 지나간다. 여긴 네팔이다.

달밧은 산행 내내 먹을 음식일 텐데 그 맛이 그리 나쁘지 않았다. 날아가는 밥알 위에 야채, 감자, 콩 등을 섞어 만든 카레향 소스를 곁들여 먹는 음식이었다. 양이 많아서 모든 사람이 남기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이후로 먹는 음식의 양이 똑같이 많아 백두산님께 여쭈어보니, 이 나라 사람들은 하루에 두 끼 식사를 한단다. 아침 겸 점심으로 한 번, 그리고 저녁 식사. 

오후에는 피곤해 하는 모두를 쉬게 하고 서울 인철씨와 나머지 장비를 구입하고 돌아왔다. 나와 동명(同名)인 인철 씨의 성격이 호방하고 다정다감해 아주 재미있는 쇼핑이 되었다. 그는 이번 쇼핑에서 위부터 아래까지 노스페이스로 도배를 해, 모두 ‘노스페이스맨’이라고 놀려대었다. 그의 아내인 은하씨도 서방님을 따라 노스페이스걸로 재탄생되었다. 지나가며 거리를 유심히 살펴보니 이곳의 아이들까지 머리에서 신발까지 온통 노스페이스 상표를 달고 다녔다.

쇼핑을 하느라 좀 늦게 오니 백두산님과 산적두목, 그리고 킬리만자로를 다녀오신 노신사와 그의 동행인 홍콩 사람이 어울려 송년 삼겹살 파티를 하고 있었다. 산적두목 말하길, '내일부터 우리를 인도해 줄 가이드가 찾아와 기다렸다는데, 우리가 늦게 오는 바람에 그냥 갔다'고 하였다. 괜히 첫 만남부터 꼬여 예감이 좋지 않다.

우리, 즉 인철, 은하씨 서울 부부와 부산대생인 보현씨, 홍콩 공항에서 만났던 한의대생인 다운씨와 그의 의누이, 이렇게 일곱 명이서 삼겹살과 네팔 소주로 이 해의 마지막 식사를 하였다. 식사 후 네팔 송년 파티인 '네팔 타멜 페스티벌(Nepal Tamel Festival)'에 가자고 의기투합해 타멜촉(거리)으로 걸음을 옮겼다. 거리는 온통 빨간 색전구가 주렁주렁 달려 밤거리의 화려함이 극에 달했고, 빨간 불빛이 만든 붉은 카펫 위로 젊은이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사람들 틈새를 비집고 거리로 들어서자 어디선가 도시의 밤을 깨우는 음악소리가 흐르고 있었다. 한의대생 다운씨가 우리를 그곳으로 안내하였다. 그곳에는 이미 수백 명의 젊은이들이 모여 춤과 노래로 송년의 아쉬움과 기쁨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는 서로를 기차로 엮어 떨어지지 않게 한 후, 인파 한 가운데로 들어가 광란의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미쳐버릴거야.' 현지인들이 이런 우리들을 재미있다는 듯 웃으며 지켜봤다. 참 맑은 사람들이다. 축제를 뒤로 하고 서민들이 사는 조용한 밤거리를 지나 숙소로 돌아왔다. 

타멜 페스티벌12월 31일, 마지막 밤을 환호하는 네팔의 젊은이들! 타멜 거리 전체가 춤추고 있었다. ⓒ 윤인철


내일! 드디어 에베레스트에 첫 발을 내딛기 위해 루크라로 떠난다. 루크라(Lukla 2,860m)는 에베레스트를 중심으로 한 쿰부히말라야 트레킹을 시작하는 원점으로, '많은 염소와 양을 가진 곳'이라는 의미를 가진 곳이다. 카트만두 공항에서 7시 루크라행 경비행기를 타면 30분 정도 비행해 루크라에 도착한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에베레스트 트레킹이 시작된다. 푹 자자. 그리고 내일부터 달려가자.

많은 이들이 산을 오르고 내리는 과정을 인간의 삶과 비유한다. 언젠가 어차피 내려올 산 뭐하러 오르냐고 냉소하는 사람에게 '어차피 죽을 인생 뭐하러 삽니까'라고 반문했다. 내려올 수 있기에 오르는 발걸음이 아름답고, 죽음이 있기에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삶처럼 온전히 사소한 모든 순간까지 박동치는 가슴에 담고, 오체투지하는 겸손의 마음과 생명을 향한 강한 의지로 히말라야를 거닐자.

소리에 놀라지 말고, 그물에 걸리지 말고, 흙탕물에 더렵혀지지 말자. 무소의 뿔처럼 달려가자.


숲속에서 묶여 있지 않은 사슴이
먹이를 찾아 여기저기 다니듯이
지혜로운 이는 독립과 자유를 찾아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욕망은 실로 그 빛깔이 곱고 감미로우며
우리를 즐겁게 한다.
그러나 한편 여러 가지 모양으로
우리 마음을 산산이 흩뜨려 놓는다.
욕망의 대상에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세상의 유희나 오락
혹은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가지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면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물속의 고기가 그물을 찢듯이
한번 불타버린 곳에는 
다시 불이 붙지 않듯이
모든 번뇌의 매듭을 끊어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빨이 억세고 뭇짐승의 왕인 사자가
다른 짐승을 제압하듯이
궁벽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탐욕과 혐오와 헤맴을 버리고
속박을 끊어 목숨을 잃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흙탕물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경 '숫타니파타' 중에서>

※ 단순한 기행문이 아니라 그곳에서 느끼고 고민했던 내용과 관련된 동서양 사상가의 사상을 빌려와 철학으로 채색을 하였습니다.(공자에서 샤르트르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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