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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마 생얼굴 바라보는 내 마음은 어떡하라고?

고스란히 각인된 그 얼굴, 절대 보고 싶지 않다

등록|2009.02.04 11:46 수정|2009.02.04 11:52
로마 시대에는 남의 물건을 훔친 자를 단죄하려고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광장에서 기요틴(단두대)으로 사형을 집행했다. 그러함에도 그 많은 군중 속에 소매치기가 존재했음은 우리가 잘 아는 사실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악행을 징벌하고 있지만 여전히 악행이 존재한다. 이 악순환이 언제쯤 사라질까?

내 학창 시절에 김대두는 민가에 침입해 도끼로 불특정 다수를 죽였다. 한 대학 교수는 재산을 노리고 부모를 불태워 죽였다. 어떤 살인마는 사람을 토막내 죽였다. 어떤 조폭들은 사람을 생매장했다. 조직을 위해 사람의 간까지 파먹었다. 유영철은 입에 담기조차 역겨운 희대의 살인마였다.

사람을 일곱 명이나 죽인 살인마 강아무개가 모자를 꾹 눌러쓴 채 텔레비전에 나왔다. 지켜보는 분들은 분노한다. 나 또한 마음 안에 악성을 총동원시켜 육두문자를 날린다. 그가 현장 검증하는 장면을 지켜보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공분을 했는가!

하지만 나는 나 스스로에게 무서움을 느낀다. 인간이 지닌 악성의 끝은 다른 사람을 죽이거나 스스로 죽음을 택하는 것 아닐까?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다. 그러나 나에겐 당장이라도 저 잔인한 살인마를 죽여버리고 싶은 살해 본능이 존재하고 있다.

21년째 일선 고교에서 선생 노릇하는 나는 두렵다. 선생인 나를 미치도록 두렵게 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 내재하는 악성뿐만이 아니라, 자라나는 청소년들마저 아주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해 살해 본능을 지니게 된다는 점이다.

▲ 1일 오전 경기 서남부 연쇄살인범 강 아무개씨가 부녀자 살해현장검증을 위해 수사본부가 차려진 경기도 안산 상록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 권우성


물론 그 타인이 살인마라는 점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을 수 있는 당연한 대응방식이라고 넘겨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살인마 한 사람 때문에 나를 비롯한 우리 청소년들이 지니게 될 악성은 그 어떤 거룩한 교육으로도 치유할 수 없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강아무개의 얼굴을 공개할 것이냐, 비공개할 것이냐로 설왕설래다. 단언컨대 공개는 의미가 없다. 우리네 이목구비가 듣고 보고 말하고 냄새 맡는 기능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살아가면서 굳이 듣지 않고 보지 않고 말하지 않고 냄새 맡지 않아야 할 권리도 있다.

살인마의 얼굴을 봐서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일까? 살인마의 얼굴을 보며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 무엇일까? '저렇게 생겼으니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는 놈'이고, '저렇게 생긴 놈이 어떻게 사람을 죽일 수 있을까!' 이 정도 공분 아닐까?

어쨌거나 우리는 '살인마 저 놈을 당장 죽여버려!'라는 극단적인 처방을 요구한다. 결국 우리가 얻는 것은 살인마의 얼굴을 미추로 구별한 후 온갖 감정적 수사를 달아 살인마를 처단하는 것 뿐이다.

나는 어떤 형태로든 강아무개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다행스럽게 유영철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큰 축복이라고 믿는다. 세상을 살면서 안 봐도 좋은 것이 얼마나 많은가.

고고한 선비 흉내나 내려는 것이 아니다. 태생적으로 그런 살인마 얼굴이 머릿속에 남아 편두통을 앓게 된다면 그것은 누가 책임져야 하는가. 비록 그의 생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사실 지금도 바늘이 머리를 찌르고 있다.  

누가 무슨 죄를 짓든 무관심하자는 게 아니라 이미 사람이기를 포기한 사람의 얼굴을 굳이 볼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되었는지 그 이유와 정황이다. 그래서 그러한 범죄가 재발되지 않게 철저하게 분석하는 일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잔인한 존재들, 보고 나면 가슴 아픈 장면들,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충격 영상들이 우리 사는 세상에 난무한다. 우리는 지금 잔인한 공포 영화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 희대의 살인마와 함께 엄연한 현실을 살고 있다.

인간의 잔인성은 현실이 상상을 능가한다. 나는 여전히 두렵다. 우리는 한 달 사이에 다섯 명이나 살해한 살인마를 바라봤다. 살인마 그들의 잔인성이 깊어갈 때마다 그것을 지켜보는 우리네 성정도 거칠어진다.

그의 얼굴이 그렇게도 중요한가? 살인마들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이 살인마들에게 인권 침해라고만 말하지 말라.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그들의 얼굴을 보고 내가 상처를 받는다면 내 인권도 유린당한 셈이다.

고고한 선비인 양, 거룩한 계몽인 양 피해자 가족의 처지를 이해 못하는 뒤떨어진 인간형이라고 비난하지 말라. 나는 여전히 저 살인마들에게 '찢어죽일 놈! 때려 죽일 놈!'을 능가하는 육두문자로 중무장했고, 그것도 모자라 서슬 퍼런 칼날을 마음 안에 준비 중이다. 살인마를 바라보며 나 또한 마음 속으로 살인마가 되고 있다.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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